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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국학원대학 고고학자료관의 고구려 유물 소장 경위

고구려 유물이 포함된 자료관 소장의 도쿠토미가[徳富家] 수집품은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 본명 徳富猪一郎, 1863~1957]와 차남인 반유[萬熊, 1892~1924], 4남인 다케오[武雄, 1909~1960] 3명이 수집한 것이다.주 001
각주 001)
國學院大學考古學資料館,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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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유물의 수는 1만 점을 넘는 방대한 양으로 그중에서 고와(古瓦)와 판비(板碑)의 수가 가장 많다. 수집품의 대부분은 일본의 유물이 차지하고 있으나 한반도와 중국 관련의 자료도 있다. 한반도 관련의 유물은 고구려 유물 이외에도 경주와 부여 등지에서 수집된 것으로 전하는 신라와 백제의 기와류 등이 있고, 중국의 유물로는 명문전, 문양전과 함께 한대에서 명, 청대에 이르는 기와류가 다수 확인된다.
도쿠토미가 수집품의 수집경위에 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한반도와 중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유물의 대부분은 도쿠토미 소호가 일제강점기에 수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도쿠토미 소호의 아들들인 반유와 다케오는 주로 일본의 고고학, 인류학에 열심이었는데, 이들이 기고한 논문은 일본의 고고학, 인류학에 관한 것으로, 한반도와 중국에 관한 논문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반유와 다케오가 일본 이외의 한반도와 중국을 방문했다는 기록도 전하지 않는다. 반면 도쿠토미 소호는 1910년부터 당시의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의 요청에 따라 『경성일보(京城日報)』의 감독직을 맡았고 1918년까지 매년 2, 3회에 걸쳐 京城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주 002
각주 002)
鈴木靖民·趙明齋,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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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면 자료관에 남아 있는 한반도와 중국 관련 유물의 대부분은 도쿠토미 소호가 틈틈이 한반도와 중국을 왕래하면서 수집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쿠토미 소호는 이미 1895년에 행해진 도리이 류죠[鳥居龍蔵]의 요동반도의 조사에 연구비 명목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민우사(民友社)에서 출자를 했고,주 003
각주 003)
鳥居龍蔵,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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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는 동경고고학회(東京考古學會)의 회원으로 등록하는 등 고고학에 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주 004
각주 004)
考古學會,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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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는 일본의 국보보존회(國寶保存會)의 위원으로 임명되는데, 함께 임명된 인사들 중에는 당시 한반도의 고적조사사업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던 구로이타 가쓰미[黒板勝美],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등이 있다.주 005
각주 005)
考古學會,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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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쿠토미 소호와 왕래한 편지에는 세키노 다다시, 기타 테이키치[喜田貞吉], 야기 쇼자부로[八木奘三郎] 등 당대의 건축학자, 역사가, 인류학자의 이름이 확인된다.주 006
각주 006)
徳富蘇峰記念鹽崎財團 編,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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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저명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던 도쿠토미 소호가 문화재에 관한 깊은 관심과 함께 사회 각 층의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도쿠토미 소호의 이러한 관심은 다양한 유물의 수집으로 연결되었고, 수집된 유물은 유족들이 국학원대학에 기증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각주 001)
    國學院大學考古學資料館, 2001 바로가기
  • 각주 002)
    鈴木靖民·趙明齋, 2004 바로가기
  • 각주 003)
    鳥居龍蔵, 1906 바로가기
  • 각주 004)
    考古學會, 1910 바로가기
  • 각주 005)
    考古學會, 1929 바로가기
  • 각주 006)
    徳富蘇峰記念鹽崎財團 編, 1995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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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대학 고고학자료관의 고구려 유물 소장 경위 자료번호 : ku.d_0003_009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