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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야이치 수집 자료에 관하여

  • 저필자
    藤井和夫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소장의 아이즈[會津] 컬렉션은 일반인의 감상을 위한 미술 컬렉션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컬렉션을 모은 아이즈 야이치의 자료수집에 대한 자세한 형성과정에 관해서는 이미 보고되어 있으나 여기에 다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주 001
각주 001)
會津八一 컬렉션의 정리에 오랫동안 힘써 온 金澤邦夫, 下野玲子의 보고가 있다(金澤邦夫, 2001~2007; 下野玲子, 2010). 본고에서는 상기의 보고에 근간을 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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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야이치는 1921년부터 동양미술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것은 1926년 와세다대학 문학과에서 동양미술사의 강의를 개시한 이후부터이다. 수집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미술사 연구에서의 ‘실물존중’이다. 같은 해 7월 1일 발행의 『와세다[早稻田]대학신문』 제100호에 게재된 「實物尊重の學風(실물존중의 학풍)」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學問をしてゆくに、實物を能く觀察して、實物を離れずに、物の理法を觀てゆくと云うことは、何よりも大切なことだ。どれほど理論が立派に出來上がつて居ても、何處かに、實物を根底にする眞實性が含まれて居なければ、卽ち、それは空論だ、空學だ、取るに足るものでない。
(中略)學問は飽迄も學問として、大學でそれを硏究する其の硏究方法、其の態度として、何處迄も事實、實物により多く注意を拂い度ひと云ふのである。
私は文科からのお頼みで、丁度今、東洋美術史を講義しかけて居るが、實物を尊重すると云ふことは、美術史を讀むより、畫家になって仕舞へと言つて居るのではない。同じ美術史を硏究するにしても、實際の美術品を離れては、美術史は存在しない。參考書の插繪を見ただけで、實物を見ずに參考書の議論をうけ賣りしたり、折衷したりしても相當に時間をつぶすことは出來やうが、其の中から、意義のある、価値のある何物も産れ出ないことは分明り切つたことだから、講義の最初に實地見學とか、寫眞拓本の方法とか云う樣なことを隨分力を入れて說明して置いたが、中には物足りない樣な、アヤフヤな樣な顔をして聞いてゐる學生もあつた。學生が自分で卷尺を繰り出したり、三脚を据ゑたり、シャベルを握つたりして、實物の發掘、實物の測量、實物の正確な記錄を、先づ以て、取り蒐めることが美術史硏究上の第一の急務であつて、其れ以上のことは其れ以後のことだ。斯うした態度の新しい硏究方法の時代が世界に旣に來て居る。(會津八一, 1926)
 
(상기 번역)
학문을 할 때에는 실물을 충분히 관찰하고 실물에서 떨어지지 않고, 물건의 이법(理法)을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어느 정도 이론이 훌륭하게 성립되어 있더라도 어딘가에 실물을 근거로 한 진실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바로 공론(空論)이고 공학(空學)이니 취할 만한 것이 아니다.
(중략) 학문은 끝까지 학문으로서 대학에서 이를 연구하는 연구방법과 연구태도로서, 어떤 곳에서도 사실 실물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항상 말한다.
