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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3. 조약에 의해 발생한 권원(뮌스터 조약)

 

두 번째로 합중국은 조약에 의한 승인을 근거로 팔마스 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한다. 1648년 1월 30일자 평화조약(이하 당사자들의 관행에 따라 “뮌스터 조약”이라 하며, 이 조약은 제5조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States General of the United Provinces of the Netherlands] 사이에 평화상태를 확립하였음)은 동인도 및 서인도에 관한 양국 사이의 영토관계를 다룬다(제4조는 오로지 후자에 관한 조문임).
1728년 J. Du Mont의 “Corps Universel Diplomatique du Droit des Gens” 제6권 제1부 430면에 출판된 불문본에 인용된 제5조는 다음과 같다: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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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중국의 이유서에 기재된 영역은 다음과 같다: “스페인의 가톨릭 국왕 필립 4세와 네달란드States General of the United Provinces of the Netherlands 군주들 사이의 평화조약. 1648년 1월 30일. . . 제5조 [이하 영역본 생략. 본문의 해당부분은 영역본을 번역한 것임 - 역자 주]


동인도와 서인도까지의 항해와 교역은 유지되어야 하며 이루어졌거나 그러한 취지로 이루어질 양도증서[grants]에 부합하여야 하고; 본 조약은 그 안전을 위한 것으로서, 양측의 비준이 획득되어야 하며; 상기 조약에는 모든 군주[potentates], 국가[nations], 인민[peoples]이 포함되어야 하는바, 상기 군주국[Lords the States] 혹은 동인도 및 서인도 회사의 구성원들은 그 이름으로 상기 양도증서의 한계 내에서 이들과 우호동맹관계이다. 그리고 각자, 즉 상기 군주와 국가[Lords the King and States]들은 각각, 그러한 군주령[lordships], 군[towns], 성[castles], 요새[fortresses], 브라질뿐만 아니라 동인도와 서인도 회사의 통상[commerce]과 지역[countries]을 계속 점유하고 향유하며, 상기 군주와 국가들이 각각 점유하고 있는[hold and possess]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각각의 해안들에 관하여는 이것이 특별히 1641년 이래 포르투갈인들이 상기 군주국들로부터 취득하여 점령한 지점과 장소[spots and places]를 구성하고 또한 상기 군주국들이 이후 이 조약의 위반[infraction] 없이 정복하고 점유할 지점과 장소를 구성한다. 네덜란드[the United Provinces] 동인도 회사와 서인도 회사의 관리자들[directors]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기 회사들 중 어느 하나에 실제로 근무하거나 근무한 적이 있는 관리[servants and officers], 육군과 해군의 병사[the soldiers and seamen] 및 이 나라에서든 상기 두 회사의 구역 내에서든 퇴임하였으나 추후 고용될 수 있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상기 군주의 복종 하에 있는 모든 지역[all the countries]에서 자유롭고 방해받지 아니하며[unmolested]; 상기 군주와 국가의 지역 내 여타 모든 거주자들[inhabitants]과 마찬가지로 항해[sail], 교역[traffic], 체재[resort]할 수 있다. 더구나 스페인인들은 그들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바와 같은 방식으로 더 멀리 갈 자유 없이 동인도까지 그들의 항해를 계속한다는 점이 합의되어 규정되었으며; 그 네덜란드[Low Countries] 거주자들은 카스티야인들이 동인도에 가지고 있는 장소에 출입하여서는[frequent] 아니 된다.
이 조는 어떠한 경계도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어떠한 특정 지역이 일국 또는 타국에 속한다고 지정하고[appoints] 있지 않다. 다른 한편 이 조는 점유 원칙을 기준으로 확립하고 있다(“demeureront en possession et jouiront de telles seigneuries . . . . que lesdits Seigneurs Roy et Estats tiennent et possedent”)
당해 기간에 대하여 “tenir”(hold, 보유하다)와 “posséder”(possess, 점유하다)의 개념을 아무리 자유로이 해석한다 하더라도, 이 용어들 안에 단순한 발견으로부터, 즉 그 섬이 눈에 띈 바 있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권리를 포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당해 기간에도 잘 알려져 있었고 이미 논란거리였던, 발견으로부터 발생하는 권원이 조약에 의하여 승인될 의도였다면, 그것은 아마도 명시적인 용어로 언급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채택된 견해는 같은 조의 다른 규정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상기 군주국들이 이후 이 조약의 위반[infraction] 없이 정복하고 점유할 지점과 장소”(les Lieux & Places qu’iceux Seigneurs Estats cy-aprés sans infraction du present Traicté viendront à conquerir et posseder)가 그 조약이 체결된 시점에 그들이 점유하고 있던 지점 및 장소들과 동일한 기초 위에 놓여져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발견의 권리 및 1493년 알렉산더 6세의 Inter Caetera 교서[Bull Inter Caetera]에 대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해석에 비추어, 뮌스터 조약이 그 두 국가에 의하여 확정적으로 취득된 것으로 보지 않은 지역으로서 일정한 사정 하에서는 네덜란드에 의하여 추후에 취득될 수도 있는 지역이, 발견되었으나 점유되지 않은 지역을 포함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5조가 점유에 입각한 영토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현상[現狀/status quo]에 입각한 스페인의 항해문제 해결도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 스페인은 동인도에서 그 항해의 한계를 확장하지 못하는 반면, 네덜란드 국민들은 스페인인들이 동인도에서 보유하고 있는 “장소들”로부터 배제될 따름이다. 