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강루 4호분(望江樓 4號墳)
출토지
아하향 남변석합달촌 북쪽 약 100m의 산마루에 위치하며 4호분은 고분군 중부에 있음(雅河鄕 南邊石哈達村 北側 100m 㟶位置, 4號墳 古墳群 中部 位置).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71 | 본계시 환인현문물관리부문 (本溪市桓仁縣文物管理部門) | 4기의 고분이 도굴당하고 출토 유물은 거의 파괴 되었으며 도굴해낸 목걸이 등 일부 문물을 회수함 |
2004 | 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 본계시박물관, 환인현발굴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本溪市博物館, 桓仁縣發掘隊) | 빈번한 도굴로 인한 응급발굴을 실시하여 6기의 적석묘를 발굴함. |
구조특징
조약돌로 축조하였고, 묘실이 위치하고 있는 범위 안의 암반을 쪼아 파서 만든 비교적 얕은 장방형의 묘광을 만듬. 무덤 바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비탈 위는 좀 깊게 쪼아 파고 비탈 아래는 좀 얕게 쪼아 팠음.
묘실 바닥 부분이 위치한 곳은 암반으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므로, 암반을 쪼아 판 묘광은 북쪽이 깊고 남쪽이 얕음.
묘실 평면은 말각장방형으로 길이 3.5m, 너비 2.9m, 제일 깊은 곳 0.3m, 제일 얕은 곳은 0.1m의 규모임.
무덤 바닥에는 작은 조약돌들을 한 층 평평하게 깔아 놓았고, 작은 조약돌들의 위와 그 틈새에서 인골의 잔해와 일부 구슬장식(珠飾)들을 발견됨.
묘실 내의 동북쪽과 서북쪽 모서리에 아직도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 무지가 남아 있고 두께가 약 0.3m쯤 되며, 그 위는 조약돌 적석무지인데, 이것은 죽은 자를 장례한 후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로 묘실을 채워 넣은 다음 다시 조금 더 큰 조약돌로 묘실 전체를 봉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추정됨.
무덤 파괴가 심각하여 쪼아서 판 묘광의 사면 위 변두리, 특히 비교적 얕은 남쪽의 위 변두리를 조약돌로 묘벽을 계속하여 쌓았는지는 불명확함.
북쪽에 있는 적석의 바깥쪽에서 조약돌로 에워 쌓은 불규칙적인 石圈 1 곳 확인되고, 석권의 직경은 0.3m 안팎이며, 내부에서 비교적 많은 토기편들이 발견되었고, 墓祭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
묘실 바닥 부분이 위치한 곳은 암반으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므로, 암반을 쪼아 판 묘광은 북쪽이 깊고 남쪽이 얕음.
묘실 평면은 말각장방형으로 길이 3.5m, 너비 2.9m, 제일 깊은 곳 0.3m, 제일 얕은 곳은 0.1m의 규모임.
무덤 바닥에는 작은 조약돌들을 한 층 평평하게 깔아 놓았고, 작은 조약돌들의 위와 그 틈새에서 인골의 잔해와 일부 구슬장식(珠飾)들을 발견됨.
묘실 내의 동북쪽과 서북쪽 모서리에 아직도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 무지가 남아 있고 두께가 약 0.3m쯤 되며, 그 위는 조약돌 적석무지인데, 이것은 죽은 자를 장례한 후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로 묘실을 채워 넣은 다음 다시 조금 더 큰 조약돌로 묘실 전체를 봉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추정됨.
무덤 파괴가 심각하여 쪼아서 판 묘광의 사면 위 변두리, 특히 비교적 얕은 남쪽의 위 변두리를 조약돌로 묘벽을 계속하여 쌓았는지는 불명확함.
북쪽에 있는 적석의 바깥쪽에서 조약돌로 에워 쌓은 불규칙적인 石圈 1 곳 확인되고, 석권의 직경은 0.3m 안팎이며, 내부에서 비교적 많은 토기편들이 발견되었고, 墓祭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
자연환경
산마루 북쪽은 급격한 낭떠러지로 그 아래 혼강이 흐름.
참고문헌
·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編纂委員會,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 1990
· 梁志龍·王俊輝, 「遼寧桓仁出土靑銅遺物墓葬及相關問題」『博物館研究』 1994-2, 1994
· 梁志龍·王俊輝, 「遼寧桓仁出土靑銅遺物墓葬及相關問題」『博物館研究』 1994-2,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