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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소장 유물로 본 고구려 와전의 연대에 관한 고찰

  • 저필자
    주홍규
고구려 수막새에서 대략적인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권운문 기와를 들 수 있다. 권운문 기와에는 중국 동진(東晋)시대의 연호인 「太寧」이나, 「丁巳」, 「己丑」, 「戊戌」 등의 기년명이 새겨져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권운문 기와를 제외한 고구려 기와에서 절대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확인되지 않지만 문양과 제작기법을 통한 기와 제작의 전후관계와 중국, 백제 기와 등 연대 특정이 가능한 기와들과의 상대연대의 비교해 연대추정을 할 수 있다.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에 소장된 기와 중에서 가장 시기가 빠른 것으로는 복선연화문 수막새 ①, ③을 들 수 있다. 이는 집안 지역의 장군총, 태왕릉, 천추총에서 발견되는 기와들과 문양적, 제작기법상의 특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막새 ①의 연대를 평양천도 이전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주 001
각주 001)
谷는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전 토성리 출토 수막새가 집안 지역의 천추총, 태왕릉, 장군총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같이 중방의 문양 변화가 없다는 점과, 『三國史記』에 보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평양지역 쟁탈 등을 근거로 고구려가 집안 지역에서 평양 지역으로 천도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기와로 판단했다(谷豊信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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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막새 ①은 집안지역 적석총에서 발견되는 기와와 유사한 공통점이 많다. 즉 큰 중방을 중심으로 내, 외부 권선이 2줄로 된 점, 복선이 2줄로 된 점 등에서 문양적 구성이 일치한다. 수막새 ①의 제작기법은 상세히 알 수 없으나 同型瓦주 002
각주 002)
고대의 수막새를 제작할 때는 문양면을 만들기 위해 木范이나 陶范, 石范을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같이 범을 이용할 경우에는 동일한 문양을 가지는 복수의 기와가 생산되는데, 동일한 문양을 가진 다수의 기와를 자료군으로 삼을 경우 범의 사용흔적에 의해 시기차를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경우에 동일한 범을 사용한 기와를 同范瓦로, 동일한 문양의 상이한 범에 의해 만들어진 기와를 同型瓦로, 유사한 문양의 범에 의해 만들어진 기와를 同系瓦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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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교토대학에 소장되어 있으므로 이를 통해서 제작기법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대칼새김기법을 이용해 수키와를 접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추총, 태왕릉, 장군총에서 출토된 기와의 연대를 4세기 후기에서 5세기 초기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주 003
각주 003)
田村晃一 1984, 谷豊信 1989, 朱洪奎 20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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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막새 ①의 연대를 상기의 고분에서 출토된 기와와 비슷한 시기의 것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막새 ②는 한왕묘에서 출토된 기와와 동형와인데, 한왕묘에서는 3종류의 수막새가 발견되었다. 고분을 덮고 있던 봉토 내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고분 조영시기에 만들어진 기와로 볼 수 있다. 한왕묘는 고분 현실의 형태가 장군총과 유사하고 기단을 갖춘 봉토분인 점 등을 근거로 평양천도 이후에 조영된 고분으로 추정되므로 여기에서 출토된 수막새의 연대도 평양 천도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와당의 뒷면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다치구를 이용해 긁어내는 기법은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소장 기와에서도 다수 확인된다. 이 기와들의 연대를 5세기 말을 전후한 시점에 제작된 기와로 추정할 수 있다.주 004
각주 004)
주홍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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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총, 태왕릉, 장군총과 같은 거대적석총에서 발견되는 수막새의 중방에서는 거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평양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다수의 수막새 중에는 중방에 다양한 변화가 확인되는 기와들이 있다. 본고의 수막새 ⑧, ⑱, ⑲등도 이러한 예에 해당하는데 이 기와들은 다치구를 이용해 긁어낸 후 수키와를 접합하는 제작기법을 가지고 있다. 다치구를 이용한 제작기법이 5세기 말을 전후한 시점에서 확인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막새 ①보다 수막새⑧, 18, 19의 제작시기가 늦다고 판단할 수 있다.
圖 45_인동문 기와와 전 ① 전 산동성(山東省) 신통사(神通寺) 출토 수막새 ② 고구려 인동문 수막새 ③ 백제 금성산 출토 전
전술한 바와 같이 와당 뒷면의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기법의 수막새는 고구려의 기와 이외에도 백제의 군수리 폐사지 출토 기와에서도 확인된다. 백제 와당의 문양형식과 군수리 폐사지의 조영 연대를 감안한다면 이와같은 제작기법이 6세기 중엽 이후의 시기에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제작기법을 가지는 고구려 기와의 제작연대도 6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다.주 005
각주 005)
주홍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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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막새 ⑨는 복선 인동문인데 인동문은 중국의 남북조시기에 유행해 불상 조각 등의 장식으로 이용되었다. 고구려 이외의 수막새 문양에 이용된 보고는 확인되지 않으나 건축자재의 하나인 전에서 인동문양이 확인되고. 그 중에는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백제와 중국 북제(北齊)시대의 문양전도 있다. 圖 45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제(北齊)시대의 기와로는 산동성(山東省) 신통사(神通寺)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수막새가 알려져 있고 백제의 문양전은 부여의 금성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다. 백제 사비 천도의 시기와 북제(北齊)시대의 사원에서 유사한 문양이 발견되는 점을 참고하면 수막새 ⑪의 연대를 6세기 중 엽경으로 추정이가능하다.
圖 46_중국 수, 당 시대의 기와와 전 ① 화마장 당묘(花馬庄唐墓 발견 전) ② 낙양 정정로(洛陽定鼎路) 출토 와당
수막새 ⑲의 경우는 매우 유사한 형태의 기와가 중국의 수(隋), 당(唐) 시대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圖 46 ①은 화마장 당묘(花馬庄唐墓)에서 발견된 전으로 중국 당시대의 유물이다. 圖 46 ②는 낙양(洛陽)의 정정로(定鼎路), 장안(長安)의 흥경궁(興慶宮) 등, 당의 중심지였던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에서는 다수 발견된다. 주연부가 낮고 당(唐)의 와당 문양과 흡사한 점에서 수막새 ㉘은 고구려 최말기나 고구려 멸망 이후에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 각주 001)
    谷는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전 토성리 출토 수막새가 집안 지역의 천추총, 태왕릉, 장군총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같이 중방의 문양 변화가 없다는 점과, 『三國史記』에 보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평양지역 쟁탈 등을 근거로 고구려가 집안 지역에서 평양 지역으로 천도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기와로 판단했다(谷豊信 1990). 바로가기
  • 각주 002)
    고대의 수막새를 제작할 때는 문양면을 만들기 위해 木范이나 陶范, 石范을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같이 범을 이용할 경우에는 동일한 문양을 가지는 복수의 기와가 생산되는데, 동일한 문양을 가진 다수의 기와를 자료군으로 삼을 경우 범의 사용흔적에 의해 시기차를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경우에 동일한 범을 사용한 기와를 同范瓦로, 동일한 문양의 상이한 범에 의해 만들어진 기와를 同型瓦로, 유사한 문양의 범에 의해 만들어진 기와를 同系瓦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田村晃一 1984, 谷豊信 1989, 朱洪奎 2010a. 바로가기
  • 각주 004)
    주홍규 2009 바로가기
  • 각주 005)
    주홍규 2009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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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소장 유물로 본 고구려 와전의 연대에 관한 고찰 자료번호 : ku.d_0003_008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