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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모사

고구려는 장수왕 때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 멸망(지금부터 1274년 전)하기까지 대략 200년간 지속되었으나 여기서 전람하는 모사의 실물은 그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6월 평안남도 중화군 동두면 진파리의 동명왕릉 부근에 있는 고구려시대 고분 중에 벽화가 있는 2기의 석실분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제1호분의 벽화는 기존에 발견된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며 또한 제작도 매우 우수하다. 이에 도쿄미술학교의 강사이며 본부보존회(本府保存會) 위원인 오바 쓰네키치[小場恒吉]에 청탁하여 실물 크기의 모사를 제작했는데 이번에 그 대부분이 완성되어 여기에 전람을 하게 되었다. 이 고분은 직경 28미터, 높이 7미터의 방대형 토분(土墳)으로, 그 주체는 남쪽으로 연도가 열려 있고 남북 3m 44cm, 동서 2m 44cm의 석실로서 고구려 특유의 삼각모서리 천장을 가지고 있고, 벽화는 흰 회반죽을 두껍게 바른 벽면에 그려져 있다. 벽화는 주실의 네 벽에 그려진 사신도가 위주로, 동쪽의 청룡, 북쪽의 현무,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각 벽면의 문양은 비운문(飛雲文), 연화문(蓮華紋)을 배치하고 새나 용을 교차시켰으며 또한 현무의 좌우에는 소나무를, 그 발밑에는 산과 언덕을 나타내었는데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움직이는 모양은 훌륭한 장관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구도와 능숙한 필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연도 입구에 문을 지키는 무인상이 있는 대칼과 창을 들고 특색있는 얼굴 모습과 묶은 머리, 복식에는 주목을 요한다. 또한 고임천장에 그려진 유려한 인동당초문의 일부도 전시할 수 있었지만 천장에 있는 해와 달의 형상은 모사가 미완성이어서 여기서 전람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색채들은 황(黃), 갈(褐), 주(朱), 흑(黑), 녹(綠)과 그 이외의 색도 사용하고 있었고, 또한 그 묘사된 선에는 전혀 측필(側筆)의 흔적이 없어 이 대 화면이 소위 현완직필(懸腕直筆)에 의해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특별전람목록(본 목록에는 수량에 다소의 차이가 있고, 진열 순서와 같지 않다)
1. 馬具類(마구류)
金銅馬面
(금동마면)
4마구류는 일괄로 西室(서실)의 중앙에서 남쪽에 걸쳐 남아 있다. 4개의 마면에는 공통으로 표면에 도금을 하고 용과 봉황의 모조 문양이 있다. 말의 코 부분에 붙이는 장식.
玉裝銀飾金具
(옥장식은제장금구)
12은판에 기린, 새 머리, 산 모양을 도드라지게 하고 瑪瑙(마로)로 된 반구형의 옥을 끼워넣은 것. 용도는 상세하지 않으나 가슴걸이에 매달아 장식하는 것인가?
玉裝銀飾金具
(옥장식은제장금구)
1은판에 반구형의 주문을 도드라지게 하고 瑪瑙(마로)를 끼움. 혹시 연장말에서 보이는 것 같이 이마에 장식한 것인가?
玉裝銀飾小金具
(옥장식은제소금구)
5앞의 것과 같은 의장인 소형의 것. 한 조로 되어 있는데 이마를 장신하는 것인가?
銀飾鐶
(은장식환)
11쌍룡을 은판에 도드라지게 한 둥근 鐶(환). 용도는 상세하지 않으나 가슴걸이에 매다는 장식 금구인가?
金銅鑣
(금동표)
2대동에 도금을 한 것으로 선으로 운문을 모조한 것이 있다. 銜(형)의 좌우에 장식을 한 것으로 경판에 해당한다.
金銅鑣
(금동표)
3대+절반위와 같음. 다만 여기에는 중간을 유기질의 물질로 만들었던 것 같으나 현재는 부식되어 없다.
金銅鑣
(금동표)
2대위와 같음.
