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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축자의 오십적수(五十迹手)가 십악검 등을 바침

축자의 이도현주(伊覩縣主;이토노아가타누시)주 001
번역주 001)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에 등장하는 伊都國이 卑彌呼의 邪馬臺國에 복속되어 있던 사실을 설화적으로 기록한 부분이다. 이외에 奴國, 末盧國 등의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儺縣이나 松浦縣이 설치된다는 후술 기사도 伊都國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아래 伊蘇國 참조. 縣主에 대해서는 신무천황 2년 춘2월조 猛田縣主 참조. 伊覩國縣主(命)는 현재 伊覩神社(福岡市 西區)의 주신이며, 그 동쪽에 있는 丸隈山古墳의 주인공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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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선조인 오십적수(五十迹手;이토테)는 천황이 행차한다는 것을 듣고 5백 개의 가지(五百枝)가 있는 현목을 뽑아서 배의 고물 부분에 세우고, 윗가지에는 팔척의 옥을 걸고, 가운데 가지에는 백동경을 걸고, 아랫가지에는 십악검을 걸고서 혈문인도(引嶋;히코시마)주 002
번역주 002)
현재 山口縣 下關市 남단에 있는 彦島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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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맞이하여 바쳤다. 그리고 “신이 감히 이 물건을 헌상하는 까닭은 천황이 팔척 옥의 굽은 것주 003
번역주 003)
『日本書紀』 神代 上의 ‘八坂瓊之曲玉’을 의미한다. 神代 上 일서(6-2) 참조. 일본에서는 繩文 중기부터 奈良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비취로 만든 曲玉(일본에서는 勾玉)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일찍이 일본학계에서는 곡옥이 일본에서 발생한 독특한 장식품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곡옥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 근거로 한반도에서는 비취산지가 발견되지 않고, 곡옥도 한반도 남부에 한정되어 출토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나아가 일본에서는 고분 중기에 곡옥의 사용이 줄어드는 반면 철과 금제품이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철과 금을 다량으로 수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일본에서는 철과 금을 수입하는 댓가로 곡옥을 한반도로 수출하였고, 그 결과 한반도에서는 곡옥의 사용이 이전보다 현저하게 증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신라 고분 출토 유물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곡옥이 한국과 일본의 중요한 교역품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일본은 선사시대 유적지뿐만 아니라 出雲지방을 비롯한 北陸지방까지 광범위하게 4~6세기대 비취가 출토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각지에서도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유적지에서 곡옥이 발견되고 있다. 발견되는 곡옥 중에는 일본산 곡옥과 비슷한 것도 있고, 더욱 정교한 것도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곡옥을 가지고 그 기원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비취의 원산지 추정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학계에서는 요령성 청동기 문화기의 반월형옥이 한반도에 유입된 후 일본열도에도 전해졌다고 보거나,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독자적인 한국산 곡옥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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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이 구석구석까지 천하를 다스리시고, 또 백동경과 같이 분명히 산천해원(山川海原)을 둘러보시며, 십악검을 들고서 천하를 평정하시라는 뜻이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은 오십적수를 칭찬하고, “이소지(伊蘇志;이소시)”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오십적수의 본토를 이소국(伊蘇國;이소노쿠니)주 004
번역주 004)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에 등장하는 伊都國을 가리킨다. 즉 위 기사는 『日本書紀』편찬자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의 내용을 참고하여 먼저 卑彌呼를 신공황후로 설정하고, 비미호의 邪馬臺國에 복속되어 있던 이도국을 마치 신공황후가 복속시킨 것처럼 꾸며낸 이야기이다. 伊都國은 왜인조에 의하면 末廬國에서 동남쪽으로 500里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현재 福岡縣 糸島市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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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하였다. 지금 이도(伊覩;이토)라고 하는 것은 이 말이 변한 것이다.

  • 번역주 001)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에 등장하는 伊都國이 卑彌呼의 邪馬臺國에 복속되어 있던 사실을 설화적으로 기록한 부분이다. 이외에 奴國, 末盧國 등의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儺縣이나 松浦縣이 설치된다는 후술 기사도 伊都國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아래 伊蘇國 참조. 縣主에 대해서는 신무천황 2년 춘2월조 猛田縣主 참조. 伊覩國縣主(命)는 현재 伊覩神社(福岡市 西區)의 주신이며, 그 동쪽에 있는 丸隈山古墳의 주인공으로 추정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현재 山口縣 下關市 남단에 있는 彦島로 추정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日本書紀』 神代 上의 ‘八坂瓊之曲玉’을 의미한다. 神代 上 일서(6-2) 참조. 일본에서는 繩文 중기부터 奈良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비취로 만든 曲玉(일본에서는 勾玉)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일찍이 일본학계에서는 곡옥이 일본에서 발생한 독특한 장식품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곡옥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 근거로 한반도에서는 비취산지가 발견되지 않고, 곡옥도 한반도 남부에 한정되어 출토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나아가 일본에서는 고분 중기에 곡옥의 사용이 줄어드는 반면 철과 금제품이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철과 금을 다량으로 수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일본에서는 철과 금을 수입하는 댓가로 곡옥을 한반도로 수출하였고, 그 결과 한반도에서는 곡옥의 사용이 이전보다 현저하게 증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신라 고분 출토 유물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곡옥이 한국과 일본의 중요한 교역품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일본은 선사시대 유적지뿐만 아니라 出雲지방을 비롯한 北陸지방까지 광범위하게 4~6세기대 비취가 출토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각지에서도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유적지에서 곡옥이 발견되고 있다. 발견되는 곡옥 중에는 일본산 곡옥과 비슷한 것도 있고, 더욱 정교한 것도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곡옥을 가지고 그 기원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비취의 원산지 추정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학계에서는 요령성 청동기 문화기의 반월형옥이 한반도에 유입된 후 일본열도에도 전해졌다고 보거나,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독자적인 한국산 곡옥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에 등장하는 伊都國을 가리킨다. 즉 위 기사는 『日本書紀』편찬자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의 내용을 참고하여 먼저 卑彌呼를 신공황후로 설정하고, 비미호의 邪馬臺國에 복속되어 있던 이도국을 마치 신공황후가 복속시킨 것처럼 꾸며낸 이야기이다. 伊都國은 왜인조에 의하면 末廬國에서 동남쪽으로 500里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현재 福岡縣 糸島市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오십적수, 오십적수, 오십적수
지명
축자, 혈문,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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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자의 오십적수(五十迹手)가 십악검 등을 바침 자료번호 : ns.k_0016_0040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