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제목
본문
날짜
~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ud.k_0004_004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예조참판(禮曹參判) 이여(李畬)의 서계

 
  • 발신자이여(李畬)
  • 수신자소 요시쓰구(宗義倫)
  • 발송일1694년 9월 (음)
14일에 또 서계를 담은 상자를 들고 와서 접위관의 뜻이라고 하면서 봉투를 뜯어 보여 주었다. 서계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국 예조참판 이여(李畬)는 일본국 대마주 태수 平公 합하께 받들어 아룁니다. 사신의 배편이 도착함에 은혜로운 편지도 따라 이르니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섬 중에 울릉도(蔚陵)라는 섬이 있습니다. 본 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파도가 위험하여 뱃길이 편리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해 전에 그곳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땅을 비워놓고 수시로 관리(公差)를 보내 왕래하면서 수색하고 검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섬의 산봉우리와 나무는 내륙에서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고 무릇 산천의 구불구불한 굽이와 지형의 좁고 넓음, 백성들이 살던 자취가 남은 자리와 생산되는 토산물들이 모두 우리나라 『여지승람(輿地勝覽)』이라는 책에 실려 있으니, 대대로 전해 오는 사실의 자취가 분명합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바닷가의 어민들이 이 섬에 갔을 때에 생각지도 않게 귀국의 사람들이 스스로 경계를 넘어 침범해 와서 서로 부딪치게 되었는데, 도리어 우리 백성 두 사람 [주001]
각주 001
닫기

안용복과 박어둔.

을 잡아서 에도(江戶)까지 끌고 갔습니다(이때 에도까지 가지는 않았었는데, 서계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 두 백성이 나가사키[長崎]에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귀국의 대군(大君) [주002]
각주 002
닫기

에도막부의 쇼군.

이 분명하게 사정을 통찰하고 넉넉하게 노자를 주어 돌려보내 주셨으니, 이는 교린을 하는 인정이 보통을 훨씬 넘어섬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높은 의리에 감탄하였으니, 그 감격을 어찌 말하겠습니까? 비록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 백성들이 고기잡이를 하던 곳은 본래 울릉도(蔚陵島)로서, 그곳에서 대나무가 생산되기 때문에 더러 죽도(竹島)라고도 불렀던 곳입니다. 이는 곧 하나의 섬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 하나의 섬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른 정황이 다만 우리나라 서적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귀주(貴州)의 사람들 또한 모두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서계 가운데 죽도를 귀국의 관내 지역이라 하여 우리나라로 하여금 어선이 다시 나가는 것을 금지시키게 만들려고 하면서, 귀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국경을 침범해 들어와 우리나라 백성을 붙잡아간 잘못은 논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성실하게 신의를 지키는 도리에 흠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깊이 바라건대 이런 말뜻을 가지고 막부(東武)에 전하여 알려서, 귀국의 변방 바닷가 사람들을 거듭 단속하여 울릉도에 오가며 사단을 야기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한다면, 서로 좋게 지내는 도리에 있어 이보다 다행이 없겠습니다. 아름다운 선물은 고맙게 받았습니다. 변변치 못한 물건을 보내니 모두 밝게 살펴 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갑술년(甲戌年: 1694) 9월 일.
 

주 001
안용복과 박어둔.
주 002
에도막부의 쇼군.
 
이름
이여(李畬)
지명
울릉도(蔚陵) , 에도(江戶) , 에도 , 나가사키[長崎] , 에도 , 울릉도(蔚陵島) , 죽도(竹島) , 죽도 , 울릉도
서명
『여지승람(輿地勝覽)』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