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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프랑스의 항의

 
 

21. 프랑스의 항의.

 

1839년을 결정적 기일로 정함으로써 그리고 Norman 문서고의 상당한 부분이 파손되었기 때문에 중세 이후에 많은 문건들이 전하여져 오지 않고(구두 변론) 그리고 보다 더 고대의 문건들이 사라지고, 그것들은 종종 매우 조잡하게 작성된 것이거나 혹은 심지어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프랑스 정부는 재판소가 그의 판결을 위하여 근거로 삼을 증거의 양을 상당히 축소하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1839년 이후의 행위들을 고려하거나 혹은 본 사례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원용하였다. 그러한 행위들은 프랑스 측보다는 영국 측에 훨씬 더 많고 또한 더 중요하다. 프랑스 정부는 몇 가지 이러한 행위들에 대하여 행한 항의를 원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항의는 이러한 행위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행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그의 해석에 따르면 양 국가가 1839년 협정에 의하여 이러한 행위들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주권행사를 나타내지 않는 행위들에 대하여서만 항의가 행하여졌다는 것을 근거로 이것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판결에서 재판소에 의하여 거부되었다. 결과적으로 영국 정부가 분쟁의 대상인 작은 섬들에 대하여 주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행한 행위들에 대하여 프랑스 정부가 항의를 하지 못한데 대한 변명이 없었다. 프랑스의 항의는 또 다른 상태의 영국 행위들과 관련하여 부적절하였고 실효적이지도 않았다. Eastern Greenland 사건에서의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의 말이(p. 62) 여기서 반복될 수 있다: 영국 정부 행위의 성질은 프랑스 정부에 의하여 때때로 행하여진 항의에 의하여 변경되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프랑스의 항의는 판결에서 언급된 프랑스 국민이 Minquiers에 집을 건설하는 것에 대하여 영국 정부가 행한 항의가 가져오는 정도의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Ecrehos와 관련하여서는 1888년 이후 60년 동안 아무런 항의가 없었다. 프랑스 정부는 항의의 부재를 이제 검토되어야 할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첫 번째 이유에 따르면, 프랑스는 “영국 정부를 계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재항변서, Part I, Section II, Sub-Section I). 이러한 불가능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지만 그것은 계쟁문제는 아니다. 프랑스 정부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은 프랑스 정부는 영국 정부가 행한 것과 같은, 즉 내가 이미 언급한 바처럼 감시를 통하여 영국 정부가 가옥의 건축을 즉시 중단시킬 수 있는 그러한 감시 하에 그 작은 섬들을 유지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감시에 실패한 것 그리고 그 작은 섬들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은 그 지역에서 프랑스 정부가 주권을 행사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프랑스 정부가 의존하고자한 두 번째 이유는 Jersey 당국에 의한 Ecrehos에 있는 가옥에 대한 징세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앞에서 언급한 정당화 사유를 적용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진술하였다(재항변서, Part I, Section II, Sub-Section I): “이러한 조치는 Jersey에서 취하여졌고 분쟁상태에 있는 영역에서는 어떠한 중요하거나 공공연한 행위를 야기하지 않았다”. 앞의 정당화 근거에 따르면, 세금의 지불이 그 작은 섬들에서 이루어졌지만, 프랑스 정부는 “영국 정부를 계속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세금의 부과는 반드시 그 작은 섬들 자체에 대한 권한의 행사를 야기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Jersey 과세 당국의 태도와 분쟁의 대상이 되는 작은 섬들에서 어떠한 재정적 기여도 얻으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프랑스 정부 혹은 프랑스 일부 행정부서들의 태도 사이의 대조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또한-내가 아는 한-그렇게 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작은 섬들에 대한 영국 정부의 행위는 더 계속적으로 그리고 더 집중적으로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제 재판소에게 질문한다: “우리측을 위하여서 우리는 무력이나 전쟁에 의존하여야 했는가? 왜냐하면 대략 1875년부터 1904년까지 이어지는 기간에서 이것은 무시할만한 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두 나라간의 관계는 오늘날의 그것은 아니었다....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요구를 하여야 했는가; 영국 정부와 맞서서 MinquiersEcrehos 때문에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을 야기하여야 했는가? 서면으로 항의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무력과 전쟁에 의존하지 않은 프랑스 정부는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양 국간에 다른 보다 중요한 분쟁이 있는 경우, 프랑스 정부를 제약한 동일한 고려사항이 영국 정부를 또한 제약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주권자로 행위하고, 그 주권을 계속해서 행사하는 동안 프랑스 정부는 다만 “서면” 항의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다른 어떤 것을 할 수는 없었는가?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프랑스는 중재를 제안할 수도 있었고 또 제안하였어야만 한다; 더욱 그러한 이유는 양 국은 모든 법적 분쟁 혹은 조약의 해석과 관련된 분쟁은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1903년 10월 14일 조약에 구속 받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Chamizal 사건에서의 중재판정을 언급하면서 다음 단락을 인용하였다: “사법에서는 시효의 중단은 소송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만,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이것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국제재판소가 설립되지 않은 한 그리고 설립될 때까지는 물론 불가능하다.”(구두 변론) 이 판정은 1911년에 이루어졌고 1848-1895년까지의 기간의 사실과 관련된다. 그 당시에는 국제재판소가 없었다. 그 판정은 이러한 경과를 이러한 재판소의 존재에 조건지운다: “국제재판소가 설립될 때까지....”. 그러나 그러한 재판소는 이제 설립되었고 수년 동안 존재해왔다. 프랑스는 왜 50년 이상의 간헐적이고 실속 없는 논의 이후에도, 영국이 했던 것과 같이, 최소한으로 이 재판소에의 회부를 제안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제안을 하지 않은 것은 주장의 힘을 상당 부분 박탈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주장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것으로 보여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천착하지 않더라도, 만약 분쟁들이 충분한 이유없이 무한정으로 지연되는 것이 허락되고 또한 만약 재판소의 결정적인 개입을 얻고자 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 단순히 주기적이고 실효성 없는 “서면” 항의만을 한다면, 재판소의 소송은 쉽게 제한되거나 심지어는 무효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 상태는 각 국가의 권리를 특정화하고 보장하는 기반이 되는 제도와 양립하지 않는다.
 
지명
Minquiers , Ecrehos , Jersey , Ecrehos , Jersey , Jersey , Minquiers , Ecrehos
사건
Eastern Greenland 사건 , Chamizal 사건
법률용어
결정적 기일 , 시효 , 실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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