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명왕은 죽고 여창은 퇴각함
여창이 신라를 정벌할 것을 모의하니 기로(耆老)주 001가 “하늘이 아직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 않습니다.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언하였다. 여창이 “늙었구려, 무엇을 겁내는가. 우리는 대국(大國)을 섬기고 있는데 어찌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드디어 신라국에 들어가 구타모라(久陀牟羅)
주 002에 성책을 쌓았다. 그 아버지 명왕은 여창이 계속된 전쟁에 오랫동안 쉬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고생하는 것을 걱정하였다. 어버이의 자애로움도 펼치지 못하고 부족함이 많으면 아들도 효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몸소 가서 그 노고를 위로하고자 하였다. 신라는 명왕이 친히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징발하여 길을 차단하고 격파하였다. 또한 이때 신라에서는 좌지촌(佐知村)
주 003의 사마노(飼馬奴) 고도(苦都)
주 004[다른 이름은 곡지(谷智)이다.]에게 “고도는 천한 놈주 005이다. 명왕은 유명한 군주이다. 이제 비천한 노비에게 유명한 군주를 죽이게 하자.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명왕은 “왕의 머리를 노비의 손에 건네줄 수 없다.”고 말하였다. 고도는 “우리나라의 법에는 맹약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 노비의 손에 죽습니다.”라고 말하였다[어떤 책에는 “명왕이 호상(胡床)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곡지(谷智)에게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주며 베도록 하였다.”고 한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허락하기를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까지 사무쳤다. 돌이켜 헤아려 보아도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고 하면서 머리를 내밀어 베도록 하였다. 고도는 목을 베어 죽이고 구덩이를 파서 묻었다[어떤 책에는 “신라는 명왕의 두골을 남겨 매장하고 나머지 뼈는 예를 갖춰 백제에 보냈다. 지금 신라왕이 명왕의 뼈를 북청(北廳) 계단아래에 묻었다. 이름하여 그 관청을 도당(都堂)이라 한다.”고 한다.]. 여창은 마침내 포위당하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졸들은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축자국조(筑紫國造;츠쿠시노쿠니노미야츠코)주 006라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활시위를 당겨 신라의 기병 중 가장 용감한 자를 쏘아 떨어뜨렸다. 쏜 화살은 예리하여 말안장 앞의 전륜(前輪)과 후륜(後輪)을 관통하여 갑옷의 옷깃까지 다다랐다. 계속해서 쏜 화살은 비 오듯이 줄기차게 이어져 포위한 군대를 퇴각시켰다. 여창과 여러 장수들은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갈 수 있었다. 여창은 국조가 활로 포위한 군대를 물리친 것을 칭찬하며 안교군(鞍橋君;쿠라지노키미)이라 높여 불렀다[안교는 여기서는 구라니(矩羅膩;쿠라지)주 007라고 한다.]. 이때 신라 장수들은 백제가 피로하고 지쳤음을 알고 드디어 전멸시키고자 하였다. 그러자 한 장수가 “안 된다. 일본 천황이 임나 문제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백제 관가를 멸망시킨다면 반드시 후환이 따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만 중지하였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
- 번역주 006)
- 번역주 007)
색인어
- 이름
- 여창, 여창, 명왕, 여창, 명왕, 고도(苦都), 곡지(谷智), 고도, 명왕, 고도, 명왕, 명왕, 고도, 명왕, 곡지(谷智), 명왕, 고도, 명왕, 명왕, 여창, 여창, 여창, 안교군
- 지명
- 구타모라(久陀牟羅), 좌지촌(佐知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