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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1911년도 ‘고적 조사’의 개요

‘세키노 조사단’에 의한 1911년의 고적 조사는 9월 11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조사에 참가한 사람은 세키노, 야쓰이, 구리야마주 001
각주 001)
도쿄제국대학 공과대학 건축학연구실 출신으로 세키노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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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조선총독부의 기사인 기코 토모타카(木子智隆)와 조선인 하급관리인 李아무개가 수행하였다(高橋2001). 경기도 일원에서 시작하여 개성, 평양, 용강, 강서, 강동 황해도 봉산을 조사한 다음 경상도로 내려와 대구, 경주, 울산, 양산 등지를 조사하였는데, 도중 조사단을 2개로 나누어 조사의 효율을 꾀하기도 하였다.
특히 평안남도 강서에서는 여러 곳의 고구려 고분을 답사하였다. 9월 29일에 황룡산성을 견학하고 그 주변 황산록의 고분군을 관찰하였다. 고구려 유적 조사에는 당시 평양일보사의 사주인 시라카와 쇼지(白川正治)도 동행하였다. 9월 30일에는 주변의 황산 고분군을 관찰하고 그 내부를 약측했음이 세키노 야장을 통해 확인된다. 10월 4일 강동에 도착하여 5일부터 10일까지 한왕묘 발굴을 시도하였지만, 10일 절개한 고분 봉토가 붕괴되면서 조사를 중단하였다. 그러다 10월 16일에 조사를 재개하여 18일에 조사를 마무리하였다.

  • 각주 001)
    도쿄제국대학 공과대학 건축학연구실 출신으로 세키노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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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도 ‘고적 조사’의 개요 자료번호 : ku.d_0003_001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