항해가 없이는 단지 발견되었을 따름인 지역을 점유하고 식민지화할 가능성은 없으며; 다른 한편 스페인의 “장소들”로부터 네덜란드의 항해와 통상을 배제하는 것은 확장해석[an extensive interpretation]을 허용하지 않으며; 더구나 그 시기의 불어에서는 요새화된 장소를 의미하는 “장소”[place]는 어쨌든 실제적인 활동반경을 내포하는 실제적인 거주[settlement]인바; 예컨대 같은 조약 제6조는 “lieux et places garnies de Forts, Loges et Chateux”(항구들, 장소들, 성채들, 거점들 또는 성들, harbours, places, forts, lodgements or castles)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한 발견에 입각한 권원은 제5조에서 이미 확립된 것으로 간주된 사태에 적용될 수 없다.
뮌스터 조약이 지리적 안배라는 수단에 의하여 영토들을 분할하지 않고 또 동 조약은 발견 자체에 입각한 권원을 인정하기를 간접적으로 거부하므로, 본 사건에 대한 동 조약의 관련성은 결정적 시기[the critical epoch]에 점유하였다는 증명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메리카 합중국은 스페인에 의한 팔마스 섬에 대한 주권의 표명[display] 혹은 심지어 단순한 확인[affirmation]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입각한 증명의 어떤 정확한 요소도 제출한 바 없다. 그러나 뮌스터 조약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한 가지 논점이 있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석명서[Explanations]에 그 사본이 포함되어 있고 1927년 2월 7일 필리핀의 성 대 그리고리 지방의 프란시스코 작은형제회 교파[Franciscan Order of Minors] 지방 감독관[the Provincial Prelacy of the Franciscan Order of Minors of the Province of St. Gregory the Great of the Philippines]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카레켈란 섬[Island of Karekelan]”(필시 탈라우어 제도의 하나인 카라켈랑의 나누사 N.E.와 동일한)의 북동쪽에 위치한 “미앙기스 섬[Islands of Miangis]”은 처음에 포르투갈령이었다가 다음에는 네덜란드령이었고 1606년에 스페인이 차지했다. 스페인의 지배[the Spanish rule] ─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필리핀의 스페인 프란시스코 교부들[the Spanish Franciscan Fathers]이 상기 섬들에 대한 영적인 시정[spiritual administration]을 행사했다 ─ 는 1666년에 끝났으며, 그 때 스페인 왕실 함대의 함장[the Captain general of the Spanish Royal Armada]이 몰루카스에 있는 모든 요새화된 장소를 제거하였으나[dismantled], “말레이요 네덜란드 총독[Dutch Governor of Malayo]” 앞에서 스페인인들이 철수한 그 장소, 성채 및 요새들에 대한 스페인 국왕의 모든 권리의 계속에 관한 공식 선언을 하였다. 탈라우어 제도(탈라우드 제도)에 관하여 1857년 8월 12일자 메나도의 네덜란드 지사[Dutch Resident of Menado]의 보고서에 포함된 동일 지역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관한 추가적인 주장들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677년에 스페인인들은 네덜란드인들에 의하여 타부칸으로부터 탈라우체 또는 상기 제도로 밀려났으며 그 때 ─ 심지어 “네덜란드가 몰루카스 군도에 오기 훨씬 전에” ─ 탈라우어 제도(카라켈랑)는 타부칸 군주[Radjas of Tabukan]에 의하여 정복되었다.
이하에서 고려할 네덜란드의 주장에 따르면, 팔마스(또는 미앙가스) 섬은 나누사 및 탈라우어 제도(탈라우드 제도)와 아울러 타부칸에 속하였다. 이것이 정확하다면, 미앙가스는 고대에 원주민 국가인 타부칸과과 관련이 있었던 결과로 1648년에 적어도 스페인의 간접 점유 하에 있었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은 어떤 특정한 증명에 의하여도 확립된 바 없다.
그러나 1677년 네덜란드가 뮌스터 조약에 따라서 타부칸을 점유하였는지 아니면 그에 위반하여 점유하였는지 여부의 문제는 무시될 수 있는바, 이는 심지어 ─ 중재인 앞에 제출된 증거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 탈라우어 및 나누사 제도에 있는 그 부속도서[their dependencies], 그리고 어쩌면 팔마스(또는 미앙가스)를 포함하여 탈라우체 (상기) 제도가 1648년에 스페인에 의하여 “점유되었음[held and possessed]”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1714년 6월 26일 새로운 강화조약이 위트레흐트에서 체결되었으며, 동 조약은 그 제10조에서 뮌스터 조약은 변경되지 않은 한도에서 유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위에 인용된 제5조는 그것이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관한 한 계속 유효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트레흐트 평화조약 관련 문서집[Actes, Mémoires et autres pièces authentiques concernant la Paix d’Utrecht”, Vol. V, Utrecht, 1715]에 간행된 불문본에 인용된 제10조는 다음과 같다:
1648년 1월 30일 고 필립 4세 국왕과 네덜란드[the States General] 사이에 체결된 뮌스터 조약은 본 조약의 기초를 형성하며 하기 조항들에 의하여 변경되지 아니하는 한, 그리고 그것이 적용될 수 있는 한 모든 측면에서 계속 유효하며[shall hold good], 뮌스터 강화조약 제5조와 제16조에 관하여 이 조항들은 상기 원체약국들과 그 신민들에 관한 한에서만 유효하다[shall only hold good].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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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에는 불문본이 있으나 생략하였음. 위 본문은 영역본을 번역한 것임 - 역자 주


