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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내리 고분군 조사

내리 제1호분

내리는 토포리의 북방에 해당하는데 노산리(장수원)의 동북에 인접하는 지역이다. 내리의 산록과 구릉대지에는 약 30여기의 고구려 고분이 유존한다. 그 중에서 서남방의 낮은 구릉상에 있는 일군은 골짜기를 끼고 약 10여 기가 동서로 분산되어 있다. 이 고분은 동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1호분은 완만한 경사면에 조영되었다. 상부가 일찍이 파괴된 것으로 조사 당시 토사가 실내에 가득 차 있었다. 내리 1호분의 천장 모줄임부에 벽화가 있음이 알려진 것은 조사가 이루어지기 1년 전인 1935년인데, 이것이 오바 쓰네키치에 알려져 그 해 여름에 벽화 모사도가 작성되었다. 다만 고분에 간이 지붕을 씌워둔 채로 본 조사를 미뤄 왔던 터였다. 분구는 동서 직경 약 20m, 남북 약 24m, 높이 약 4.5m로 내리 고분군에서는 외형상 가장 큰 규모였다. 분구정상에는 이미 도굴의 흔적이 있었고 수목이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다.
발굴조사는 1936년 10월 2일 연도출입구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착수 당일 묘문의 천장석에 해당하는 판석이 발견되었지만 그 아래로 석회를 먹인 폐쇄석이 가득 차 있어 이를 제거하지 못하였다. 다음 날 다시 조사에 착수하여 폐쇄석을 제거하고 연도내부를 정리한 다음 현문의 쌍여닫이 문짝을 앞으로 눕혀 놓고 현실 내부의 토사를 제거했다. 현문의 돌 문짝에는 각각 둥근 철제 문고리가 달려 있었으며 문확에 꽂힐 수 있도록 회전축에 장부가 달려 있었다. 연도 하층에는 부식된 칠피(漆皮)와 문짝에 장착하는 각종 부속금구와 쇠못이 발견되었다. 가장 하층에는 출입문 한 짝이 누워 있었다.
내리 고분군 분포도
내리 고분 1호 실측도
현실내부를 정리하자 파괴된 천장에서 유입된 토사가 60cm 정도 차 있었는데 벽화가 그려진 석회 파편이 다수 섞여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쇠못과 관대 받침돌로 보이는 석재가 발견되었다. 연도는 현실의 중앙에서 약간 동으로 치우쳐 있는데 입구 폭은 1.29m, 높이는 1.91m 이다. 연도입구에서 현실입구인 현문까지의 길이는 1.9m 전후인데 장방형의 판석이 5장이나 깔렸다. 현실은 방형으로 폭 2.92m에 천장은 고구려 특유의 형식에 속하는 것으로 평행고임과 삼각모줄임이 연속된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3.30m이고 분정까지는 4.05m 정도이다. 연도는 물론 현실의 네 벽도 모두 할석에 회를 먹이면서 쌓았고 벽면에는 평균 1cm 정도의 회 미장을 하였다. 현실의 천장에는 판석을 가공하여 얹고 역시 회로 미장하여 마무리하였다.
현실 4벽에는 벽화를 그렸는데 주로 먹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붉은 계통의 색을 번갈아가며 칠해서 그림을 완성했다. 내리 1호분 벽화의 주제는 사신인데 박리가 심하여 천장과 현실 벽면의 벽화는 탈락되었고 현실천장의 고임부에만 벽화가 남아 있다. 동벽은 주룡(走龍)에 비운(飛雲)을 배치하고 희미하게 몸통과 꼬리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북벽의 벽화는 희미하지만 현무도로 판단된다. 거북의 머리 부분과 팔, 다리가 확인되며 둥글게 감긴 긴 뱀을 배치하였다.
천장석은 파괴되어 사라진 부분이 있지만 잔존하는 천장의 채색은 비교적 선명하다. 천장의 최하단인 평행고임 1층 4벽에는 측시연화를 그려 놓았다. 동북 모퉁이와, 서북 모퉁이에 인동연꽃문과 아미산의 산악과 수림이 배치되다.
연화문이 평행고임 2층 남면과 북면 중앙에서 확인되며 좌우에 동심원이 배치되어 있다. 평행고임 2층 동쪽에 그려져 있는 태양은 거의 결실되었다. 좌우를 비워두고 운산(雲山)을 원경으로 표현하였다. 서쪽의 태음(달)은 태양과 비슷한 모양으로 절반은 훼손되었다. 달에는 계수나무가 그려져 있고 토끼가 있으나 박리가 심하여 귀와 다리만 확인된다. 삼각고임의 측면에 연화문과 인동문이 조합되어 그려져 있다.
현실에는 높이 39cm 정도의 시상석이 존재하는데 그 주변에서 쇠못편, 칠편(漆片) 등이 출토되었다. 상면에 평탄하게 회반죽을 3cm 정도 발랐다. 조사자들은 내리 1호분의 석실구조, 벽화, 연화문의 형태 등을 고려하여 6세기 중·후반으로 편년하였다.
내리 1호분의 벽화 모사는 오바 쓰네키치[小場恒吉]가 실시하였지만 현장에서의 발굴조사를 포함하여 석실 도면과 약보고서의 원고는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작성하였다.
내리고분 1호 석실 단면도(오바 쓰네키치 작도)
내리 제1호분 전경
내리 제1호분 근경
내리 제1호분 연도 입구 폐쇄석 상태
내리 제1호분 연도 입구 노출 후
내리 제1호분 현실 입구
내리 제1호분 현실 천장부 동벽
내리 제1호분 현실 천장부 서벽
내리 제1호분 현실 천장부 남벽
내리 제1호분 현실 천장부 북벽
내리 제1호분 현실 북벽 벽화
내리 제1호분 벽화 1
내리 제1호분 벽화 2
내리 제1호분 벽화 3
내리 제1호분 벽화 4
내리 제1호분 벽화 5
내리 제1호분 벽화 6
내리 제1호분 벽화 7
내리 제1호분 출토품

그 외 내리 고분

상오리의 와포 부락에 인접하는 고분군인데 소나무숲 속에 위치하는 고분 20기 중에서 크기가 큰 순서로 3기를 골라서 굴착한 정황이 확인되지만 작업 도중 모두 조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벽화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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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고분군 조사 자료번호 : ku.d_0003_0040_00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