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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붕고노가미님(阿部豊後守)이 보내신 문서의 구상서(口上書)

 
    이때 아베 분고노카미(阿部豊後守)님께서 보내신 문서를 아래에 기록함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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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口上覺은 쓰시마번의 前 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 분고노카미(아베 마사타케)에게 제출한 의견서에 대해, 로주 아베가 소 요시자네에게 보낸 답서이다. 아베의 답변서 서두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1696년 5월 안용복 일행이 오키에 도착하는 사건(2차 渡日)이 발생하자 막부의 로주 오쿠보 다다토모(大久保忠朝)는 쓰시마번에 명하여 돗토리번으로 조선어통사를 파견하도록 했다. 이는 안용복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꾀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때 요시자네는 ‘古來로 일본과 조선 간의 사안은 쓰시마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안용복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요청을 아예 취급해서는 안 된다. 향후 미미한 사안을 가지고 直訴하러 오는 일이 계속되면 막부도 곤란해질 것이니 그대로 조선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로주들을 설득했다. 이 같은 요시자네의 의견에 대한 아베의 답변서가 본문의 口上覺이다. (『竹嶋紀事』).


 

口上覺 [주002]

 

이번에 조선인이 인슈(因州)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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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슈(因州): 이나바노구니(因幡國)의 약칭. 현재 돗토리현(鳥取県) 동부 지방. (『広辞苑』)

로 건너온 일과 관련하여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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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의 2차 도일사건을 가리킨다. 1696년(숙종 29) 봄 안용복은 10여 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 출어했다가 마침 어로 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松島(독도)까지 추격하여 조선의 영토로 넘어와서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하였다. 또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을 자칭하고 호키(伯耆)로 가서 태수에게 범경(犯境)한 사실을 항의하고 돌아왔다. 안용복은 조정의 허락 없이 외교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으나 남구만의 간곡한 만류로 귀양 조치되었다.

, 통사(通詞)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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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通詞): 조선어 통역관.

를 파견하라는 가가노카미(加賀守)님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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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주 오쿠보 다다토모(大久保忠朝). 오쿠보 다다토모는 에도시대 초기에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마사즈미(正純) 父子와의 항쟁에서 패하여 실각한 오쿠보 다다치카(大久保忠隣)의 손자이다. 가독을 상속하기 전부터 小姓, 小姓組番頭를 지냈다. 1670년 히젠가라쓰번(肥前唐津藩) 9,3000石을 상속, 1677년에 로주가 되었고, 1686년에는 祖父 다다치카의 領地였던 오다와라(小田原)로 복귀하였다. 加增을 받아 최종적으로 113,000石이 되었다. (『人名辞典』)

의 지시에 따라 조속히 인슈(因州)로 [通詞를] 보내시고, 생각하시는 바를 오우라 추자에몬(大浦忠左衛門)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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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번의 에도가로(江戶家老).

을 통해 각서(覺書)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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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사료 『因幡國江朝鮮人致渡海候付豊後守樣ヘ御伺被成候次第幷御返答之趣其外始終之覺書』에 소 요시자네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에게 제출한 각서(의견서)가 수록되어 있다.

로 보내주셔서 상세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조선인이 무엇을 호소(訴訟)할지 알 수는 없지만, 인슈(因州)를 목적지로 해서 건너왔고 게다가 竹嶋(울릉도) 문제에 대한 [막부의] 최종 결정을 아직 [조선에] 전하지 않았으니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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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로주 아베 마사타케는 돗토리번에 12월 24일부로 일종의 ‘질의서’를 보내 竹島의 소속에 관해 문의하였고, 돗토리번은 ‘竹島는 이나바(因幡), 호키(伯耆)에 속하지 않는다. (중략) 竹島(울릉도), 松島(독도) 그 외 兩國(이나바, 호키)에 부속된 섬은 없다’고 회답했다. 그러자 막부는 이듬해인 1696년 돗토리번주 이케다 쓰나키요(池田綱淸)를 수신자로 하여 죽도 도해를 금지하는 1월 28일부 로주 봉서(奉書)를 전달했다. 이것이 에도막부의 제1차 ‘죽도 도해 금지령(竹島渡海禁止令)’이다. 한편 막부가 죽도도 해금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쓰시마번이 조선 측에 통보한 것은 1696년 문위행(問慰行)을 통해서였다. 문위행은 1696년 번주 소 요시쓰구(宗義倫)의 사망을 조문하고 요시자네(義眞)의 섭정을 축하하기 위해 쓰시마에 도해하였다. 요시자네는 10월 문위행을 대면하는 자리에서 막부의 결정을 구두로 전달하고 그 내용을 기술한 口上書를 건네주었다. 본 사료의 말미에 역관에게 건넨 口上書 2통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의 口上覺은 소 요시자네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 마사타케에게 제출한 의견서에 대한 답변서이므로, 아직 쓰시마번이 막부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조선 측(문위행)에 전달하기 이전의 상황이다. (『竹嶋之書附』, 『竹嶋紀事』, 『鳥取藩史』6)

