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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해 도서에서의 행위

 
 

 당해 도서에서의 행위

 

318. 당해 도서에서의 관할권적 조치의 수행을 조사하기 위해 동 재판소는 당해 도서 주변 수역에서의 조치 뿐만 아니라 당해 도서의 육지영토에서의 행위의 증거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러한 증거는 당해 도서의 상륙 부대들, 당해 도서에서의 군사 기지의 설립, 당해 도서에서의 시설물의 건립 및 유지, 당해 도서의 육지에서의 행위의 허가, 당해 도서에서의 사건과 관련한 형사 혹은 민사 관할권의 행사, 등대의 건립 혹은 유지, 석유 양허의 부여 및 당해 도서의 제한된 생활 및 주민정착 등을 포함한다.
 

 당해 도서의 상륙 부대들

 

319. 제출된 직접 증거는 양측에 의한 당해 도서에서의 상륙활동이 드물거나 없었다는 점을 나타내었다.
320. 에리트리아의 증거는 비상사태인 20년 동안 당해 도서의 연안과 주변에서 분리독립운동을 퇴치하는데 종사한 이디오피아 해군부대에 의한 상당한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은 분명히 당해 도서들이 독립전쟁과 연계하여 반란군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었다. 위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당해 도서들 주변에서의 해군작전의 맥락속에서 두 번의 실질적인 순시와 이디오피아 육군에 의한 수많은 특정되지 않은 상륙당사자가 1970년과 1988년 사이의 시기를 위한 증거속에 존재하고 있다.
321. 예멘 측으로는 도서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둔 가능성에 대한 공표가 있은 후인 1973년 쟈발 주카르아부 알리 도서들에 대한 공식적인 방문이 있었다. 특정의 정보에 대한 동 재판소의 요청에 답하여 사무총장은 1998년 7월 28일 동 재판소 소장에게 서한을 보내어 “사무총장의 지휘하에 아랍국가연맹의 어떠한 공식 대표단에 의한 홍해에 위치한 당해 도서들 중 어떠한 도서에도 방문”이 이루어진 적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당해 서한은 Dahlak 도서들과 아싸브 만에 위치한 다른 도서들의 이스라엘의 이용에 대한 보고들에 대한 아랍의 우려를 논의하기 위한 아랍연맹의 사무총장과 이디오피아 외무부 장관간의 1973년 회담을 보고하였다. 이디오피아는 이스라엘의 주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아랍연맹 대표단이 당해 도서들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러한 방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아랍연맹의 서한은 “1971년과 1973년 예멘 장교를 포함한 아랍국가연맹 회원국의 군사위원회가 예멘 인민 공화국과 예멘 아랍 공화국 정부들의 유일한 협력과 협조로 주바이르 도서들은 물론 주카르를 포함한 하니쉬 그룹의 도서들을 방문했다.” 사무총장에 따르면, 이러한 방문의 보고서가 연맹의 공문서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322. 당해 도서들에서의 군사 주둔에 대한 다른 예멘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1965년부터 1977년까지가 아닌 특정되지 않은 일자의 시기를 거쳐 특정되지 않은 상륙을 묘사하고 있는 한 건의 증인 진술서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323. 예멘은 또한 1987년과 1990년 Staff and Command College의 교수와 학생에 의한 현장답사와 관련한 정보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당해 답사들은 매우 짧은 시기 이상 동안에 이루어 졌거나 어떠한 지속적인 효과를 남겨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해 도서들에서의 군사기지의 설립

 

