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애천황이 죽었으나 황후와 4명의 대신이 이를 알리지 않고 시신을 혈문으로 옮김
9년 봄 2월 계묘삭 정미(5일)에 천황이 갑자기 몸이 아프더니 다음날 죽었다(崩)[이때 나이 52세였다. 바로 신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일찍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책(一)에서는 천황이 친히 웅습을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적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에 황후와 대신 무내숙녜(武內宿禰;타케시우치노스쿠네)주 001
번역주 001)
는 천황의 죽음을 감추고천하에 알리지 않았다. 황후가 대신 및 중신오적진련(中臣烏賊津連;나카토미노이카츠노무라지)주 002, 대삼륜대우주군(大三輪大友主君;오호미와노오호토모누시노키미)주 003, 물부담사련(物部膽咋連;모노노베노이쿠히노무라지)주 004, 대반무이련(大伴武以連;오호토모노타케모츠노무라지)주 005에게 “지금 천하는 천황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만일 백성들이 알면 일을 게을리 하는 자들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4인의 대부(大夫)주 006에 명하여 백관들을 거느리고 궁중을 지키게 하였으며, 몰래 천황의 시신을 거두어 무내숙녜에게 해로를 통해 혈문으로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 풍포궁에 빈소를 차리고 무화빈렴(无火殯斂;호나시아가리)주 007[无火殯斂은 호나시아가리(褒那之阿餓利)라고 읽는다.]을 하였다. 『古事記』 孝元天皇段에는 建內宿禰라고 하며, 전승상의 인물이다. 『古事記』에서는 제8대 孝元天皇의 孫, 『日本書紀』에서는 孝元天皇의 증손으로 나온다. 孝元天皇은 缺史八代에 해당되는 천황으로 7세기 후반에 일본의 역사를 늘이기 위해 조작하여 삽입된 8명의 천황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실존하지 않았다. 이러한 孝元天皇의 자손이라고 하는 武內宿禰는 『古事記』에서는 제13대 成務부터 제16대 仁德까지, 『日本書紀』에서는 제13대 景行부터 仁德까지 장기간에 걸쳐 大臣으로서 천황을 보좌하면서 한반도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新撰姓氏錄』에 의하면 武內宿禰의 후예씨족으로 葛城·平群·巨勢·蘇我氏 등이 나오는데 모두 皇別씨족이다. 『日本書紀』 경행천황 3년 2월조 武內宿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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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1)
『古事記』 孝元天皇段에는 建內宿禰라고 하며, 전승상의 인물이다. 『古事記』에서는 제8대 孝元天皇의 孫, 『日本書紀』에서는 孝元天皇의 증손으로 나온다. 孝元天皇은 缺史八代에 해당되는 천황으로 7세기 후반에 일본의 역사를 늘이기 위해 조작하여 삽입된 8명의 천황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실존하지 않았다. 이러한 孝元天皇의 자손이라고 하는 武內宿禰는 『古事記』에서는 제13대 成務부터 제16대 仁德까지, 『日本書紀』에서는 제13대 景行부터 仁德까지 장기간에 걸쳐 大臣으로서 천황을 보좌하면서 한반도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新撰姓氏錄』에 의하면 武內宿禰의 후예씨족으로 葛城·平群·巨勢·蘇我氏 등이 나오는데 모두 皇別씨족이다. 『日本書紀』 경행천황 3년 2월조 武內宿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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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 이름
- 무내숙녜, 중신오적진련, 대삼륜대우주군, 물부담사련, 대반무이련, 무내숙녜
- 지명
- 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