필시 竹嶋(울릉도) 문제일 것입니다. 원만한 결정을 내려 그것을 미처 통보해 주기도 전에 이번 호소를 받아들이면, 조선에서는 이전에 [막부가] 내린 결정을 모른채 이번에 조선인이 와서 직접 호소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작은 일이라도 직소(直訴)하게 되어 일이 매번 어려워질 것입니다. 더욱이 그대(소 요시자네)에게 역(役)을 지시한 보람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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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원문은 ‘規模’이며, ‘본보기’, ‘올바른 예’, ‘보람(甲斐)’의 뜻이 있어서 ‘보람’으로 의역함. (『広辞苑』, 『古文書字典』)

도 없어집니다. 게다가 일본과 조선은 예로부터 약속한 것이 있어서 지금까지 쓰시마번 외에 다른 지역에 건너가 호소한 적이 없으므로 이번 건을 들어주지 말고 인슈(因州)에서 [조선으로] 곧바로 돌려보내기 바라며, 국법(國法)을 어긴 자이므로 접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인슈(因州)에서 곧바로 돌려보내기가 곤란하면 나가사키(長崎)로 보내 표류민 송환 관례에 따라 그대(소요시자네)를 거쳐 조선으로 돌려보내서, 오랜 법도(古法)를 어기고 타국에 건너가서 직접 호소하는 것이 무도한 행위라는 뜻을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는 覺書의 취지를 데와(出羽)님과 우경대부(右京大夫)님에게 각각 이야기했더니, 모두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인슈(因州)에서 조선인의 소원을 들어주어서는 안 되며, 법을 어기고 건너온 자이므로 접대 같은 것도 하지 말고 조속히 추방하도록 마츠타이라 호키노카미(松平伯耆守)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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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번주 이케다 쓰나키요(池田綱淸).

에게 전했으니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또한, 일전에 지시한 내용인데, 이번에는 역관(조선의 譯官一行)이 [쓰시마에] 건너가지만 이번 소송의 종류에 따라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일단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조선에 통보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지시가 내려오기까지는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슈(因州)에서 즉시 조선인을 돌려보내도록 전했으니 역관이 도해(渡海)하면 전에 지시한 대로 전달하십시오.
一. 별지(別紙)에서 말씀하신 [조선과의] 문서 通用에 관해서도 잘 들었습니다. [주012]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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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자네(宗義眞)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 마사타케에게 ‘안용복의 처리’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을 때 別紙의 문서를 함께 제출했다. 그 별지 문서에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通用에 관해서는 윤번 승려, 즉 이테이안(以酊庵) 윤번승(輪番僧)이 대신하도록 명하신 연유로 양국 간의 일이 私的으로는 처리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본문의 문장은 요시자네가 제출한 별지 문서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아베 마사타케의 답신에 해당한다. (『竹嶋紀事』)

먼 곳의 일이어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지체되기 때문에 자신(요시자네)의 의견을 서슴없이 전하신다니 지당하신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서슴없이 생각하는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 점을 刑部大輔(요시자네)님에게 자세히 전하십시오. 이상.
 

