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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야이치의 박물관 구상에 관하여

  • 저필자
    藤井和夫
아이즈 야이치는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게 됨과 동시에 교육참고자료로서 실물의 미술자료 수집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에 맞춰 자료를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 건설을 대학에 제언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1927년 와세다대학 오쿠마강당준성 기념강연회에서의 ‘실학론’이라는 제목의 강연 중에, 실물자료의 필요성, 유효성을 설명함과 동시에 또한 박물관의 필요성을 대학간부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私共の最も敬愛に堪へざる坪内逍遙先生を記念すべき事業として、先生が平素最も興味を持たれまして、殆ど一生を其硏究と革新とに送られたところの演劇に緣める博物館、これを我が大學内に建設することになつて、着々仕事が進んで居ります。これは御同樣何よりも喜ばしき事であります。此のふさはしき好記念物を以て、吾々のこの敬愛すべき先生を後世この學園の衆徒をして想慕せしむるの料とするといふことは、思ふだに心地よき限りであります。しかしながら、たゞこれを以て後世想慕の料とするといふだけならば、私は甚だ飽き足らぬ。卽ち將来我が大學の學徒をして、演劇に關する幾多の書物で得たる知識よりも、敎場で聽いた講義よりも、こゝに陳列せらるべき幾多の實物の刺戟によつて、最も強く最も確かなる敎訓を受けしめるといふこと、卽ちそこに大なる積極的希望がなければ、私は飽き足らぬものであります。恐らくはこれが、此事業の眞の創案者たる我が老博士の深き思召の存するところではなかつたでせうか。それと同樣に、私は又あらゆる博物館がほしい。先刻も總長の御話で、今更の如く意識を新にしたのであるが、吾々の學園は東洋に於て最も豐富なる圖書館を持つ。今又此の如き立派なる講堂を持つに至つた。圖書館は文獻の貯蓄所であり硏究所である。その硏究の結果を發表するためにこの講堂がある。すでに圖書館あり講堂あり、更にこれに匹敵して劣らざる博物館を持つことによつて、學園の設備は始めて完成せられむとして居るのであります。(會津八一, 1928)
 
(상기 번역)
우리들이 가장 경애하는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遙] 선생님을 기념하는 사업으로서, 선생님이 평소 가장 흥미를 가지고 계셨고, 일생의 대부분을 이 연구와 혁신에 바친 연극에 관한 박물관, 이것을 우리가 대학 내에 건설하기로 되어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쿠마[大隈]강당의 준성과 같이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여기에 걸맞는 좋은 기념물(記念物)로서 우리들이 경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생님을, 후세에 이 학원의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사모하는 근원으로 만드는 것은 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을 후세들이 사모하는 근원으로만 만든다면 저는 전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장래에 우리 대학의 학생이 연극에 관한 많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교정에서 들은 강의보다도 여기에 진열될 많은 실물에 의한 자극을 통해 강해지고 확실한 교훈을 받도록 하게 하는 것, 다시 말해 거기에 크고 적극적인 희망이 없다면 저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사업의 진정한 창안자이신 우리 노박사[坪内逍遙]의 깊은 뜻이지 아닐까요? 이와 같이 저는 온갖 박물관을 원합니다. 조금 전에도 총장님의 말씀과 같이 새삼스럽게 의식을 새롭게 했습니다만 우리 학원은 동양에서 가장 풍부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고 지금 또한 이처럼 훌륭한 강당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은 문헌의 저축소이자 연구소입니다. 그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이 강당이 있습니다. 이미 도서관이 있고 강당이 있으니 더욱 여기에 필적할 만한 열악하지 않은 박물관을 가짐으로 인해 학원의 설비가 처음으로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會津八一, 1928)
 
이와 같이 박물관 개설은 아이즈 야이치의 실물존중의 연구자세와 방법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 건설의 길은 험난했다. 간신히 와세다대학 은사관 안에 문학부 동양미술연구실을 설치해 아이즈 야이치 컬렉션의 전시를 시작한 것이 1934년 10월이었다.
같은 해 『와세다학보[早稻田學報]』 11월호에 게재된 「面影(면영)」에서는 “나는 일개 대학으로 우리 와세다가 박물관을 가지는 날이 멀지 않아 오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의 염원은 달성되지 못한 채 전쟁으로 자택에 두고 있던 많은 자료를 소실하면서 패전을 맞이하게 된다.
패전 후에도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1948년 와세다대학 아이즈 야이치박사기념동양미술진열실은 와세다대학도서관(現 早稻田大學會津八一記念博物館) 구 귀빈실에 개실(開室)하게 된다. 이것은 간센엔(甘泉園) 안의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아이즈 컬렉션이 전시할 장소가 없이 사장(死藏)되고 있던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당시의 도서관장 오카무라 지비키[岡村千曳]가 귀빈실을 제공해 개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태가 한동안 계속되다가 1954년에 들어서 전시시설계획이 현실적으로 되고 10월에 와세다대학 아이즈 야이치박사기념동양미술진열실은 도서관 내에서 구 와세다대학출판부 창고를 개수한 제일학생회관별동으로 이전하게 된다. 1층과 2층에 각 1실의 전시실을 두고, 1층의 제1전시실에는 일본·중국·한반도의 와전·불상·묘지(墓誌)류가 진열되었고, 2층의 제2실에는 중국의 채도·갑골문자, 전국시대의 동검, 한대(漢代)에서 당대(唐代)에 이르는 명기(明器), 중국·한반도의 고경(古鏡) 등이 진열되었다.
1956년 11월 12일, 아이즈 야이치는 76세에 서거한다.
이후 1967년에 3층에도 전시실이 증설되나 당시의 전국적인 대학분쟁의 흐름 속에 와세다대학도 학내가 어수선한 나날이 계속되어 1969년 4월에는 소장자료를 학내의 창고로 이동해 분산보관하기로 되었다. 대학분쟁도 어느 정도 진정되어 1974년에 동양미술진열실을 재개하기로 되었으나 공간이 없어서 학내에 작은 방 하나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소장자료를 한곳에 보관하기 위한 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 전시를 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도서관이 새롭게 건설된 와세다대학 중앙도서관 건물로 이전한 후, 옛날 도서관을 개수해 1998년 5월에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이 개관되게 되었다. 아이즈 야이치가 박물관 개설을 호소한 때로부터 70여 년이 경과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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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야이치의 박물관 구상에 관하여 자료번호 : ku.d_0003_008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