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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타 조약들

 
 

9. 기타 조약들.

 

후속 조약들이 -1420 Troyes 조약, 1471년 “런던 휴전조약”, 1475년 Picquigny-Amiens 조약, 1492년 taples 조약 및 1606년과 1665년의 상무조약들- 양 당사자들에 의하여 분석되었는데, 그들은 이러한 조약들의 규정들로부터 이왕에 존재하던 상황들이 변경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구두 변론).
과거의 조약들에 대하여 부여되는 해석을 지지하는 추가적인 정황증거들이 1420년 Troyes 조약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Troyes 조약 제22조는 Henry 6세가 프랑스왕이 되어야 했을 때, 프랑스 왕국 안에 있는 그에 의하여 정복된 “Normandy 공국 및 기타 장소들 그리고 그들 각각”은 프랑스왕의 관할권 하에 있어야만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Channel Islands가 Henry왕에 의하여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Channel Islands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프랑스가 영국에 패배한 날 직전에 프랑스가 대륙 Normandy를 정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서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있다: “Troyes 조약은 Calais 조약을 무효로 만들었고 프랑스 왕국의 단일성을 재수립하였다” (Part III, I, III). 이것은 매우 강력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것에 근거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계속하여 Calais 조약을 원용하였다 (재항변서, Section I, I, C; 구두 변론); 프랑스는 그 주장은 타당성이 약하다고 받아들였다. Troyes 조약은 이러한 효과를 갖지 않았다; Channel Islands는 프랑스왕의 관할권 하에 들어가지 않았다. 왜 그것들은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이미 내가 지적한 바처럼 Channel Islands는 Henry 6세에 의하여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미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렇게 유지되었다.
따라서 이미 인정되었고 적법화된 영국에 의한 Channel Islands의 점령은 확정적이 되었으며 다툴 수도 없게 되었다. 그것들을 탈환하기 위한 시도는 16세기까지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늦어도 1360년에 실효한 종주권을 재수립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지명
Channel Islands , Channel Islands , Channel Islands , Channel Islands , Channel Islands
법률용어
관할권 , 종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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