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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4.2. 20세기

 

20세기에 관하여, 국가 간의 중재절차의 일반 원칙들 및 1915년 1월 25일자 국무부 각서와 1915년 5월 29일자 워싱턴 주재 네덜란드 공사의 각서에서 당사자들 사이에 도달된 양해에 따라 1906년 이후의 사건들[events]은 어쨌든 제외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it is to be observed]. 1898년 12월 10일자 파리 조약과 1906년 이 분쟁의 발생 사이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결정적 시점, 즉 스페인에 의한 필리핀 할양이 발생했던 때에 그 섬의 법적 상태를 가리키는[indicate]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직전의 기간에 대하여 조명해 줄 수도 있으므로 간접적으로는 일정한 도움이 된다[of certain interest]. 우선 파리 조약 이전과 이후의 네덜란드 당국과 팔마스(또는 미앙가스) 섬 사이의 관계 사이에 어떠한 본질적 차이도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1899-1906년의 기간에 있었던 사건들은 상기 조약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제외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1899년 Kandahar-Taruna와 체결한 계약은 1885년 Taruna와 체결한 선행 계약을 답습하고 있으며[runs on the same lines as], 1898년에 이미 준비 중이었다. 1904년과 1905년의 표에 의하여 보인 바와 같이 과세 체계는 1895년에 시작된 것과 동일하다. 1889년에 취임한[instituted] 추장 Timpala는 1917년에야 새로운 인물로 대체되었다.
1904년 태풍 이후 그 섬에 부여된 원조는, 비록 그 자체로는 반드시 국가 기능의 표명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1904년 12월 31일자 Menado 지사의 보고서에 보이는 바와 같이 특히 피해를 입은 “Miangis” 섬이 정부의 원조(“van Gouvernementswege”)를 통하여 불가결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따름이었으므로 그러한 표명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이전 시기에 이미 존재해 왔던 것으로 보이는, 그 섬 주민들이 Sangi의 radjas에게 지불한 공물과 조난시에 더 많은 자원을 가진 더 큰 섬들이 그들에게 부여할 원조 사이의 관계도 언급할 수 있다.
 
지명
Miang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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