나는 문과(文科)의 부탁으로 현재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는데, 실물존중이라는 것은 미술사를 읽기보다 화가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미술사를 연구한다고 해도 실제의 미술품에서 떨어져서는 미술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서의 삽화를 보기만 하고 실물을 보지 않고, 참고서의 의논(議論)을 받아 적거나 절충하거나 해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되겠지만 그 안에서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므로, 강의를 시작할 때 실지(實地)견학이나 사진촬영, 탁본 같은 방법에 관해 힘을 주어 설명 하였지만 그 중에는 부족한 듯 애매한 듯한 얼굴로 듣던 학생도 있었다. 학생 자신이 줄자를 들고 재거나, 삼각대를 세운다든지, 삽으로 실물을 발굴하거나 실물의 측량, 실물의 정확한 기록을 우선적으로 모아 두는 것이 미술사 연구를 할 때 제일 급선무로, 그 이외의 것은 전부 나중의 일이다. 이러한 태도의 새로운 연구방법의 시대가 세계에는 이미 도래해 있다. (會津八一, 1926)
 
더욱이 1927년의 와세다대학 오쿠마강당준성(大隈講堂竣成)기념강연회에서 「實學論(실학론)」이라는 제목으로 실물자료의 필요성과 유효성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강연록은 1928년 1월에 발행된 잡지 『新天地(신천지)』에 게재되어 있다. 여기서도
(前略)文獻があり傳說があつても、これを信じて疑はざらんとするには、愼重な用意が要る。そして我々を最も有効に用意せしめるものは一にも二にも實物である。千の文獻よりも一つの實物である。實物の持つ所の權威、何物もこれを遮ることが出來ぬのであります。(中略)何事を硏究してこれを體得するにも、吾々は此所で大悟一番、實物に目醒めなければならぬ。いやしくも事實に立脚せざる卽興的の主觀論や、實物を知らずして唯參考書類の受け賣りや孫引や折衷でやつて行く氣抜けのしたやうな學問、すべて左樣な學風が遠く影を潛めねばならぬ時代は旣に久しく到來して居る。 (會津八一, 1928)
 
(상기 번역)
(전략)문헌이 있고 전설이 있어도 이를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에는 신중함을 요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유효하게 이용해야 하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실물이다. 천 개의 문헌보다 하나의 실물이 필요하다. 실물이 가지는 권위는 어떤 것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어떤 것을 연구해 체득하더라도 우리들이 여기서 크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실물에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적어도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즉흥적인 주관론이나 실물을 모르고 단지 참고서류의 학설을 자기 학설처럼 말하거나 재인용, 절충만으로 해 나가는 얼빠진 학문, 이와 같은 것들은 점차 사라져야 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해 있다(會津八一, 1928)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술사 연구자, 미술사 교육자로서의 아이즈 야이치의 생애를 관철하는 기본적인 연구자세가 나타나 있으나 대학에는 실물자료가 없었고, 또한 구입 예산이 없는 와중에 그는 자신의 서화(畵画)를 팔아 자료수집에 힘쓴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을 이야기해 주는 아이즈 야이치의 편지를 들어보기로 한다.
拜啓
昨年末から拙者非常に多忙となり、馬術も怠り、御訪ねも致さずに御無沙汰致し居候。實は今年四月から早稻田大學にて、印度、支那、日本の美術史を講義することゝ相成候。これも再三辭退したれども許されず、遂にひきうけたるに、學校には參考書類や參考品の類は少く、殆ど困却せしにつき、一部分は自分の揮毫の書畫を鄕里にて賣却して五六百圓を得、又一部分は某有志の寄附金を得て、やうやく一時必要を充たし居るも、尚ほ前途、金のいることのみにて全く閉口。かゝる事にて每日奔走し居りて、何所へも御無沙汰に打過ぎ居るありさまにて候。(後略)주 002
각주 002)
1926年 6月 21日付 山内保次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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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번역)
배계(拜啓)
작년 말부터 제가 몹시 바빠져 마술(馬術)도 태만히 하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오랜만에 연락을 드립니다. 실은 올해 4월부터 와세다대학에서 인도, 중국, 일본 미술사를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두세 번 거절했지만 허락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학교에는 참고서류나 참고품류가 적어 무척 고생스러웠습니다. 일부는 고향에서 제 휘호(揮毫)의 서화를 매각해 5~600원을 충당하고, 또 일부는 어떤 유지의 기부금을 받아서 겨우 일시적으로 필요한 돈을 채우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전도에는 돈이 드는 일만 있어서 두 손을 든 상태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매일 분주하여 어디에도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후략)
 
