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영토해양국제사법판결선집

당해 사건에서 지도가 기여할 것으로 주장되는 목적들

당해 사건에서 지도가 기여할 것으로 주장되는 목적들
1872년 이전
369. 18세기와 19세기 초부터 보다 오래된 지도들은 고래의 혹은 역사적 권원의 명제를 지지하기 위해 예멘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지도들은 명백하게 주카르-하니쉬 그룹과 북쪽 도서들이 홍해의 아프리카 측에서 보다 아라비아 측에서 식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 재판소는 예멘 왕국(Bilad el-Yemen)의 정확한 영토 범위를 판단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보다 오래된 지도들에서 그와 같은 당해 도서들의 예멘으로의 귀속이 존재하지 않는다.
370. 지도 증거로부터 (특히 예멘의 이맘(Imam)을 포함하여) 1872년 오토만의 정복 이전 남부 아라비아의 지배자들이 당해 도서들은 예멘 혹은 아라비아 연안의 부분으로 그들의 영토적 주장에 속하는 것을 인지했다는 점을 추론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손채색이 두 번째 단계에서 지도들에게 적용되어야만 했을 때의 시기 동안 제작된 지도들의 색상을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은 복귀되는(reversionary) 역사적 권원의 쟁점과 관련하여 결정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남부 아라비아 지배자들 자신이 이러한 지도들을 보았거나 승인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료에 기초한 결론은 기껏해야 박약한 것이다.
1872-1918년 시기
371. 유사하게 1872년 이후 및 1918년 이전의 지도들이 당해 도서들은 문제가 되는 시기 동안 오토만의 주권하에 속했으며 예멘의 주(vilayet)에 해당했으며 그러한 주(vilayet)의 부분으로 관리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예멘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당해 지도 증거는 당사국들이 합의하고 있는 사실관계인 오토만 제국이 당해 도서들에 대한 주권자였다는 사실을 확증시키고 있는 것 같다.
1924년과 1935년 사이의 시기
372. 예멘은 양차 대전의 사이 시기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을 당해 도서들에 대한 주권자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지도들을 제출했다. 이러한 지도들은 1933년, 1935년 및 1937년에는 식민성에 의해 그리고 1939년에는 이탈리아 아프리카성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이들은 이탈리아의 식민지 당국들이 당시 당해 도서들은 이탈리아의 에리트리아 식민지의 부분을 형성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예멘은 또한 식민성과 (1925년과 1933년) 이탈리아 아프리카성(1939년)이 제작한 다른 공식적인 이탈리아 지도들을 제출하였는데, 이들 중 첫 번째 두 지도는 당해 도서들을 명백하게 에리트리아 지방이 아닌 예멘에게 귀속시키고 있으며, 세 번째 지도는 단순히 당해 도서들을 이탈리아의 동아프리카 영토로부터 누락시키고 있다.
373. 에리트리아는 반대의 목적으로 1920년대의 공식적인 이탈리아 지도를 제출했다. 그러나 분별하기 곤란하여 손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동 시기의 공식적인 이탈리아의 지도들과 관련하여 예멘이 제출한 증거에 비해 식민성의 1933년과 1935년 지도들은 명확하지 못하다. 또한 제작일자도 특정되어 있지 않다.
374. 이들이 공식적인 이탈리아의 출처로부터 이익에 반하는 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 에리트리아의 증거에 의해 논박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탈리아가 자신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시 당해 도서들에 대한 주권자로 간주했다는 에리트리아 주장과 관련성이 있다. 이러한 증거의 가장 훌륭한 해석은 공식적인 이탈리아의 지도제작은 정식으로 당해 도서들을 양차 대전 사이의 시기에서 이탈리아의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당해 도서들을 예멘으로 이양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결국 당해 증거는 이탈리아가 양차 대전의 사이의 시기에 당해 도서들을 이탈리아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립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적어도 이 시기에 이탈리아가 당해 도서들을 이탈리아의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립하고 있다.
375. 그러나 동 재판소는 외교 기록과 1923년과 1939년 사이에 체결된 합의들에 기초하여 당해 도서들의 지위에 대한 법적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도 증거는 - 비록 도달된 결론을 지지하고 부합하지만 - 그 자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태도나 의도와 관련한 기록에 다른 증거가 없었다면, 이러한 증거는 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1950년 국제연합의 취급
376. 예멘은 국제연합이 당해 도서들을 에리트리아 지방(이디오피아내)의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950년대 초반의 시기에 제작된 지도들을 제출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증거는 1950년 국제연합의 지도이다. 에리트리아는 “어떠한 공식적 지도가 국제연합에 의해 채택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면서, 당해 지도의 정확성, 기원, 진본여부와 효과를 강하게 항변했다.