324. 제출된 증거는 1995년 이전에 당해 도서들에서 어떠한 영속적인 군사기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비록 에리트리아의 진술서가 상륙 부대들의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만 어떠한 수비대도 설립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수비대의 관련성도 부인되었다고 설명되었다. 오히려 에리트리아는 법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문제가 되는 영토의 성격에 맞추어진 주권적 조치 측 군사 감시와 어업 규제였다고 강조했다.
325. 예멘과 관련하여 비록 변론서가 “임시적인 군사 수비대”가 1973년 방문의 “시기에 쟈발 주카르에서 설립되었으며”, “1970년대 동안 정부는 대 하니쉬를 포함한 당해 그룹에 위치한 다른 도서들에 수비기지를 배치했다”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러한 진술을 입증하는 어떠한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 당해 도서위에 서있는 부대원의 집단의 사진은 영속성의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또한 어떠한 구조물이나 건물이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 점이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어떠한 구조물이나 건물이 존재했다면 영상에 담겼을텐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326. 동 재판소는 영속적인 수비대나 군사기지가 1995년 분쟁의 발생이후까지 당해 도서에서 건립되었다는 점을 수락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해 도서들에서의 시설물의 건립 및 유지

 

327. 당해 도서들에서 에리트리아에 의한 어떠한 유형의 시설물의 건립이나 유지의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리아는 이디오피아의 “분쟁도서들에 대한 주권적 지배의 공고화”의 징표로서 1967년 아덴의 이전 이후 아부 알리쟈발 알-타이르에서의 등대들이 당시 아사마라에 근거지를 준 사기업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이디오피아의 법규가 등대의 관리 및 유지와 관련하여 당해 기업에 의한 거래에 적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 재판소는 이를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328. 그러나 예멘은 몇몇의 등대를 건립하였으며 다른 등대들을 유지했다. 등대 및 항해보조물의 운영과 유지는 통상적으로 안전한 항행의 유지에 연결되어 있으며 통상적으로 주권의 실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당해 도서들에서 영국 및 이탈리아 회사 및 당국에 의한 등대의 유지는 어떠한 영유권 주장이나 결론을 불러일으키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행위 및 1989년 홍해 등대 회담에서 예멘의 참가의 관련성은 제6장에서 논의되고 있다.
329. 예멘은 또한 국가 행위의 예로서 1992년 예멘 정부를 대리하여 프랑스 회사에 의한 쟈발 주카르대 하니쉬에서의 두 개의 측지소의 부지확보와 설치를 지적하고 있다. 에리트리아의 답변은 이러한 표지들이 비밀리에 설치되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동 재판소는 이러한 성질의 작은 건조물에 가중치를 부여할 수 없지만 사실상 당해 표지들은 1995년 양국의 국가원수들 간의 서신 교환 이전에 설치된 것이며 예멘의 측지소 지도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330. 또한 예멘의 증거물에 제시되어 있는 사찰과 성지의 유지는 私的 성격의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정부의 행위도 제출되기 않고 있다. 동 재판소에 “우리 정부는 [대 하니쉬의] 알-슈라(al-Shura)알-하발(al-Habal)사이에 헬기를 위한 이착륙장을 설립했다”라는 입증되지 않은 증언도 존재한다. 1985년 토탈(Total)회사의 양허와 관련하여 예멘의 허가와 함께 대 하니쉬에서의 토탈회사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이후 토탈회사의 노동자들에 의한 휴식과 휴양 방문지로 공여된 활주로는 제9장에서 논의되고 있다.
331. 비록 1995년 5월 예멘의 일반투자당국의 의도와 관련한 증거는 최근의 것이며 그러한 징표들이 특정의 대상이 없는 국가행위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고위 정부급에 있는 예멘 당국들이 대 하니쉬, 저 하니쉬, 아부 알리, 쟈발 알-타이르알-주바이르의 관광을 위한 투자가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공식적인 정부정책을 암묵적으로 당시 당해 도서들에 대한 예멘의 영유권에 기초하고 있다.
 

