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사료로 보는 독도

우산국을 정벌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512년 6월 (음)
  • 출전
사료해설
『삼국사기』는 김부식(金富軾, 1075-1151) 등이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인종 23)에 편찬한 신라, 고구려, 백제의 정사(正史)이다. 지증왕 13년조에 신라의 우산국 정복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 사료에 따르면 13년 여름 6월에 신라장군 이사부 (異斯夫)가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戰艦)에 나누어 싣고 가 우산국을 항복시켰다고 한다.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부속도서들을 세력권 내에 두었던 소국(小國)으로서 삼국시대 이전에는 독립적으로 우산국이라는 고대 부족 읍락국가를 이루고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릉도 주변의 모든 소도서(小島嶼)를 포함한다. 즉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서기 512년(지증왕 13년)에 울릉도가 신라에 항복함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권 내에 편입되게 된 것이다.
원문
十三年夏六月 于山國 歸服歲以土宜 爲貢 于山國 在 溟州 正東海島或名 鬱陵島 地方一百里恃嶮不服伊湌 異斯夫 爲 何瑟羅州 軍主謂 于山 人愚悍難以威來可以計服乃多造木偶師子分載戰舩 柢 其國海岸誑告曰汝若不服則放此猛獸踏殺之國人恐懼則降
번역문
13년 여름 6월에 우산국 (于山國)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우산국 은 명주 (溟州)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 (鬱陵島)라고도 하였다. 땅은 사방 1백 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다. 이찬(伊湌) 이사부 (異斯夫)가 하슬라주 (何瑟羅州)의 군주(軍主)가 되어 말하기를
“ 우산국 의 사람들은 어리석고 또 사나워서 힘으로 복속시키기는 어려우나 꾀로는 복속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戰艦)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의 해안에 이르러 거짓으로 말하기를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라고 하자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곧 항복하였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우산국을 정벌하다 자료번호 : sd.d_0079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