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제목
본문
날짜
~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오십령의원(五十鈴依媛)을 황후로 삼음

 
  • 날짜(수정 2년) B.C.580년 1월
2년 봄 정월에 오십령의원(五十鈴依媛;이스즈요리히메) [주001]
번역주 001
닫기

事代主神의 딸이며 수정천황의 어머니 媛蹈鞴五十鈴媛命의 여동생이다. 수정천황의 황후를 『日本書紀』 본문에서는 사대주신의 딸로 적고 있지만, 여기에 분주로 인용된 一書에서는 磯城縣主의 딸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日本書紀』 편찬자가 縣主 집안은 황후의 집안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고친 것으로 추측된다.

을 황후로 삼았다[어떤 책(一書)에서는 기성현주(磯城縣主;시키노아가타누시) [주002]
번역주 002
닫기

磯城縣主는 천무천황 12년(684)에 連을 사여 받은 大和盆地의 오래된 씨족이다. 『古事記』에서는 師木(시키)縣主로 표기하였으며, 磯城縣主가 제2대 綏靖천황부터 제4대 懿德天皇까지 천황의 妃를 배출하였다고 하였다. 『日本書紀』에 인용된 一書에서는 磯城縣主가 제2대 綏靖천황부터 제6대 孝安天皇까지 천황의 妃를 배출하였다고 전한다.

의 딸 천파원(川派媛;카하마타히메) [주003]
번역주 003
닫기

『古事記』에서는 河俣比賣로 표기하였다.

이라고 하였다. 어떤 책(一書)에서는 춘일현주대일제(春日縣主大日諸;카스가노아가타누시오호히모로) [주004]
번역주 004
닫기

春日은 현재 奈良縣 春日山의 산록지대다. 사서에서 춘일현주가 보이는 곳은 이곳뿐이다. 그러나 『古事記』에서는 孝靈天皇段에 春日의 千千速若比賣, 開化紀의 建國勝春戶日賣의 딸 沙本之大闇見戶賣를 춘일현주의 일족으로 보아, 沙本之大闇見戶賣의 아들 沙本毘古의 모반으로 외척이었던 춘일현주도 멸망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古事記』의 모반이야기나 춘일현주가 수정천황의 비를 배출했다는 一書의 이야기는 춘일현주가 대화분지의 유력한 세력이었다가 몰락하였음을 말해준다.

의 딸 사직원(糸織媛;이토리히메)이라 하였다.]. 즉 천황의 이모다. 황후는 기성진언옥수간천황(磯城津彥玉手看天皇;시키츠히코타마테미노스메라미코토) [주005]
번역주 005
닫기

安寧천황이다.

을 낳았다.

 

주 001
事代主神의 딸이며 수정천황의 어머니 媛蹈鞴五十鈴媛命의 여동생이다. 수정천황의 황후를 『日本書紀』 본문에서는 사대주신의 딸로 적고 있지만, 여기에 분주로 인용된 一書에서는 磯城縣主의 딸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日本書紀』 편찬자가 縣主 집안은 황후의 집안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고친 것으로 추측된다.
주 002
磯城縣主는 천무천황 12년(684)에 連을 사여 받은 大和盆地의 오래된 씨족이다. 『古事記』에서는 師木(시키)縣主로 표기하였으며, 磯城縣主가 제2대 綏靖천황부터 제4대 懿德天皇까지 천황의 妃를 배출하였다고 하였다. 『日本書紀』에 인용된 一書에서는 磯城縣主가 제2대 綏靖천황부터 제6대 孝安天皇까지 천황의 妃를 배출하였다고 전한다.
주 003
『古事記』에서는 河俣比賣로 표기하였다.
주 004
春日은 현재 奈良縣 春日山의 산록지대다. 사서에서 춘일현주가 보이는 곳은 이곳뿐이다. 그러나 『古事記』에서는 孝靈天皇段에 春日의 千千速若比賣, 開化紀의 建國勝春戶日賣의 딸 沙本之大闇見戶賣를 춘일현주의 일족으로 보아, 沙本之大闇見戶賣의 아들 沙本毘古의 모반으로 외척이었던 춘일현주도 멸망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古事記』의 모반이야기나 춘일현주가 수정천황의 비를 배출했다는 一書의 이야기는 춘일현주가 대화분지의 유력한 세력이었다가 몰락하였음을 말해준다.
주 005
安寧천황이다.
 
이름
오십령의원 , 천파원 , 대일제 , 사직원 , 기성진언옥수간천황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