鐵銜
(철형)
1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과 좌우의 고삐이음새로, 이 좌우에 鑣(표)를 장식해서 轡(비)가 된다.좌우의 고삐이음새에 고삐를 붙여서 말을 제어하는 것.
金銅鐶
(금동환)
9혁대 등에 붙여서 그 연접하는 곳에 이용하거나 혹은 연결하는 쇠장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
金銅鉸具
(금동교구)
3
金銅小鉸具
(금동소교구)
4
銅鉤
(동구)
4
金銅飾鋲各種
(금동장식못 각종)
일괄굴레, 가슴걸이, 후걸이 등의 혁대 표면에 꿰어붙여 장식하는 것. 그중에는 곰 얼굴을 드러낸 것도 약간 있다.
金銅玉裝飾金具
(금동옥장식금구)
2하나는 동에 은 상감을 하고 운문을 나타내었는데 瑪瑙(마로)와 터키옥을 끼웠다. 다른 것은 금 상감을 하고 동일하게 옥을 끼웠다. 용도 불명.
金銅飾金具各種
(금동장식금구 각종)
일괄혁대 등에 붙이는 작은 쇠장식인데 그 하나하나의 용도는 상세하지 않다.
銅馬鐸
(동제마탁)
4가슴걸이에 매달아 장식하는 방울의 일종.
銅鐶頭金具
(동제환두금구)
5고리류일 것이다.
2. 輿車具類(여차구류)
金銅車軸頭
(금동제차축두)
1대차수레구 하나는 서실의 중앙에서 북쪽에, 다른 하나는 곽 안의 동남쪽 구석과 동쪽에서 발견했다. 차축의 좌우 양끝을 장식했는데 아울러 차륜의 일탈을 방지하기도 위한 것이다.
銅車軸頭
(동제차축두)
1대
蓋弓橑及弓橑爪各種
(개궁료와 궁료과 각종)
1대弓橑(궁료)는 蓋骨(개골)이고 爪(과)는 그 앞부분의 金具(금구)를 말한다. 弓橑(궁료)는 목심이 흑색 옻칠이고 爪(과)는 거의 바탕을 銅(동)으로 도금했다.
銀鐶
(은환)
30
金銅鐶
(금동환)
일괄반원의 環(환)으로 양 끝에 흑색의 옻칠한 고삐이음쇠류로 보이나 상세한 용도는 불명확하다.
金銅裝蓋柄
(금동장식개병)
4그중 3개는 金銅(금동)의 管(관)으로 장식하고 있다. 蓋弓橑(개궁료)를 삽입하는 斗(두)쪽은 부식되어 없다. 목심 흑색 옻칠.
金銅獸面飾金具
(금동수면장식금구)
1대표면에는 獸面(수면)을 표현했는데 이 면의 빈 곳에는 나무를 대고 그 위에 흑색의 옻칠을 하고 있다. 용도는 불명.
銅飾金具
(동제장식금구)
1대앞의 것과 동일한 것이나 표면은 素文(소문).
金銅虎頭飾金具
(금동호두장식금구)
2대마치 杖頭(장두)인 것 같다. 그 중의 하나에는 바탕에 흑색의 옻칠을 한 柄部(병두)가 있다. 용도 불명.
銅柄頭
(동제병두)
1대0
銅杖頭
(동제장두)
9鐓(돈)이란 바닥이 평평한 물미를 일컫는다. 그중에는 아마도 깃대의 柄頭(병부)를 비롯해 鐓(돈)도 있었을 것이다.
銅杖鐓
(동제장돈)
6
銀平鐶
(은평환)
5양자와 함께 서실의 중앙에서 장신구류의 佩玉(폐옥), 櫛(빗) 등과 같이 발견했는데 다른 金銅鐶(금동환), 金銅爪(금동과) 등과는 모습이 다르다. 혹시 玉類(옥류) 등과 함께 漆匣(칠갑)에 들어 있던 것일까?