중간에 있었던 전쟁상태가 조약상의 권리에 미친 영향과는 별도로 이 조항이 위트레흐트 조약 체결 당시에 실제적 점유의 원칙이 동인도와 서인도에 대한 체약국들의 영토적 지위를 규율함을 단순히 확인[confirmation]할 의도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반대로 뮌스터 조약을 위반하여 전쟁 전에 취득한 영토의 반환[restitution]이 규정되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특정한 규정들이 삽입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스페인이 나중의 기회에, 예컨대 나폴레옹 전쟁 종전시의 영토 재조정과 관련하여, 뮌스터 조약이나 위트레흐트 조약을 위반하여 자국으로부터 탈취하거나 앗아간[taken or withheld] 영토의 반환을 주장하였다는 증거의 흔적이 없다.
1648년 초 또는 1714년 6월에 스페인이 팔마스(또는 미앙가스) 섬을 점유하고 있었음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스페인이 뮌스터 조약이나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하여 그 섬에 대한 주권의 권원을 취득하였다는 증명은 없으며, 그 섬에 대한 주권의 권원은 상기 조약들에 따라 그리고 상기 조약들이 유효한 한 오로지 스페인과의 합의로 네덜란드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었다.
따라서 상기 조약들이 팔마스(또는 미앙가스)에 관하여 스페인에 부여했을지도 모르는 권리를 추후에 스페인이 어떤 명시적이거나 종국적인 행동으로써 포기하였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스페인이 결코 포기할 의사가 없었던 권원을 취득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중의 시기에 여타 국가에 의한 계속적이고 평화적인 주권의 표명이 심지어 협약상의 권리를 대체하였을 수도 있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스페인이 “필리핀”에 대한 자국의 주권을 승인하는, 제3국들과 체결한 조약들은 네덜란드를 구속할 수 없으며, 그러한 조약들이 분쟁대상인 섬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조약들은 간접증거로조차 이용될 수 없음은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관계국들 사이에서 그 섬에 관한 사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결정하는 조약이 없음에 비추어 영토주권의 존재가 여타 사실들에 의하여 충분히 유효하게[with sufficient soundness] 확립되었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온다.
 

주 008
합중국의 이유서에 기재된 영역은 다음과 같다: “스페인의 가톨릭 국왕 필립 4세와 네달란드States General of the United Provinces of the Netherlands 군주들 사이의 평화조약. 1648년 1월 30일. . . 제5조 [이하 영역본 생략. 본문의 해당부분은 영역본을 번역한 것임 - 역자 주]
주 009
각주에는 불문본이 있으나 생략하였음. 위 본문은 영역본을 번역한 것임 - 역자 주
 
지명
팔마스 섬 , 팔마스 , 미앙기스 섬[Islands of Miangis] , 팔마스 , 미앙가스 , 미앙가스 , 팔마스 , 미앙가스 , 팔마스 , 미앙가스 , 팔마스 , 미앙가스
사건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강화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 뮌스터 조약
법률용어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점유 , 실제적 점유의 원칙 , 점유 , 영토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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