 당해 도서들의 육지에서의 활동의 허가

 

332. 에리트리아는 사기업인 Savon & Ries가 라디오 수신기를 당해 회사가 등대를 유지하고 있었던 섬인 아부 알리쟈발 알-타이르로 선박 운송하는 것에 대한 승인이 요청되었다는 사실은 국가 지배권의 행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력이 군사활동이 수행되고 있는 구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기업에 의해 이용되고 있는 전자장비의 규제는 관련 도서들의 육지영토와 관련하여 주권적 권한의 행사로 간주될 수 없다.
333. 에리트리아는 인근에서 수행되는 석유활동과 관련하여 대 하니쉬에 라디오 송신중계소의 운영을 위한 허가의 부여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334. 예멘과 관련하여, 당해 도서들에서의 등대의 건립 및 유지와 관련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해 도서들에서 대부분의 유용한 경제활동과 이익은 홍해에서의 그들의 지위와 주변 수역에 대한 관계(밀수, 어업 혹은 관광의 목적이든 간에)에 의해 발생되는 한, 발생한 대부분의 허가 행위는 모두 수역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수역과 관련이 있는 하나의 단순하지만 중요한 당해 도서들에서의 육지 자원의 이용 또한 최근 예멘 정부에 의해 승인된 대 하니쉬에 대한 아르두코바 협회(Ardoukoba Society)의 수륙양용의 과학조사탐사였다.
 

 당해 도서들에서의 사고와 관련한 형사 혹은 민사 관할권의 행사

 

335. 1976년 에리트리아 정부의 군사 법원은 아부 알리쟈발 알-타이르에서 등대를 서비스하고 있는 등대 유지 회사인 Savon & Ries의 노동자를 당해 도서들에서 정부전복그룹을 지도하고 훈련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했다. 재정 관리직원의 처형, 등대관리책임자의 추방 혹은 투옥이 이어졌으며 회사는 사무소를 아사마라에서 지부티로 옮기게 되었다.
336. 당해 도서들에서 발생한 사한에 대한 예멘 당국에 의한 최근의 형사 관할권의 행사의 예로는 1976년 행방불명된 다우선의 조사와 1992년 대 하니쉬 주변에서 어부의 바다에서의 실종의 조사를 포함한다.
337. 게다가 예멘은 수년 동안 지방의 어부들이 “지혜와 지식으로 알려진 사람인” 아킬(aq'il)의 권한하에서 지방 분쟁의 중재라는 자신의 관습법 체제를 이용해 왔다고 주장한다. “대 하니쉬에는 년중 일부는 예멘 본토 그리고 일부는 자신의 거주지(‘이즈바트 알-사이드 알리(Izbat al-Sayyid Ali)’에 주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장 주목 받는 선임 “해양의 아킬(Aq'il)”이 있다. 마을의 아킬 혹은 해양의 아킬을 넘어서는 최종 권한은 “어부의 아킬”로 예멘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고위 인사이다.
338. 아킬들은 예멘 정부에 의해 “우르프(urf)라고 알려진 잘 확립된 예멘의 관습법 기구”라고 주장되는 것을 어부들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용한다. 동 재판소에는 아킬의 판결이나 결정이 구속력이 있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주023]
각주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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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이 제출한 증인 진술서에 따르면, “... 위원회의 불리한 결정을 회피하고자 하는 분쟁당사자는 일정한 사정하에서 투옥을 포함한 국가에 의한 조치에 처해질 수 있다.”

사실 막 언급된 사람을 배에서 바다로 빠트린 사건에서 동 재판소에 “선주와 선원 양자는 어부의 Aq'il Sheikh라고 알려진 지방 공무원에게 알렸고, 담당부처는 당해 아킬에 의해 통고되었다”라는 증거가 제출된 바 있다.
339. 작은 분쟁의 중재의 관습법 체제의 존재는 에리트리아에 의해 반박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르프와 아킬 체제가 예멘의 영토내에서 예멘인과 비예멘인들에게 적용가능하며 정기적으로 당해 도서들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증거가 존재한다.
340. 동 재판소는 이해하기를 아킬 체제에서 적용된 법규는 예멘의 법에서 그 기원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업 무역의 행위로부터 도출되며 적용될 수 있는 사적 정의의 요소들이다. 그들은 지역적 기초에서 어로행위에 종사하는 자들에 의해 유지된 어업법(lex pescatoria)이다. 이는 또한 주요 어시장이 예멘 측인 호데이다(Hodeidah)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해 도서들 지역에서의 어로행위는 오랫동안 지역적 기초에서 홍해의 각 측에서 어부들에 의해 비차별적으로 수행되어 왔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가 예멘에 의해 승인되거나 지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사적인 특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등대의 건립 혹은 유지