銀弓橑爪
(은궁료과)
10
銅弓橑爪
(동궁료과)
20
3. 武器類(무기류)

(노)
1무기류는 일괄로 西室(서실) 중앙에서 남변에 같이 남아 있다. 弩(노)는 소위 탄궁으로서 고대에 있어서 가장 기계적인 병기의 하나이다. 나무의 활틀을 갖춘 노는 우리가 낙랑고분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활)
1중국 고대의 弓(활)의 실제도 또한 우리가 낙랑고분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목제를 벗겨 합쳐서 만드는데 위에 유기질의 섬유를 감고 옻칠을 했다. 또한 중앙에 각재와 같은 것을 댄 것도 있다.
銅斧附木柄
(목제 손잡이가 달린 동모)
10
金銅鐓
(금동돈)
3鐓(돈)은 평평한 바닥의 물미로 중간에 마디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중 한 鐓(돈) 내부에 있는 柄(병)은 쪼갠 대나무를 겹쳐 합친 것으로 우리가 부르는 타병(打柄)에 해당한다.
黑漆鞘鐵戟 附銅柄頭
(동제 손잡이가 달린 흑칠초철극)
일괄戟(극)은 戈(과)에서 발화한 것으로 戈(과)와 矛(모)의 양 기능을 동시에 가지는 병기이다. 矛(모)의 몸통 부분과 직각으로 하나의 날을 가지는 것이다.
銅矛
(동모)
1낙랑고분에서 銅矛(동모)를 발견한 가장 명확한 예다. 더우기 이 矛(모)는 狹鋒銅矛(협봉동모)로 불리는데 한반도와 일본에 걸쳐 다수 분포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筑紫矛(축자모)도 이 계통에 속한다.

(활통)
2화살을 넣는 용기로 두껍게 옻칠을 해 만든 원통이다. 표면에는 은제 삼각형과 원형 透金具(투금구)를 장식으로 붙였고 은 띠를 두르고 있다. 뚜껑에도 은제 四葉金具(사엽금구)를 장식했다.
漆甲小札
(칠갑소찰)
일괄두꺼운 옻칠을 해서 만들었는데 모피에 실을 꿰어 단 것으로 추정된다. 小札(소찰)에는 여기저기 꿰맨 실이 약간씩 남아 있어서 실로 꿰는 방법의 일부를 추측하게 해 준다. 화살통과 마찬가지로 중국 고대의 갑옷이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최초의 예다.
鐵矛
(철모)
1목곽의 천장부 서쪽에서 발견했다. 금동의 鐓(돈)도 있는데 길이는 2.9m 이다.
黑漆彩繪矛鞘
(흑칠채회모초)
1矛(모), 剱(검)등의 흑색 옻칠한 칼집을 다수 발견했으나 身(몸체)는 부식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칼집도 또한 그런 예인데 표면에는 白(백), 朱(주)색으로 용 문양을 그리고 있다
[참고]
銅矛
(동모)
1상기의 狹鋒銅矛(협봉동모)의 참고로서 평양부근, 경주부근, 일본 九州(큐슈) 지방에서 발견된 동모를 진열했다. 이 동모는 소위 세형동검과 같이 한반도의 서, 남쪽에서 일본의 北九州(기타큐슈), 中國(중국)에 걸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특히 한반도 서쪽지방에서 현저하게 발견된다. 이런 동모, 동검을 통해서 당시 쌍방의 관계를 알 수 있다.
銅矛
(동모)
10
銅矛
(동모)
10
4. 집기류
銅鐎斗
(동제초두)
1집기류는 거의 대부분 北室(북실)에 남겨졌는데 원래 3장의 옻칠한 상 위에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鐎斗(초두)는 물건을 데우는 용기인데 특히 이 초두는 원래부터 뚜껑과 몸을 사슬로 연결시켰고, 주구에도 뚜껑을 둔 개폐식으로 사용에 편리하다.
金銅扁壺
(금동편호)
1편호는 원래 휴대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형태의 그릇이다. 주로 액체를 넣어두는 것.
銅博山爐
(동제박산로)
1향로로, 뚜껑과 爐身(노신), 支柱(지주) 및 承盤(승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뚜껑은 산 형태로 본뜨기를 통칙으로 하다.
