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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 속의 한국고대사

秦~唐代의 變亂과 송의 대외관계

  • 출전
    稗編 卷八十七
  • 국가
    고려
  • 주제
    정치>외교>수교>나라
論變亂生於所忽失名
秦以三代, 封建王室削弱之, 故罷置侯守, 墮名城, 殺豪俊, 而陳勝吳廣, 起於謫戍, 奮臂一呼, 天下響應, 劉項興而秦遂亡. 漢矯秦失, 裂土以封功臣, 宗室子弟, 多者, 至七十餘城. 使郡國相錯, 而韓彭英盧, 叛於前吳楚, 七國變於後, 至元成間, 異姓諸侯, 王旣已滅絶, 宗室之國, 惟食租稅, 至乘牛車, 自以爲可以無患矣. 而朝政歸於外戚, 王莽因以簒. 漢光武, 中興功臣所封, 不過大縣數四, 奉朝請而不責, 以吏事宗室之國, 皆有分限, 抑遠外戚, 不使與政, 可謂得策矣. 其後閹宦擅權, 黨錮之禍興, 而董卓 曹操相繼以取之, 至唐因隋之制, 置府兵, 嚴鎭守, 威加於夏夷, 功臣無世襲之國, 宗室無尺土之封, 而武韋楊氏, 乃以女寵扇禍, 其後安史之亂, 甫定而藩鎭之勢, 浸强分裂土宇, 擅征伐私貨財, 天子不得以制, 而朱全忠因之遂移唐祚國家, 鑒藩鎭之弊黜, 削其權, 一切任以文吏, 尺地一民, 甲兵貢賦, 皆歸於朝廷, 無尾大不掉之患, 而宗室外戚, 又非有過分之寵也. 北結契丹, 以爲歡隣, 西制夏人, 東招高麗, 南撫交阯, 率皆臣屬, 非有夷狄之虞也. …

색인어
이름
王莽, 漢光武, 董卓, 曹操, 朱全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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