377. 국제연합의 관행에 있어서 지도의 발간은 국제연합에 의한 주권적 권원의 승인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은 잘 수락되고 있다.
378. 당해 지도가 에리트리아를 위한 국제연합위원회의 보고서에 공식적인 위원회 지도로서 혹은 타협으로서 - 혹은 심지어 단순히 예시적인 지도로서 - 첨부되었는지의 여부는 쟁점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증언하고 있는 바는 그것이 사용되고 회람되었으며 어떠한 반대도 수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떠한 항의가 1950년 혹은 그 이후의 시기에 기록되지 않았으며 이디오피아 자신은 당해 지도를 완전히 알고서도 당해 보고서를 찬성하는데 투표했다.
379. 그러나 당해 지도는 비록 당해 도서들이 예멘과 같이 동일한 색상을 띄고 있다하더라도 당해 도서들이 예멘의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없다. 이 경우 국제연합은 예멘과 관련이 없었다. 당해 지도는 사실 예멘과 그렇게 관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국제연합은 이디오피아와 예멘의 장래에 대해 행동을 취할 때 당해 도서들을 이디오피아나 에리트리아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이탈리아 지도 증거와 관련하여 언급된 바와 같이, 동 재판소는 이탈리아가 1940년경 당해 도서들에 대한 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이후 이디오피아(그리고 파생에 의한 에리트리아)가 이탈리아로부터의 승계에 의한 10년 이후에 권원을 취득할 수도 있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없었다.
통고된 견해
380. 에리트리아와 예멘 양국은 통고된 견해가 당해 도서들을 195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시기 동안 각기 이디오피아 혹은 예멘의 부분을 형성하는 것으로 승인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제3자(독립적이거나 상업적 지도 제작 출처 혹은 제3국의 첩보, 지도제작 및 항해 당국과 같은)에 의해 제작된 수많은 지도들을 제출했다.
381. 비록 동 재판소가 이러한 증거가 법적 권원의 징표로서 이용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정거를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예멘에 의해 제시된 의미에서 “일반적인 견해나 평판의 중요한 증거”이다. 그러나 제출된 상당한 수의 지도들이 일반적으로 당해 도서들은 1952년 전후에서 현재까지 주로 예멘에게 귀속되었지 이디오피아나 에리트리아에 귀속된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목할 만한 예외가 존재한다.
382. 비록 에리트리아는 몇몇의 존중할만한 독립적인 지도 증거를 제출하였지만, 이러한 증거는 타방측으로부터의 반증에 의해 다소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의 경우 동 재판소는 이를 제출하는 당사국에 의해 추구되는 지도들의 특징에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동 재판소는 지도자체로부터 특정의 지침이 없이 채색화 혹은 표제화에 대해서 보다 점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주저한다. 수많은 증거와 관련하여 에리트리아에 의해 주장된 이러한 근거에 기초한 결론들은 수락되지 않는다.
383. 또한 예멘이 제출한 중앙정보국(CIA)의 지도들과 미국방성 지도국의 1994년 해도들에서 확증적인 표제도 존재한다.
이익에 반하는 승인
384. 1967년 미국무성은 황제 Haile Selassie의 워싱턴 방문시에 당해 도서들이 이디오피아의 것이 아닌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지도를 포함한 “예비 각서(Background Notes)”와 함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당해 도서들은 카마란(Kamaran)파라산(Farasan) 도서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Dahlaks는 또한 명백하게 흰색으로 이디오피아의 부분으로 표기도어 있다.
385. 예멘은 이디오피아, 독립이전의 에리트리아 독립운동 및 독립이후의 에리트리아 정부가 당해 도서들을 이디오피아나 에리트리아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멘의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재출했다. 에리트리아는 또한 예멘이 당해 도서들을 이디오피아나 에리트리아에 귀속시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를 제출했다. 동 재판소는 이 증거의 대부분이 1992년 이후 간행된 에리트리아 지도들은 예외로하고 취소되는 경향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386. 나아가 예멘은 에리트리아에 의해 사기업이 에리트리아의 관광성을 위해 제작했으며 수많은 부정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된 특정의 지도가 사실 예멘과 미국의 사절단을 포함하여 외국 사절단에 배포되었으며 이는 또한 “아스마라의 에리트리아 정부 관청에 걸려있었다”라는 점을 항변했다. 이러한 진술은 반박되지 않았다. 동 재판소는 에리트리아가 독립한 후 제작한 초기 지도가 현재 주장하고 있는 도서들의 모두를 에리트리아에 귀속시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387. 에리트리아로서는 예멘이 명백하게 당해 도서들을 이디오피아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1975년에 발간된 지도를 포함하여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지도들의 제작을 승인했다는 점도 주장하고 있다.

색인어
지명
카마란(Kamaran), 파라산(Farasan), Dahlaks
법률용어
역사적 권원, 역사적 권원, 주권적 권원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당해 사건에서 지도가 기여할 것으로 주장되는 목적들 자료번호 : nj.d_0010_0010_008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