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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사(參判使)가 박동지(朴同知)를 통해 접위관(接慰官)을 응대함

 
 

참판사(參判使)가 박동지(朴同知)를 통해 접위관(接慰官) [주001] 을 응대함 [주002]

각주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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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위관(接慰官): 倭使가 상경할 때 정3품 문관을 파견하여 접대하게 했는데 이를 선위사(宣慰使)라고 하였다. 인조 7년(1629)에 정홍명(鄭弘溟)이 왜사가 한양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한양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國體를 훼손시켰다 하여 그를 심문한 뒤 파직하고, 이행원(李行遠)으로 대신하게 했으며, 선위사라는 명칭을 접위관으로 바꾸었다. 이후 대차왜가 오면 한양에서 名官을 뽑아 파견했는데 이를 경접위관(京接慰官)이라 하였고, 소차왜와 재판왜(裁判倭)가 오면 경상도 관찰사가 도 내의 문관 수령을 뽑아서 왜사를 접대하게 했는데 이를 향접위관(鄕接慰官)이라 하였다. (『증정교린지』권3, 出仕官)

각주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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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사로 조선에 파견된 다다 요자에몬(多田與左衛門)이 역관 박동지(朴同知)를 통해 접위관 홍중하(洪重夏)에게 전달한 내용. 다다 요자에몬은 1693년 11월 안용복과 박어둔을 대동하고 왜관에 도착했다.(『館守每日記』元祿 6년 11월 23일條, 12월 10일條)

 

“일본의 竹嶋(울릉도)에 최근 조선인이 건너와서 고기잡이를 하기에 사정을 헤아려서 다시는 오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에 다시 40명 가량이 와서 고기잡이를 하기에 증거삼아 그 중 2명을 인질로 붙잡아 자초지종을 영주님(돗토리번주 이케다씨)이 막부에 보고했습니다. ‘쓰시마번주가 이 일을 맡아 [두 사람을] 조선국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오지 않도록 엄하게 이르라.’는 막부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을 이번에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
쓰시마번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일본 안에 貴國(조선) 사람이 이유 없이 들어오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데, 이와 같은 일은 경솔하다고는 하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인이 貴國 안으로 와서 고기를 잡으면 유쾌하시겠습니까? 오로지 법도가 느슨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은 竹嶋(울릉도)에 있는 자들이 일본의 규정을 잘 지켰기에 별탈이 없었습니다.
잘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아랫사람들의 일인지라 만일 일본인과 작당을 해서 밀무역 따위를 하는 무리라도 있으면 아주 큰일입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또 몰래 도항한 것은 적선(賊船)과 마찬가지이지만 엄하게 처벌하면 조선의 입장이 곤란해 질 것이므로, 이번 일은 막부에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아무 일 없이 돌려보내니 이는 [양국의] 성신(誠信)을 귀중하게 여겨서입니다. 그러니 더욱 법도를 엄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양국의 법도를 어긴 자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일이 막부에 보고할 작정이니 회답 내용이 좋지 않으면 일이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십시오. 竹嶋(울릉도)에 온 자들은 통솔자(棟梁)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에게 처벌을 지시하실 때까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전달했다.
 

주 001
접위관(接慰官): 倭使가 상경할 때 정3품 문관을 파견하여 접대하게 했는데 이를 선위사(宣慰使)라고 하였다. 인조 7년(1629)에 정홍명(鄭弘溟)이 왜사가 한양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한양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國體를 훼손시켰다 하여 그를 심문한 뒤 파직하고, 이행원(李行遠)으로 대신하게 했으며, 선위사라는 명칭을 접위관으로 바꾸었다. 이후 대차왜가 오면 한양에서 名官을 뽑아 파견했는데 이를 경접위관(京接慰官)이라 하였고, 소차왜와 재판왜(裁判倭)가 오면 경상도 관찰사가 도 내의 문관 수령을 뽑아서 왜사를 접대하게 했는데 이를 향접위관(鄕接慰官)이라 하였다. (『증정교린지』권3, 出仕官)
주 002
참판사로 조선에 파견된 다다 요자에몬(多田與左衛門)이 역관 박동지(朴同知)를 통해 접위관 홍중하(洪重夏)에게 전달한 내용. 다다 요자에몬은 1693년 11월 안용복과 박어둔을 대동하고 왜관에 도착했다.(『館守每日記』元祿 6년 11월 23일條, 12월 10일條)
 
지명
竹嶋(울릉도) , 竹嶋(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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