 

341. 등대의 문제는 이미 위 제6장에서 논의되었다. 이 부분은 실효적 지배(effectivités)에 관한 당해 장의 목적을 위해서만 이러한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아부 알리와 쟈발 알-타이르와 같은 등대들은 등대 관리 회사인 Savon & Ries에 의해 관리되었다. 이 회사는 1976년까지 아스마라에서 운영을 유지하였으며, 1976년 이디오피아 정부에 의한 정부전복활동의 혐의로 직원이 기소되었기 때문에 사무소를 소말리아로 이전했다 (위 para. 335 참조). 그러나 도서들에서 등대시설물의 유지를 위한 관리 협약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사기업의 사무소의 한 국가내에서의 위치가 당해 국가에 의한 힘과 권한의 국제적 발현을 구성한다는 결론을 위해 어떠한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342. 예멘과 관련하여, 1987년에 개시한 당해 도서들에서의 새로운 등대의 설치 계획이 착수되었는데, Centre Peak는 1987년과 1988년에 쟈발 주카르는 1989년에 시작되었다.
343. 1989년 홍해 등대에 관한 런던 회의 이후 예멘은 쟈발 알-타이르Quoin (아부 알리의 도서들)에서 새로운 태양광 등대를 설치하였다. 1991년 새로운 등대가 Low Island에서 건립되었다. 마침내, 1991년에는 대 하니쉬에서 등대가 건립되었다.
344. 예멘 정부 당국들은 각각의 이들 등대들의 건립과 표식을 위 282문에서 보다 상세히 기술된 바와 같이 공공 통지문이나 항해자 통지의 방식으로 대중에게 알렸다.
345. 당해 사건에서 등대의 건립과 유지에 부여될 수 있는 법적 효과는 위 제6장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
 

 석유 양허의 부여

 

346. 보충적인 변론서와 구두 변론에서 석유 합의 및 활동의 법적 의의에 부여된 중요한 관심 때문에 이 주제는 제9장에서 독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당해 도서에서의 제한된 생활

 

