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일본서기

고구려가 백제를 쳐서 없앰

20년 겨울에 고구려 왕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쳐서 없앴다주 001
번역주 00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63년(475) 9월조, 동 백제본기 개로왕 21년 9월조에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킨 기사가 보인다.
닫기
. 그런데 몇몇의 남은 무리들이 창고 아래주 002
번역주 002)
원문에는 倉下로 되어 있다. 倉下의 古訓은 ‘헤스오토’인데, 百濟語로 추정되고 있다. 高床式 倉庫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닫기
에 모여 있었다. 무기와 양식이 이미 다떨어지고 근심하여 우는 소리가 매우 심하였다. 이때 고구려의 여러 장수들이 왕에게 “백제의 마음가짐이 범상치 않습니다. 신들이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정신을 잃습니다. 다시 덩굴이 뻗어 자라듯 되살아날까 두렵습니다. 뒤쫓아 가서 제거하기를 청합니다주 003
번역주 003)
이 내용은 『隋書』 高祖紀의 내용(「齊王憲言於帝, 普六茹堅相貌非常, 臣每見之, 不覺自失, 恐非人下. 請早除之.」)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닫기
.”라고 말하였다. 이에 왕이 “그럴 수 없다. 과인이 듣기에 백제국은 일본국의 관가(官家)주 004
번역주 004)
‘미야케’라고 읽는다. 御宅, 三宅, 屯倉으로도 표기하는데,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모두 官家로 표기하고 있다. 천황의 직할령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임나일본부설의 논거가 되기도 하였다.
닫기
가 된 것이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또한 그 왕이 들어가서 천황을 섬긴 것은 사방에서 모두 아는 바이다주 005
번역주 005)
阿莘王이 태자 腆支를 왜에 파견하거나 蓋鹵王이 아우인 昆支를 왜에 파견한 예가 있으나, 직접 왕이 왜에 간 적은 없다.
닫기
.”라고 말하니, 그만두었다[『백제기(百濟記)』에서는 개로왕(蓋鹵王) 을묘년주 006
번역주 006)
475년이다. 『日本書紀』 웅략천황 20년은 476년이므로 전년도의 일을 이곳에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닫기
겨울, 고구려[狛]주 007
번역주 007)
『日本書紀』에서는 「高麗」(高句麗)와 「狛」을 모두 ‘코마’라고 읽고 있다. 이는 백제에서 고구려를 비하하여 부르는 호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닫기
의 대군이 와서 대성(大城)주 008
번역주 008)
大城의 古訓은 ‘코니사시’인데, 이는 ‘큰 성’(漢城 혹은 大城)이라는 뜻의 백제어로 추정된다.
닫기
을 7일 낮 7일 밤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왕성이 함락되고 마침내 위례(尉禮) 주 009
번역주 009)
王都 漢城을 가리키는 말이며 동시에 백제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神功紀의 意流村도 음이 통한다.
닫기
를 잃었다. 국왕과 대후(大后),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고 적고 있다.].

  • 번역주 00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63년(475) 9월조, 동 백제본기 개로왕 21년 9월조에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킨 기사가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원문에는 倉下로 되어 있다. 倉下의 古訓은 ‘헤스오토’인데, 百濟語로 추정되고 있다. 高床式 倉庫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으로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이 내용은 『隋書』 高祖紀의 내용(「齊王憲言於帝, 普六茹堅相貌非常, 臣每見之, 不覺自失, 恐非人下. 請早除之.」)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미야케’라고 읽는다. 御宅, 三宅, 屯倉으로도 표기하는데,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모두 官家로 표기하고 있다. 천황의 직할령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임나일본부설의 논거가 되기도 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阿莘王이 태자 腆支를 왜에 파견하거나 蓋鹵王이 아우인 昆支를 왜에 파견한 예가 있으나, 직접 왕이 왜에 간 적은 없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475년이다. 『日本書紀』 웅략천황 20년은 476년이므로 전년도의 일을 이곳에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日本書紀』에서는 「高麗」(高句麗)와 「狛」을 모두 ‘코마’라고 읽고 있다. 이는 백제에서 고구려를 비하하여 부르는 호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大城의 古訓은 ‘코니사시’인데, 이는 ‘큰 성’(漢城 혹은 大城)이라는 뜻의 백제어로 추정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王都 漢城을 가리키는 말이며 동시에 백제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神功紀의 意流村도 음이 통한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개로왕(蓋鹵王)
지명
위례(尉禮)
서명
『백제기(百濟記)』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고구려가 백제를 쳐서 없앰 자료번호 : ns.k_0024_021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