주 001
다음의 口上覺은 쓰시마번의 前 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 분고노카미(아베 마사타케)에게 제출한 의견서에 대해, 로주 아베가 소 요시자네에게 보낸 답서이다. 아베의 답변서 서두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1696년 5월 안용복 일행이 오키에 도착하는 사건(2차 渡日)이 발생하자 막부의 로주 오쿠보 다다토모(大久保忠朝)는 쓰시마번에 명하여 돗토리번으로 조선어통사를 파견하도록 했다. 이는 안용복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꾀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때 요시자네는 ‘古來로 일본과 조선 간의 사안은 쓰시마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안용복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요청을 아예 취급해서는 안 된다. 향후 미미한 사안을 가지고 直訴하러 오는 일이 계속되면 막부도 곤란해질 것이니 그대로 조선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로주들을 설득했다. 이 같은 요시자네의 의견에 대한 아베의 답변서가 본문의 口上覺이다. (『竹嶋紀事』).
주 002
오보에(覺): 후일을 위하여 기록해서 남기는 문서. ‘口上覺’은 구두로 진술한 사항을 후일을 위하여 기록해 둔 문서를 의미함. (『広辞苑』, 『古文書字典』)
주 003
인슈(因州): 이나바노구니(因幡國)의 약칭. 현재 돗토리현(鳥取県) 동부 지방. (『広辞苑』)
주 004
안용복의 2차 도일사건을 가리킨다. 1696년(숙종 29) 봄 안용복은 10여 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 출어했다가 마침 어로 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松島(독도)까지 추격하여 조선의 영토로 넘어와서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하였다. 또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을 자칭하고 호키(伯耆)로 가서 태수에게 범경(犯境)한 사실을 항의하고 돌아왔다. 안용복은 조정의 허락 없이 외교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으나 남구만의 간곡한 만류로 귀양 조치되었다.
주 005
통사(通詞): 조선어 통역관.
주 006
로주 오쿠보 다다토모(大久保忠朝). 오쿠보 다다토모는 에도시대 초기에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마사즈미(正純) 父子와의 항쟁에서 패하여 실각한 오쿠보 다다치카(大久保忠隣)의 손자이다. 가독을 상속하기 전부터 小姓, 小姓組番頭를 지냈다. 1670년 히젠가라쓰번(肥前唐津藩) 9,3000石을 상속, 1677년에 로주가 되었고, 1686년에는 祖父 다다치카의 領地였던 오다와라(小田原)로 복귀하였다. 加增을 받아 최종적으로 113,000石이 되었다. (『人名辞典』)
주 007
쓰시마번의 에도가로(江戶家老).
주 008
이 책의 사료 『因幡國江朝鮮人致渡海候付豊後守樣ヘ御伺被成候次第幷御返答之趣其外始終之覺書』에 소 요시자네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에게 제출한 각서(의견서)가 수록되어 있다.
주 009
1695년 로주 아베 마사타케는 돗토리번에 12월 24일부로 일종의 ‘질의서’를 보내 竹島의 소속에 관해 문의하였고, 돗토리번은 ‘竹島는 이나바(因幡), 호키(伯耆)에 속하지 않는다. (중략) 竹島(울릉도), 松島(독도) 그 외 兩國(이나바, 호키)에 부속된 섬은 없다’고 회답했다. 그러자 막부는 이듬해인 1696년 돗토리번주 이케다 쓰나키요(池田綱淸)를 수신자로 하여 죽도 도해를 금지하는 1월 28일부 로주 봉서(奉書)를 전달했다. 이것이 에도막부의 제1차 ‘죽도 도해 금지령(竹島渡海禁止令)’이다. 한편 막부가 죽도도 해금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쓰시마번이 조선 측에 통보한 것은 1696년 문위행(問慰行)을 통해서였다. 문위행은 1696년 번주 소 요시쓰구(宗義倫)의 사망을 조문하고 요시자네(義眞)의 섭정을 축하하기 위해 쓰시마에 도해하였다. 요시자네는 10월 문위행을 대면하는 자리에서 막부의 결정을 구두로 전달하고 그 내용을 기술한 口上書를 건네주었다. 본 사료의 말미에 역관에게 건넨 口上書 2통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의 口上覺은 소 요시자네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 마사타케에게 제출한 의견서에 대한 답변서이므로, 아직 쓰시마번이 막부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조선 측(문위행)에 전달하기 이전의 상황이다. (『竹嶋之書附』, 『竹嶋紀事』, 『鳥取藩史』6)
주 010
보람: 원문은 ‘規模’이며, ‘본보기’, ‘올바른 예’, ‘보람(甲斐)’의 뜻이 있어서 ‘보람’으로 의역함. (『広辞苑』, 『古文書字典』)
주 011
돗토리번주 이케다 쓰나키요(池田綱淸).
주 012
소 요시자네(宗義眞)가 1696년 7월 24일부로 로주 아베 마사타케에게 ‘안용복의 처리’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을 때 別紙의 문서를 함께 제출했다. 그 별지 문서에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通用에 관해서는 윤번 승려, 즉 이테이안(以酊庵) 윤번승(輪番僧)이 대신하도록 명하신 연유로 양국 간의 일이 私的으로는 처리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본문의 문장은 요시자네가 제출한 별지 문서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아베 마사타케의 답신에 해당한다. (『竹嶋紀事』)
 
이름
아베 , 오우라 추자에몬(大浦忠左衛門) , 데와(出羽) , 우경대부(右京大夫) , 마츠타이라 , 刑部大輔(요시자네)
지명
인슈(因州) , 인슈(因州) , 인슈(因州) , 竹嶋(울릉도) , 竹嶋(울릉도) , 쓰시마번 , 인슈(因州) , 인슈(因州) , 나가사키(長崎) , 인슈(因州) , 인슈(因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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