347. 몇몇의 예멘 어부들이 대 하니쉬, 저 하니쉬주카르에 “숙소들”을 유지해 왔으며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그러한 구조물을 유지해왔거나 여름철을 위해 대 하니쉬혹은 Addar Ail Islets저 하니쉬에서 거주했다는 증거도 있다.
348. 에리트리아는 에리트리아 어부들이 어로철 중 짧은 시기 동안 당해 도서들에서 체류하곤 했다는 몇몇의 증거를 제출하였지만, “거주”의 주장은 예멘을 대리하여 이루어 진 증거 기록에서 현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어부에 의한 “당해 도서들에서 체류한 자중 내가 알기로 가장 오래된 것은 7에서 8개월이었다”라는 증거도 존재한다.
349. 변론에서 예멘은 “몇몇의 예멘 어민 가족들이 여러 세대동안 하니쉬 그룹에서 영구적인 존속을 유지해 왔다”라고 진술하고 있으며, 어부들에 의한 “임시적인 숙소”와 다른 임시적 주거지의 논의와 동일한 맥락속에서 “하니쉬 그룹에서의 어민 가족들의 거주”를 언급하고 있다. 어떤 특정의 증거도 당해 도서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 대해 제출되지 않았다.
350. 한 예멘의 증인 진술서는 해군의 상륙 부대들이 “이들 도서들 중 몇몇에서 정주하면서 생선을 절이고 말리며 수개월 동안 그곳에 체류하고 있는 많은 예멘 어부들을 만나곤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351. 어로철 동안 각 측에서 온 어부들은 항구로 돌아가는 것이 - 이디오피아/에리트리아에 있든 예멘에 있든 간에 - 바람이 정방향이라 하더라도 온나절의 항행이 걸리기 때문에 어로행위를 마무리 하는데 여러 낮과 밤을 보내는 것으로 기대될 수 있었다. 에리트리아의 증거는 예멘의 어부들이 “단지 3일 혹은 4일 동안 당해 도서들 주변에서 체류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라는 것이다. 또다른 나이든 에리트리아 어부는 “우리는 당해 도서들에 일년에 두 번 한번에 3개월 동안 가곤했다. 우리들 중 몇몇은 당해 도서들에서 자는 것을 선호했으며, 다른 이들은 선상에서 자곤 했다. 당해 도서들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에게 그곳에서 잘 수 없다도 말하지는 않았다” [주024]
각주 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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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주: 당해 문장은 다른 문장과의 관계를 고려할 경우 매우 어색하다. 원문은 “Since the islands were not inhabited, no one told us we could not sleep there.”이라고 되어 있는데 역자의 생각으로는 “Since the islands were not inhabited, no one told us we could sleep there”이라고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즉 이러한 필자의 생각을 번역하면 “당해 도서들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에게 그곳에서 잘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가 된다.

라고 이야기한다.
352. 예멘의 증인은 자신의 진술서에서 “대 하니쉬에서 나는 알-슈라(al-Shura) 정박지에서 거주하곤 했다... 그곳에는 우리가 그늘을 찾을 수 있는 나무들이 있었다. 우리는 숙소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당해 진술서는 계속해서 “쟈피르(Jafir) 정박지 근처에는 선장 이브라힘 살림(Ibrahim Salim)과 그의 선원들의 숙소가 있다”라고 하면서 대 하니쉬의 정박지들을 서술하고 있다. 당해 도서의 다른 한쪽 끝에는 많은 다른 이들이 내가 있는 알-슈라(al-Shura)의 정박지와 같은 곳에서 거주하였고 이후에는 알-하발의 숙소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븐 알완(Ibn 'Alwan) 정박지에 거주했다.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븐 알완 정박지에 거주한다. 알-카타바(al-Qataba)로부터만 해도 40척 이상의 후리들(huris) [작은 보트]이 있다.”
353. 첫 번째 결론은 당해 도서의 거주민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시적 혹은 계절에 따른 거주는 발생하였으며 이는 수년동안 발생하고 있었다는 점이 되어야 한다. 에리트리아는 자신의 어부들이 압도적이었이다고 주장하고 예멘은 그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동 재판소가 간헐적이며 상호 충돌하는 증거에 기초하여 동 사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의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국적민이 우세하고 다른 국적민은 없다라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양자 모두 다양한 숫자와 다양한 시기에 당해 도서들에서 현존하고 있었다는 가능성과 상대적 이용의 어떠한 정확한 계산도 여러 시기에 걸쳐 진정으로 당해 수역과 그 자원의 공동의 이용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가능성은 존재한다.
354. 두 번째 결론은 당해 도서들에서의 생활 방식이 똑같이 비차별적이라는 점이 될 것다: 어떤 어부들은 자신의 선박에서 체류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해변에서 자고 있으며; 몇몇은 작은 피난처를 건립하고 있고; 다른 이는 보다 큰 피난처를 이용하고 있고; 몇몇은 그러한 구조물을 “정착지”로 간주하고 있다. 당해 기록으로부터 명백한 점 하나는 중요하고도 영구적인 숙소 구조물은 없었다는 점 혹은 사실상 건립되어 거주하기 위해 이용되어온 다른 유형의 중요하고도 영구적인 구조물은 없었다는 점이다.
355. 세 번째 결론은 당해 도서에서 체류하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간헐적인 언급에도 불구하고 여하한 가족생활이 사실상 당해 도서들에서 현존하고 있었는지는 증거로부터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당해 도서들의 이용이 필연적으로 계절적인 한, 이는 선험적으로(a priori) 유목민의 예에서와 같이 통상적인 공동체 활동이 지속되는 장소로 이동하는 가족단위의 의미에서 가족 생활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356. 마지막 결론은 당해 도서에서의 생활은 있는 그대로 어부들을 위한 계절적이며 임시적인 피난처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되어야 한다. 증거는 에리트리아와 예멘의 국적을 지니고 있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어로철 동안 또한 그들의 어획물을 건조시키고 절이기 위해 당해 도서에서 체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거주는 비록 계절적이고 정기적이라 하더라도 또한 임시적이고 비영속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357. 그러나 당분간 의문은 적지만 예멘과 에리트리아 (그리고 이디오피아) 국적민으로서는 이러한 유형의 활동이 1951년 영국-노르웨이 어업사건에서의 국제사법재판소의 언어에서 “그 범위가 순수하게 지리적 요소들 넘어서는 간과되어서는 안될 고려: 지역에 특수한 어떤 경제적 이익과 오랜 이용에 의해 명백하게 입증되는 현실과 중요성” [주025]
각주 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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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eries Case (U.K. v. Nor.) 1951 I.C.J. 116 (Dec. 18) at 133.

