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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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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동문지(東城 東門址)

 
  • 구분유구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F000652
  • 위치(출토지)撫順 高爾山城; 北關山城(무순 고이산성; 북관산성)
 

출토지

 

동벽 가운데 부분(東壁 中央部)
 

유적명

 

고이산성; 북관산성(高爾山城; 北關山城)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내용
1940 문지 중앙에 석단(石段) 3단이 있었다고 함.

 

구조특징

 

지세가 낮고 평평함. 작은 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상황기영자촌(上黃旗營子村)으로 갈 수 있음.
1940년 조사 때, 문지 중앙에 석단(石段) 3단이 있었다고 함. 석단의 연석(緣石)는 상당히 크고, 내부에는 3~4촌각(寸角)의 비교적 작은 깬돌을 채웠음. 1단에서 2단을 쌓을 때, 2단의 가장자리는 안으로 들어가 있고 혹은 말발굽형을 이루고 있는데, 인위적인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는 불분명함. 남측 성벽 위에는 초석이 있고, 그 위로 직립하는 기와 6점이 서로 이어져 있는데 기와는 모두 흑색임. 그 위로는 적색기와가 흩어져 있었음. 암키와를 깨뜨려서 수키와를 대용한 것도 있음. 처마 끝 쪽은 흑색 기와를 쓰고 지붕 용마루 쪽으로는 적색기와를 썼던 것으로 추정됨. 초석 위에는 9촌 정도의 흙이 있음. 동문 남측 벽은 상하 2단으로 되어 있음. 하단의 석단(石垣)의 길이는 약 7척임. 상단 석단의 길이는 8척 정도임. 하단의 석단은 높이가 6척 정도에서 끝나고, 상단 석단 상면은 폭이 3척 정도의 평탄면이 됨. 기와들은 상단의 석단에서 약간 북쪽에서 발견되고 있고, 평기와를 제거하면 상단의 돌담이 나옴. 처마 끝을 덮었던 평기와류가 그대로 처마에서 흘러내려 직립했고, 그 위로 나중에 기와가 퇴적된 것으로 추정됨. 만약 여기에 건물이 있었다면 문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동문지 동벽 바깥에서 작은 자갈이 나왔는데, 벽의 중간에 있음. 옹성의 흔적일 수도 있음. 석축 내측에는 문지의 초석이 있었을 것임(三上次男·田村晃一, 1993).
1963년 조사 때에는 6m 너비의 활구가 남아 있었고, 양측 성벽의 높이는 6m 정도였음. 해방 전에는 큰 석조(石條)로 수축한 돌계단과 문타(門垜)가 있었다고 함.
1983~1985년 조사 당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동문지 부근의 외벽 양측은 모두 석조로 쌓아서 이루어진 계단형태이고, 각 층 길이는 약 20m라고 함(徐家國·孫力, 1987).
동성 동문지(Ⅲ구역)는 현재 자연적인 활구임. 활구의 외측 남단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반원호형(半圓弧形)의 뉴만(扭弯)이 있는데, 토축흔적이 매우 명확함.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활구는 당시의 출입구임. 이러한 모습은 남문의 정황과도 일치함(徐家國·孫力, 1987).
동문지에서는 철제 화살촉, 와당, 태평통보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서북방에서 많이 출토됨.

 

유물정보

 

기와(瓦) 1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와당(瓦當) 1점, 태평통보(太平通寶)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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