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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당해 사건의 몇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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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초기에 당해 사건의 몇가지 특징에 주목하는 것은 간편하다. 당사국들간에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예멘은 자신의 존재를 중세시기와 심지어 오토만 제국의 성립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한편 에리트리아는 1990년대 초기 이디오피아로부터 분리되어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리아는 분쟁도서에 대해 자신의 권원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이탈리아 식민지 시대로부터 역사적 승계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이디오피아의 고대 국가의 부분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연방시기를 통해 찾아가고 있다. 따라서 재판소는 축적된 주장, 점유 혹은 이용의 사례를 통해 혹은 예멘의 주장의 경우 “고래의 권원(ancient title)”의 응고화, 지속성 및 확증을 통해 법적 권원의 확립이라는 증거로서 제출된 상당한 양의 자료를 양 당사국에 의해 제공받아 왔다.
92. 이 자료의 상당수는 조치와 반응 혹은 당사국이나 그 선행국의 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양 당사국이 홍해의 한쪽 편에서 내전에 시달리는 시기를 경험한 바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예멘은 1962년부터 1970년 사이 이디오피아는 1993년 에리트리아의 독립에 이르게 한 에리트리아 반군과의 혹독한 유혈충돌을 경험한 바 있다.
93. 작은 것에서 매우 작은 것에 이르는 분쟁 도서와 소도(islets)는 매력적이지 않으며 담수도 없고 생활하기에도 매우 힘든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이래 지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해상교통로 중의 하나였던 곳에 걸쳐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분쟁 도서의 이러한 상호 모순적 측면은 재판소에 제출된 자료속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초기 시기 동안 당해 도서는 이를 피난지로 이용하며 정박을 위해 그 물을 사용했던 지역의 전통적 어부를 제외하고는 연안국에 의해 좀처럼 인식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경쟁적인 식민경영국가 특히 대영제국과 이탈리아로부터는 심지어 임시 점령에 이르는 상당한 관심을 받았었다. 운하의 개통이래 도서가 위치한 남부에서 점점 좁아지면서 당해 바다는 유럽에서 인도, 동인도 제도 및 극동으로의 주요 통로였기 때문에 이러한 관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94. 대영제국, 이탈리아 및 다소 정도는 덜 하지만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당해 도서에 대한 종전의 관심은 당사국이 재판소에 제출한 사료의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당사국은 당시 기록물 특히 당시 영국 정부의 오랜 문서에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해 사료의 상당수는 흥미롭고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하나의 주의(caveat)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사료중 일부는 British Foreign Office의 기록물내에 있으며 때로는 Italian Foreign Office의 기록물내에 있는 내부적 각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재판소는 이러한 내부적 각서가 반드시 정부의 견해나 정책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어느 한 공직자가 당시 다른 특정 공직자에게 의견을 표명하기로 한 개인적 견해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 결국 작성 당시 내부적, 사적이며 비밀인 각서라는 것으로부터 인적 요소를 풀어내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이 아니다.
 
법률용어
고래의 권원(ancient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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