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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를 당에 사신으로 파견함

가을 7월 무신삭 경술(3일)에 대례주 001
번역주 001)
12관위의 제5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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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오노노오미이모코)주 002
번역주 002)
小野臣은 和珥臣의 동족이라고 한다. 妹子는 『新撰姓氏錄』 左京 皇別 小野朝臣조에 「大春日朝臣同祖, 彦姥津命五世孫米餅搗大使主命之後也. 大徳小野臣妹子, 家于近江國滋賀郡小野村, 因以為氏.」라고 보이고 있다. 최초의 遣隋使로서 알려져 있고 중국 이름은 蘇因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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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대당(大唐)주 003
번역주 003)
여기서 대당이란 隋를 가리킨다. 『隋書』 倭國傳에 의하면 일본 최초의 견당사는 開皇 20년(600)으로 되어 있지만, 『日本書紀』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의 遣隋使는 大業 3년(607)의 견수사로서 『隋書』 倭國傳에도 대응하는 기사가 있다. 다만 이 견수사는 日出處天子란 國書를 바쳐 隋煬帝의 노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 기사를 두고 일본학계에서는 종래의 중국왕조에 대해 藩臣으로서의 종속외교에서 대등한 외교로 전환하였다고 보는 설이 있지만, 실태는 조공외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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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안작복리(鞍作福利;쿠라쓰쿠리노후쿠리)주 004
번역주 004)
推古 16년 9월에 재차 通事로서 수에 파견되었지만, 17년 9월조에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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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통역으로 삼았다.

  • 번역주 001)
    12관위의 제5위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小野臣은 和珥臣의 동족이라고 한다. 妹子는 『新撰姓氏錄』 左京 皇別 小野朝臣조에 「大春日朝臣同祖, 彦姥津命五世孫米餅搗大使主命之後也. 大徳小野臣妹子, 家于近江國滋賀郡小野村, 因以為氏.」라고 보이고 있다. 최초의 遣隋使로서 알려져 있고 중국 이름은 蘇因高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여기서 대당이란 隋를 가리킨다. 『隋書』 倭國傳에 의하면 일본 최초의 견당사는 開皇 20년(600)으로 되어 있지만, 『日本書紀』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의 遣隋使는 大業 3년(607)의 견수사로서 『隋書』 倭國傳에도 대응하는 기사가 있다. 다만 이 견수사는 日出處天子란 國書를 바쳐 隋煬帝의 노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 기사를 두고 일본학계에서는 종래의 중국왕조에 대해 藩臣으로서의 종속외교에서 대등한 외교로 전환하였다고 보는 설이 있지만, 실태는 조공외교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推古 16년 9월에 재차 通事로서 수에 파견되었지만, 17년 9월조에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소야신매자, 안작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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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를 당에 사신으로 파견함 자료번호 : ns.k_0036_016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