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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맺음말

  • 저필자
    藤井和夫
아이즈 컬렉션은 한 대학의 교원이었던 미술사가 아이즈 야이치가 사비를 털어서 교육연구를 위해 수집한 미술자료로, 부자가 돈을 듬뿍 들여서 감상을 위해 수집한 미술품 컬렉션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학문을 한다면 실물을 잘 관찰하고 실물과 떨어지지 않고 물건의 이법(理法)을 관찰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라고 하며 자료수집에 맞닥뜨렸다. 철저한 완벽주의자 아이즈 야이치였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컬렉션이다. 물론 이는 완전품만을 수집한 컬렉션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육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목이 없는 용(俑)이나, 와전의 파편이거나 모조품, 위조품이라도 모두 수집의 대상으로 했다. 고구려 기와에도 모조품, 위조품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아이즈 야이치의 감식하는 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조품이나 위조품도 교육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아이즈 야이치 제자의 한 사람인 가토 쥰[加藤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긴자(銀座)의 산보는 대개 교라쿠구락부[共樂俱樂部]로 돌아오게 되는데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의 앞, 지금의 뉴 도쿄(ニュー・トーキョー) 뒤편에 있는 호(濠)를 마주보는 오래된 큰 2층 건물의 임대용 연회장이었다. 여기에 3개월에 한 번 정도의 간격으로 목록이 도착했다. (중략) 가끔 수하미인(樹下美人)도 있고 삼채(三彩)의 낙타(駱駝)도 나왔다. 물론 의심쩍은 것도 있었으나 선생님은 절대로 그것을 의심스럽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가짜는 가짜로서 가끔 당당히 사시고는 했다. (加藤諄, 1974)
 
그리고 아이즈 야이치가 “명기(明器)의 수집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라고 하는 고와(古瓦)의 수집품 중에 본고의 고구려 기와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 철저주의를 가지고 평양지역에서 출토한 고구려 기와를 망라적으로 각 종류를 수집했다. 아이즈 컬렉션의 고구려 기와는 비록 발굴자료는 아니지만 고구려 기와의 편년연구나 제작기법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컬렉션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이즈 야이치라는 개성이 만들어 낸 컬렉션은 미술품으로서 감상을 위해 수집한 것이 아니지만 물론 거기에 맞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 제일은 아이즈 야이치가 목표로 한 바와 같이 교육연구를 위한 실물자료로서 이것이 바로 지금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에 소개한 고구려 기와 자료를 통해서도 명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후에도 이러한 자료가 교육연구의 실물자료로서 활용될 것을 희망하며 붓을 맺고자 한다.
(본 조사에는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의 오하시 가즈아키[大橋一章] 관장, 오시마 사치요[大島幸代] 조수, 와세다대학 문학부 강사 시모노 레이코[下野玲子] 씨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야마모토 슌스케[山本俊介] 씨(財團法人 高麗美術館)는 자료 게재에 관해 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또한 아이즈 야이치의 제자이자 필자의 와세다대학 대학원생 시대의 지도교수이셨던 고 고스기 가즈오[小杉一雄], 고 다키구치 히로시[瀧口宏] 양 선생님에게서 수업 중에 아이즈 야이치 선생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본고를 집필하면서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글의 끝머리이기는 하지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인사를 대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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