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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용호동 고분군

용호동 고분군은 전체 3기인데 구룡강에 면한 고분을 1호라 하고 차례로 2호와 3호로 명명하였다. 가장 먼저 용호동 1호를 발굴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사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용호동 1호 용호동 1호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1917년 6월 18일: 고분은 원래 기단상의 석총이지만 파괴되어 아래 3층만이 남아 있다.
고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봉황 장식을 발견했다.
6월 19일: 1호분의 유물 위치를 기록하다.
6월 20일: 위원으로 출발
일지에는 출토유물도 기록해 두고 있는데 알려진 철제 화덕과 봉황장식, 철제꺾쇠, 철못 이외에도 철부와 토기 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키노의 보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파괴되어 상부가 움푹 패인 매장주체부를 조사하였더니 목곽과 연도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그 바닥에서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음을 밝혔다.
용호동 2호 1호에서 북으로 77척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봉토분이다. 봉분의 규모는 동서가 90척이고 남북이 85척이다. 봉토의 상부에 이미 구멍이 나 있어 현실 내부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하였다. 2호도 굴착하였는데 연도로 들어가서 현실 내부에 찬 토사를 걷어내고 조사를 진행했다. 현실은 자연석으로 벽을 쌓은 다음에 회를 발랐으며 천장은 3단의 평행모줄임과 2단의 삼각모줄임한 다음에 뚜껑돌을 덮었다. 연도는 커다란 판석을 좌우로 세운 다음 1장의 돌을 덮어 씌운 구조이다. 벽석등의 파손이 심하며 출토유물은 없었으나 세키노는 1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구려시대의 유적』에는 용호동 2호의 실측도가 실렸는데, 짧은 조사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m 등고선이 들어간 분구 측량도와 석실내부 전개도를 작성되었다.
용호동 3호 용호동 3호는 1호의 동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기단식 적석총이다. 기단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파괴가 심한 것이지만 원래 동서 방향으로 3개의 석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세키노는 1호와 동 시기 동 형식의 구조라 하면서 그가 압록강 이남에서 확인한 그 어떤 석총보다도 대형이라고 하였다.
‘세키노 컬렉션’의 조사 일지에는 2호와 3호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조사일지에는 6월 20일부터의 행적을 아래와 같이 적어두고 있어 조사의 동선과 조사 경과를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다.
6월 20일: 위원으로 여행하기 위해 온정리에서 숙박
6월 21일: 운산 계곡을 북상하면서 금광 옆을 지나 보리밭으로 덮인 장성(長城) 일부를 보고 우현령을 지나 회목동에 있는 헌병 숙사에서 숙박
6월 22일: 회목동을 지나 판묘령의 비탈을 넘어 계곡을 따라 10여 리 진행하여 오후 10시경에 객주에 숙박
6월 23일: 계곡의 산도를 지나 고개를 넘어 위원천을 따라 북으로 전진하여 오후 9시경에 읍성으로 들어감
6월 24일: 위원 읍내 시찰
6월 25일: 위원천에 면하여 북으로 올라가 만호동 고분군을 관찰하였으나 모두가 작은 석총으로 붕괴되었음
6월 26일: 구읍(舊邑)을 나와 밀산면 구읍동의 고분군을 관찰함. 압록강에 면한 석총으로 3기만이 유존함
6월 27일: 하산하여 배후의 언덕을 넘어 강안의 구읍동의 석총에 이르렀는데, 기단식으로 대묘이지만 약간 붕괴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북측에는 거석을 쌓아 기단으로 삼고 (현실)은 삼실로 남아 있다. 중앙부에 연도처럼 돌을 쌓았는데, 약실측을 하고 돌아왔다
6월 28일: 위원 구읍을 출발하여 배를 타고 강을 내려와 초산군 신천동(新川洞) 헌병파출소에 도착
6월 29일: 헌병 통역을 포함하여 일행 8명이 강을 건너 대안의 간도지로 들어가 유수림자 주재(駐在)의 집안현 순관(巡官) 왕씨를 방문하고 대고력묘자 고분을 보고 신천동으로 돌아옴
6월 30일: 집안현 대고력자의 고분 실측을 위해 강을 건너 유적을 조사하고 오후 7시에 유수림자에 도착
7월 1일: 어제에 이어서 대고력묘의 고분을 실측
7월 2일: 대고력자 부근의 유적을 방문하고 저녘 무렵에 강을 건너 신천동으로 돌아옴.
7월 3일: 신천동 고분의 실측(제6호분)
7월 4일: 신천동 6호의 실측과 발굴
7월 5일: 발굴을 진행하였으나 유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중지
7월 6일: 신천동을 출발하여 강을 1리 정도 내려와 초산읍으로 들어감
7월 7일: 초산을 떠나 강을 내려와 운매천리 헌병 파출소 도착
7월 8일: 운매천리 부근 고분군의 배치도 약도를 작성
7월 9일: 강을 내려가기 위해 배를 기다림
7월 10일: 운매천리를 떠나는 정크선을 타고 압록강을 내려와 간도 석주(間島石柱)에 도착
7월 11일: 석주를 출발하여 포석에 도착
7월 12일: 포석을 출발하여 의주에 도착
7월 12일까지를 적고 있는데, 조사 내용에 대한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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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 고분군 자료번호 : ku.d_0003_002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