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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고분 발굴품

낙랑군은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원봉(元封) 3년(지금부터 2050년 전) 한반도에 설치한 군(郡)으로 이후 421년간 지속되었고 그 군치(郡治)의 중심은 계속 평양 부근에 있었다. 전람 중의 유물은 낙랑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다.
 
총독부는 올해 평양에서 4기의 낙랑고분에 관한 발굴조사를 시행했는데 특히 석암촌 제219호 분에 있어서는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 그 출토품들 중에서 두드러진 것 약 80점을 선택해 특별전시관람에 내게 되었다. 이 고분은 직경 약 23미터, 높이 약 4미터의 방대형의 토분(土墳)으로 묘실은 지표 밑으로 움푹 꺼졌고 모서리가 둥근 방형의 광실 안에는 끼워 맞춘 목곽실이 있었다. 더욱이 묘실 안은 장벽으로 둘로 나뉘어 있고 동, 서에 각각 1기씩 목관(이중관)이 있었다. 서쪽 관에서는 관(冠), 침(枕), 옥식(玉飾), 은지환(銀指環), 즐(櫛), 칠초검(漆鞘劍), 도자(刀子), 은제대금구(銀製帶金具), 견포(絹布)와 함께 ‘왕근신인(王根信印)’이라고 새겨진 구유인(龜鈕印)이 발견되어 피장자가 왕근(王根)이라는 사람이었던 것이 판명되었다. 이에 반해 동쪽 관은 여성의 것으로 생각되는데 각종 옥식(玉飾), 은지환(銀指環), 칠방렴(漆方奩), 동인(銅印:부식되어 문자는 불명확)과 다량의 비단이 발견되었다. 곽실 안의 빈곳에는 무기(武器), 마구(馬具), 여차구(輿車具), 십기(什器), 장신구(裝身具)류가 장소가 협소할 정도로 부장되었고, 무기로는 궁(弓), 노(弩), 모(矛), 극(戟), 검(劍), 개(鎧), 시통(矢筒) 등이 있다. 마구(馬具)로는 우수한 조각이 새겨진 금동마면(金銅馬面)이 있고, 함께 출토된 북방식 동물 문양을 두들겨 문양을 만들어낸 은제장신구가 두드러지며, 그 외에도 비(轡), 각종 혁금구(革金具)류가 있다. 집기로는 초두(鐎斗), 편호(扁壺), 박산로(博山爐), 호(壺) 등의 동용기(銅容器)가 가장 주목을 끈다. 그 외에도 토기나 칠기가 있으며, 크고 긴 개(蓋)과 궁(弓), 노(弩), 부(斧) 등의 목질 부분에 비단과 같은 유기질의 물질이 잘 남아 있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로서 당시 기물(器物)의 형상과 구조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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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고분 발굴품 자료번호 : ku.d_0003_0070_009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