(前略)實は拙者早稻田大學にて東洋美術史を講義いたし其材料費に供するために昨秋から今朝へかけて二囘の自作書畫會をひらきすでに六百餘圓を得、親戚故舊といへどもみな揮毫料を徴し逍遙選集の題簽の如きすらも尚ほ潤筆料を受け居るありさま(後略)주 003
각주 003)
1926年 8月 12日付 中島周介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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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번역)
(전략)실은 제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미술사를 강의하는데 그 재료비로 제공하고자 지난 가을부터 이번의 두 번에 걸쳐 자작(自作) 서화회(書畫會)를 열어 이미 600여 원을 받았습니다. 친척이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든 모두 휘호료(揮毫料)를 징수했고 쇼요선집(逍遙選集)의 제목 휘호까지도 여전히 윤필료(潤筆料)를 받고 있는 실정(후략)
 
더욱이 아이치 컬렉션이 다른 미술품 컬렉션과 다른 큰 차이점으로는 ‘위조물’도 수집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수집자료에 대한 자세에 관해서는 제자인 안도 고세이[安藤更生] 앞으로 보낸 편지 중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いつかから思つて居ながらお話しするのを忘れて居るのだが──或は一度位申してあるかも知れぬとも思ふのだが──私の學校へ遺したコレクションの中には支那製の贋物や日本の模造品(明器の)などがあるが、それは私が手數をかけて集めたものなので──つまり實物に比較するための參考品として必要だといふ考えであつめたものだから、それを粗末に扱はずに一々僞物とか模倣とかいふ附箋をして、實物の傍らに對比するやうに心がけて下さい。重大なことです。學校は骨董屋でないから、眞物とか傑作とかいふことよりも、物そのものの認識といふことを力を入れて下さい。硏究室として當然のことです。주 004
각주 004)
1953年 8月 22日付 安藤更生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2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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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번역)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혹시 한번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에 남겨 둔 컬렉션 중에는 중국제 위조물이나 일본의 모조품(明器의)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손수 모은 것으로, 다시 말해 실물과 비교하기 위한 참고품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아 둔 것이므로 이것들을 허술하게 대하지 말고 하나하나 위물(僞物)이나 모방이라는 부전(附箋)을 써서 실물 옆에 대비하도록 해 주십시오. 중대한 일입니다. 학교는 골동품점이 아니므로 진품이나 걸작이라는 것보다 물건 그 자체를 인식해야 하는 데 힘 써 주십시오. 연구실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前略)模造品とか贋物とかいふものも標本室としては大切な材料といふ私のたてまへからいへば、惡くとも善くとも誰に恥づべきものでは無いが、漫然とした骨董趣味の人々に無條件に見せるにはその邊のことは一應御注意下さい。大學の美術館でなく、學生に、優劣や眞贋を敎へる標本室だといふことを、終始忘れないやうにして下さい。決して骨董通の娯樂物ではありませんから。주 005
각주 005)
1954年 9月 29日付 安藤更生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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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번역)
(전략)모조품이나 위조물이라는 것도 표본실에서는 중요한 재료라고 하는 제 원칙에서 이야기하자면, 나쁘거나 좋거나 간에 누구에게 수치스럽게 보이는 것은 아니나, 만연하고 있는 골동 취미의 사람들에 무조건적으로 보여주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일을 다시 한 번 주의해 주십시오. 학생들에게 단순히 대학의 미술관이 아닌 우열 혹은 진짜와 가짜를 가르치는 표본실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 주십시오. 결단코 골동통의 오락물이 아니니까요.
 
아이즈 야이치의 미술품 수집은 교육용의 재료라는 것이 근본이므로 중국제 위조품이나 일본 모조품이더라도 교육에 필요하다면 이를 구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또한 완형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 없었다.