銅壺
(동제호)
10
獸鎭
(수진)
3호랑이를 본뜬 鎭子(진자)로서 납을 주 재료로 한 것 같다. 호랑이 형태의 것은 매우 거칠다. 아마 원래는 금이나 은을 입힌 것인가?
夾紵漆耳杯
(협저칠이배)
3夾紵(협저)는 포를 겹쳐 옻칠로 견고히 한 것이고 耳杯(이배)란 양 귀가 있는 그릇으로 예로부터 그 이름이 있는데 달리 羽觴(우상)이라고도 한다. 觴(잔)은 杯(배)이다.
王銘漆耳杯殘欠
(왕명칠이배잔결)
2물레로 깎아 만든 목심의 杯(배)로 王銘(왕명)은 소유자의 성이다.
王氏銘漆盤殘欠
(왕씨명칠반잔결)
1盤(반)은 물건을 쌓아두는 용기로 과반, 식반 등이 있다. 이것 또한 물레로 깎아 만든 것이다.
王氏銘漆盤殘欠
(왕씨명칠반잔결)
10
□大王銘漆案附案脚
(□대왕명칠안부안각)
1옻칠한 상의 3장 중의 하나로 3장 모두 같은 솜씨, 의장인 대형의 상으로, 2장의 판을 붙이고 뒷면에는 2개의 사다리를 건네 보이지 않는 곳을 장식했다. 표면에는 주위를 높혔고 내,외구에는 漢代(한대) 특유의 문양을 칠해 그렸다. 명문은 아마도 ‘利大王(이대왕)’이라는 것일 것이다. 즉 ‘왕씨에게 많은 이로움이 있기를’의 길상구가 된다.
漆匣蓋
(칠갑개)
1길쭉한 작은 상자의 뚜껑으로 겉면은 금동사엽금구로 장식하고 뒷면은 빨간 바탕색 위에 흑색 옻칠의 도문을 그리다. 원래 바깥쪽의 네 모서리도 금동 못으로 장식했으나 지금은 결실되어 없다.
土器
(토기)
3낙랑고분에서는 보통 토기류에 물건을 넣어 봉납하는데 때로 20여 개를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고분에서는 겨우 4점에 지나지 않았다.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註] 동기 및 토기류는 제사의 도구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獸鎭(수진)은 문방구라는 것이 적당하지만 어느 것도 임시로 집기로 일괄하고자 한다.
5. 장신구, 직물류
水晶丸玉
(수정환옥)
6패옥과 빗은 어느 것도 서실의 중앙에서 발견했다. 원래 앞의 집기류 중 漆匣(칠갑)에 넣어 둔 것일 것이다.
瑪瑙丸玉
(마노환옥)
1
玻璃飾玉
(파리장식옥)
1
玳琩長櫛
(거북껍질에 옥이 달린 긴 빗)
1
織物各種
(직물각종)
일괄0
革紐及革殘片
(가죽 끈 및 가죽의 잔편)
일괄0
6. 동쪽 관 내부 부장품
瑪瑙髮飾玉
(마노 머리장식 옥)
1줄이와 같은 패옥류는 머리, 가슴, 팔의 위치에서 발견했다. 특히 팔장식의 옥류는 좌우가 일치하지는 않으나 각각의 위치에 뭉쳐서 남아 있다.
頸飾
(목걸이)
1줄
腕飾
(팔장식)
2줄
銀指輪
(은제 반지)
3대거의 대부분 녹슬어 완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으나 좌우에 같이 5개씩 착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銀耳璫
(은제 귀걸이)
1대예전에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귀걸이는 대부분이 玻璃(파리)제고 이용한 북모양이 보통인데, 보는 바와 같이 원기둥형으로 되어 있는 은제 귀걸이는 매우 희소하다. 귀걸이는 거의 부인이 패용한 것으로 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織物
(직물)
일괄0
金銅四葉棺飾金具
(금동제 사엽 관장식 금구)
2사엽금구는 안에 있던 관의 바깥쪽 윗부분 끝의 네 주위에 붙여 장식한 것 같다. 특히 동쪽 관에서는 안에 있던 관의 바깥쪽에 포를 붙인 후 그 위에 사엽금구를 붙여 장식한 것 같다.