을 나타내는 활동이다.
 

주 023
예멘이 제출한 증인 진술서에 따르면, “... 위원회의 불리한 결정을 회피하고자 하는 분쟁당사자는 일정한 사정하에서 투옥을 포함한 국가에 의한 조치에 처해질 수 있다.”
주 024
역자주: 당해 문장은 다른 문장과의 관계를 고려할 경우 매우 어색하다. 원문은 “Since the islands were not inhabited, no one told us we could not sleep there.”이라고 되어 있는데 역자의 생각으로는 “Since the islands were not inhabited, no one told us we could sleep there”이라고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즉 이러한 필자의 생각을 번역하면 “당해 도서들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에게 그곳에서 잘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가 된다.
주 025
Fisheries Case (U.K. v. Nor.) 1951 I.C.J. 116 (Dec. 18) at 133.
 
지명
쟈발 주카르 , 아부 알리 , Dahlak , 주바이르 , 주카르 , 하니쉬 , 쟈발 주카르 , 대 하니쉬 , 아부 알리 , 쟈발 알-타이르 , 아사마라 , 주카르 , 대 하니쉬 , 대 하니쉬 , 알-슈라(al-Shura) , 알-하발(al-Habal) , 대 하니쉬 , 대 하니쉬 , 저 하니쉬 , 아부 알리 , 쟈발 알-타이르 , 알-주바이르 , 아부 알리 , 쟈발 알-타이르 , 대 하니쉬 , 대 하니쉬 , 아부 알리 , 쟈발 알-타이르 , 대 하니쉬 , 대 하니쉬 , Centre Peak , 쟈발 주카르 , 쟈발 알-타이르 , Quoin , Low Island , 대 하니쉬 , 저 하니쉬 , 주카르 , 대 하니쉬 , Addar Ail Islets , 저 하니쉬 , 하니쉬 , 하니쉬 , 대 하니쉬 , 알-슈라(al-Shura) , 쟈피르(Jafir) , 대 하니쉬 , 알-슈라(al-Shura) , 이븐 알완(Ibn 'Alwan) , 알-카타바(al-Qataba)
법률용어
민사 관할권 , 양허 , 주권적 지배 , 영유권 , 영유권 , 형사 관할권 , 실효적 지배(effectivités) , 선험적으로(a pri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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