또한 아이즈 야이치의 수집 자세의 하나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무엇이든 철저하게 행한다는 것이다. 연구에서나 어느 것이나주 006
각주 006)
어떤 일에도 철저했던 아이즈 야이치의 한 가지 일화로서 제자인 加藤諄이 쓴 아래와 같은 문장을 소개해 둔다. “혹시 여흥으로 선생님이 잘하는 江差追分 등을 낮은 소리로 흥얼거릴 때 얼마나 많은 追分 민요 레코드를 수집했는지 알려 주었다. 馬子唄와 船歌의 차이를 백 장 가까이 실례를 듣고 나누려고 했다.”(加藤諄, 1974,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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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에도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기분이 내키지 않았던 아이즈 야이치는, 자료수집에서도 철저주의자고 완벽주의자였다. 동양미술사 관계자료의 수집 이전에 행했던 향토 완구 수집의 경우에도 이마이 야스타로[今井安太郎]에 보낸 편지 중에 “가능하면 가급적 다양한 것을 객관적으로 몰 주관적으로 모아서 보내 주십시오”주 007
각주 007)
1919年 12月 4日付 今井安太郎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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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의뢰하고 있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 수집을 의뢰했다. 또한 같은 종류의 것이라 할지라도 많은 수를 수집하려고 했다. 이마이 야스타로 앞으로 보낸 1919년 12월 17일 날짜의 편지에서는
笠かぶりは笠の神の一體なるべく、兎の餠つきはこれ亦た全國各地に流布せる一形式也。或は臼と杵とのみなるもの、或は猿がつくもの、或は人がつくもの、或は車の仕掛けにてつくものなどあり。九州藤崎神社へも臼をもとめてやり候へば、御地のものもほしく候。つまるところ御鷹も、蘇民も、惠比壽、大黑も、笠かぶりも、兎も、全部御送り被下度候。(中略)而して前にも申上候通り着色などまちまちならば、其あらゆるものを御示し被下度、又細工はなるべく上手に器用に仕上げたる方を望ましく候へども、粗惡なるものも亦多少は御加へ被下度候。これは其變化のコムパスを大觀しおくことは、世代を隔てし此種の信仰形式の硏究には、必要なる次第と存ずればにて候。又大も小も御含め被下度候。(中略)何分遠き上代より年々細工人の記憶によりて造り來り、それが子々孫々に傳統したるわけ故、遠き代の隔世遺傳を檢する如く、種々なるvarietyを一覧する必要は常に感ずるところにて候。(中略)いかばかり汚損致し居りても苦しからず候。주 008
각주 008)
1919年 12月 17日付 今井安太郎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巻 所収 書簡番號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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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번역)
가사카부리[笠かぶり, (향토 완구)]는 우산 신(神)의 한 형식이다. 역시 토끼가 떡을 찧는 완구는 전국 각지에 유포된 토끼가 떡을 찧는 완구의 한 형식이다. 맷돌과 절구공이만으로 되어 있는 것, 혹은 원숭이가 찧는 것, 사람이 찧는 것, 혹은 바퀴형 장치로 찧는 것 등이 있다. 규슈[九州]의 후지사키신사(藤崎神社)에도 맷돌을 원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당신 지방의 것도 원합니다. 요컨대 매나 소민(蘇民, 역병을 막기 위한 신), 에비수[惠比壽, 칠복신의 하나], 다이코쿠[大黑, 칠복신의 하나], 가사카부리[笠かぶり], 토끼도 전부 보내 주십시오. (중략) 그리고 일전에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착색이 여러 가지라면 그 전부를 알려 주십시오. 또한 세공이 가급적이면 깨끗하고 잘된 것을 원하지만 조악한 것도 다소 더해서 받고 싶습니다. 이는 그 변화의 나침반을 대관(大觀)해 두는 것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간 이러한 종류의 신앙 형식의 연구에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크기가 큰 것이나 작은 것도 포함시켜 주십시오. (중략) 무엇보다도 오랜 옛날부터 매년, 세공인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져 온 이것들은 자손들에게 전승되어 온 것이므로 오래전 옛날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을 살펴보듯이 그 다양성을 일람할 필요성을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중략) 아무리 더러워져 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라고 적혀 있는데 그 철저함을 읽을 수 있다.
 
현재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본 패전 이전의 수장자료목록에는 『會津八一收藏古器物目錄(아이즈야이치수장고기물목록)』, 『東洋美術史硏究室陳列設備品目錄(동양미술사연구실진열설비품목록)』, 『昭和拾壱年以後早稻田大學東洋美術陳列室會津八一氏蒐集品目錄(소화십일년이후와세다대학동양미술진열실아이즈야이치씨수집품목)』록이 있다.
圖 3_『會津八一收藏古器物目錄』
가장 오래된 『會津八一收藏古器物目錄』은 1936년에 아이즈 야이치가 직접 작성한 수집목록으로 전 10책이다. 작성일은 1936년 2월 1일이다. 아이즈 야이치의 독자적인 분류법에 따라 작성되어 있는데 각 책의 표지 혹은 제1쪽에 그 책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圖 3).