稗(피)일괄안쪽 관 곳곳에서 발견했다. 서쪽 관에서는 밑에 짚과 같은 것을 깐 흔적이 있다. 혹은 피가 붙어 있는 채로 깐 것인지도 모르겠다.
7. 서쪽 관 내부 부장품

(검)
1漢(한)시대에 일반적인 철제의 얇은 몸체를 하고 있는 長劍(장검)이고 병부에 감은 끈이 약간 남아 있다. 把頭(파두), 帶取(대취), 鞘尻(초고) 등은 관에 넣었을 때 제거한 것으로 보여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漆鞘鐵刀子
(옻칠한 철제도자의 칼집)
1검을 왼쪽, 도자를 오른쪽에 차는 것이 남자에게서 자주 보이는 통칙인데, 이 도자도 역시 오른쪽에 남아 있었다. 병부에 감은 끈이 거의 대부분 남아 있고 더우기 금平脫(평탈)에는 먹과 백악으로 문양를 그렸다.
銀指鐶
(은제 반지)
130
木櫛
(목제 빗)
1목제 빗은 다리 부분이 남아 있는데 아마도 출토위치는 변한 것 같다. 玳琩長櫛(대창장즐)은 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었다.
玳琩長櫛
(대창장즐)
1
金銅四葉座飾鋲
(금동 사엽좌 식병)
일괄오른손이나 왼손의 칼을 두르는 띠 부근에서 발견했다. 아마도 허리띠 장식 일 것이다.
瑪瑙髮飾玉
(마노 머리장식 옥)
1줄머리에는 관모을 썼으나 완형을 거의 알기 어렵다. 장식 옥은 관모의 앞뒤에서 발견했다. 바로 머리 밑부분에는 장방형의 판이 붙어 있고 거기에 잘라 붙인 금박과 玳琩(대창)의 장식을 붙였다. 베개일 것이다.
玻璃髮飾玉
(파리 머리장식 옥)
1줄0
金玉裝銀帶金具
(금옥장식의 은제 허리띠 금구)
2하나는 은판에 곰 문양을 때려내어 새겼고 곳곳에 금평탈하는데 터키옥을 상감으로 장식한 띠고리다. 다른 하나는 원문양에 차이가 있지만 전자와 같이 금과 옥으로 장식하고 은을 때려서 문양을 새긴 띠고리다. 더우기 평평하게 편 띠의 일부분도 남아 있다.
銀王根信印
(은제 왕근신인)
1거북문양의 손잡이가 달린 은제 도장으로 도장면에는 전서체 음문으로 ‘王根信印(왕근신인)’이라고 되어 있다. 이와 함께 나무도장도 하나 발견했으나 아직 판독은 어렵다. 동쪽 관에서 발견한 銅印(동인)도 녹슬어 파손되고 ‘王野之印(왕노지인)」’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金銅四葉棺飾金具
(금동 사엽 관장식 금구)
20
織物(직물)일괄0
8. 중화군 동두면 진파리 제1호분 벽화모사
玄武圖
(현무도)
1장현실 북벽 소재.
靑龍圖
(청룡도)
1장현실 동벽 소재.
白虎圖
(백호도)
1장현실 서벽 소재.
朱雀圖
(주작도)
1장현실 남벽 동쪽 소재.
朱雀圖
(주작도)
1장현실 남벽 서쪽 소재.
武人像
(무인상)
1장연도 동벽 소재.
武人像
(무인상)
1장연도 서벽 소재.
忍冬唐草文
(인동당초문)
1장현실 천장고임 소재.
金銅透彫金具
(금동투조금구)
1개오른쪽 진파리 제7호분 발견. 쌍룡이 얽혀 있고 그 사이에 해와 달을 배치시킨 의장을 투조한 것으로 뒷면에는 비단벌레의 날개를 붙여넣은 것.
圖 1_낙랑고분 출품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 특별 전람안내(❶~❻)
圖 1_낙랑고분 출품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 특별 전람안내(❼~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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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모사 자료번호 : ku.d_0003_0070_009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