  第一册은 「支那古明器泥像之部」,
  第二册은 「支那古明器泥像之部, 古陶磁之部, 玉器之部, 古銅鐵之部, 玩具之部」,
  第三册은 「印章, 銅鐵器, 玩具」,
  第四册은 「古錢之部」,
  第五册은 「古鏡之部」,
  第六册은 「瓦磚之部 支那, 樂浪, 高句麗, 百濟, 新羅」,
  第七册은 「瓦磚之部 新羅」,
  第八册은 「磚瓦之部 日本」,
  第九册은 「佛像佛具之部」,
  第十册은 「佛像佛具之部」로 되어 있다.
그러나 번호와 품명 이외의 기재내용은 빈약하고 입수시기, 입수방법이 전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자료건수는 1994건이다.
圖 4_『東洋美術史硏究室陳列設備品目錄』 [1]
圖 4_『東洋美術史硏究室陳列設備品目錄』 [2]
圖 4_『東洋美術史硏究室陳列設備品目錄』 [3]
圖 4_『東洋美術史硏究室陳列設備品目錄』 [4]
『東洋美術史硏究室陳列設備品目錄』은 『會津八一收藏古器物目錄』 전 10책을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圖 4). 작성시기는 불명확하나 ‘동양미술사연구실’에 아이즈 컬렉션이 진열되어 있던 1945년 이전의 것으로 생각된다.
『昭和拾壱年以後早稻田大學東洋美術陳列室會津八一氏蒐集品目錄』은 1940년 8월 16일에 만들어진 목록으로 1936년 2월 1일에 기록된 『會津八一收藏古器物目錄』의 작성 이후에 수집한 자료가
  (一) 支那朝鮮明器陶磁器,
  (二) 殷墟發掘龜甲文字,
  (三) 印章, 錢弊, 武器, 髪具, 佩玉, 正倉院御物模型, 異民族木偶等
  (四) 佛像, 佛具
  (五) 鏡鑑
  (六) 瓦甎의 여섯 종류로 분류되어 기재되어 있다.
기재자가 아이즈 야이치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나 누가 만든 것인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기재자료의 건수는 377건이다. 『會津八一收藏古器物目錄』과는 달리 이 목록에는 구입품에 관한 구입금액이 기재되어 있다.
圖 5_『昭和拾壱年以後早稻田大學東洋美術陳列室會津八一氏蒐集品目錄』 [1]
圖 5_『昭和拾壱年以後早稻田大學東洋美術陳列室會津八一氏蒐集品目錄』 [2]
圖 5_『昭和拾壱年以後早稻田大學東洋美術陳列室會津八一氏蒐集品目錄』 [3]
圖 5_『昭和拾壱年以後早稻田大學東洋美術陳列室會津八一氏蒐集品目錄』 [4]
일본 패전 후에는 고구려 와전을 입수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므로 본고에서는 그 이후의 자수집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 각주 001)
    會津八一 컬렉션의 정리에 오랫동안 힘써 온 金澤邦夫, 下野玲子의 보고가 있다(金澤邦夫, 2001~2007; 下野玲子, 2010). 본고에서는 상기의 보고에 근간을 둔 것이 많다. 바로가기
  • 각주 002)
    1926年 6月 21日付 山内保次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704 바로가기
  • 각주 003)
    1926年 8月 12日付 中島周介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710 바로가기
  • 각주 004)
    1953年 8月 22日付 安藤更生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2073 바로가기
  • 각주 005)
    1954年 9月 29日付 安藤更生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2173 바로가기
  • 각주 006)
    어떤 일에도 철저했던 아이즈 야이치의 한 가지 일화로서 제자인 加藤諄이 쓴 아래와 같은 문장을 소개해 둔다. “혹시 여흥으로 선생님이 잘하는 江差追分 등을 낮은 소리로 흥얼거릴 때 얼마나 많은 追分 민요 레코드를 수집했는지 알려 주었다. 馬子唄와 船歌의 차이를 백 장 가까이 실례를 듣고 나누려고 했다.”(加藤諄, 1974,107쪽) 바로가기
  • 각주 007)
    1919年 12月 4日付 今井安太郎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卷 所收 書簡番號 329 바로가기
  • 각주 008)
    1919年 12月 17日付 今井安太郎宛書簡 『會津八一全集』 第八巻 所収 書簡番號 332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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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야이치 수집 자료에 관하여 자료번호 : ku.d_0003_008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