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산룡 6호묘(山龍 6號墓)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956
  • 위치(출토지)
    遼寧省 撫順縣 救兵鄕 山龍村
  • 지역
    무순(撫順市)
  • 유형
    고분>적석총
  • 형태사항
    석실 
출토지
요녕성 무순현 구병향 산룡촌(遼寧省 撫順縣 救兵鄕 山龍村)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0 1980년대 초에 문물조사 때에 발견함.
1990 호태(虎台)댐을 중수하는데 석붕묘지(石棚墓地)가 수몰구역 안에 있어 요령성고고연구소는 무순시박물관과 회동하여 해당 묘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함. 이 묘지에서 총 8기가 확인되었는데 석붕 2기(M1·M2), 적석묘(대석개적석묘) 2기(M4·M5), 적석석실묘 1기(M6) 등이 보고됨.
구조특징
묘지는 북에서 남으로 2기의 석붕이 지표에 나란히 서 있으며, 석붕 남쪽의 20m 정도에 3개의 거대석이 지면에 노출되어 있는데 지석은 없고 잡목 속에서 평평히 누워있음. 도로의 서측 역시 대석이 여러 개 있는데 주민에 의하면 일찍이 인골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함. M4는 고분군의 중간 부위에 자리하는데 북쪽에는 8호묘, 남쪽에는 5호묘가 있음. 서부에는 도로 건설할 때 이미 파괴되어 부분적인 적석이 이미 남아 있지 않음. M5는 묘구의 중앙부에서 약간 남쪽에 치우쳐 있는데 북부 적석은 M4와, 동남 적석은 M6과 근접해 있음. 지표에서 이 무덤을 보면 상부의 덮개돌만이 지표 위에 노출되어 있음.
산룡묘지에서 발견된 무덤 속에서는 온전한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두 부서지고 불에 탄 뼛조각(骨片)임. 묘실 바닥 및 네 벽은 모두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8호묘 속에서는 인골만이 불에 탄 것이 아니라 토기 역시 모두 불에 타서 변형되었고 석판은 불에 타서 깨짐. 이는 이 묘지의 무덤이 모두 화장이며 게다가 묘실 내에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음.
산룡 4호묘는 학자에 따라 각각 적석묘·압석묘(壓石墓)(무가창), 대석개적석묘, 위체형(圍砌型) 석붕묘(石棚墓)(화옥빙), 석개형(石蓋石) 광적석묘(壙積石墓)(이신전) 등으로 유형이 나뉨.
묘실은 장방형임. 묘도 방향은 동편남(東偏南) 5°임. M6은 산룡고분군의 유일한 적석석실묘로 일찍이 파괴당해 상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바닥부의 묘실이 남아 있음. 묘실 네 벽은 할석으로 축조하였음. 동벽은 길이 약 210㎝, 너비 45㎝, 높이 30㎝의 장대석 하나로 쌓았는데 그 밖에는 몇 단의 작은 할석을 더해 쌓았으며, 북벽의 길이는 묘실 내벽과 동일한 195㎝이며, 서벽은 여러 대석으로 쌓았는데 잔고(殘高)가 30-50㎝이고 길이가 210㎝임. 묘문(墓門)은 남벽에 열려 있는데 약간 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묘문 너비는 60㎝임. 묘문에는 두 개의 할석을 차례로 깔고 가운데에 작은 돌을 가로로 깔았음. 묘문 동벽은 너비 70㎝, 서벽 너비 45㎝로 남벽은 전체 길이 175㎝이며, 잔고 25-30㎝임. 묘문에 가로로 놓인 할석은 줄곧 남쪽을 향하는데 약 140㎝ 길이의 가로로 깔은 할석 용도(甬道)임. 용도의 가운데에는 가로로 놓은 할석이 있는데 할석의 양쪽에는 용도의 벽(邊框)을 순차적으로 쌓았으며, 용도는 길이 170㎝, 너비 80㎝임. 용도 아래에는 작은 쇄석(碎石) 및 흑토가 있고, 흑토의 아래에는 황사토가 있음. 묘실 바닥부에는 여러 개의 불규칙한 판석을 평평하게 깔았음. 묘실 외부의 서벽에 돌을 쌓아서 적석이라 부를 수 있다. 돌을 세 겹으로 기울어져 묘실 외벽을 보호하고 있음. 보호석의 바닥부는 길이 270㎝, 너비 90㎝, 높이 60㎝임. 이 부분이 5호묘의 적석 위에 중복되어 있음. 6호묘는 비교적 심각하게 파괴되었는데 동부 및 북부의 적석은 이미 남아 있지 않으며, 남부는 용도의 가장자리에 부분적으로 적석이 남아 있음. 이 무덤은 아직 인골 및 부장품이 발견되지 않았음.
내부규모 및 특징
동벽 길이 약 210㎝, 너비 45㎝, 높이 30㎝
북벽 길이 195㎝
서벽 길이 210㎝, 잔고 30~50㎝
묘문 너비 60㎝
묘문 동벽 너비 70㎝
묘문 서벽 너비 45㎝
묘문 남벽 전체 길이 175㎝, 잔고 25~30㎝
용도 길이 170㎝, 너비 80㎝
보호석 바닥부 길이 270㎝, 너비 90㎝, 높이 60㎝
역사적 의미
무가창(武家昌)의 연구는 다음과 같음. 산룡묘지의 발굴은 하나의 묘지에서 석붕묘, 적석묘, 적석석실묘 등 세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보기 드문 사례임. 4호 및 5호묘는 구조상 적석묘와 유사하고 대개석묘와는 다름. 대개석묘 상부에는 대개석을 천정돌(頂蓋)로 삼고 하부에는 묘실이 있으며 토광 혹은 돌(石塊)로 층층히 묘갱(墓坑)을 쌓았고 무덤 내부에는 메우는 돌(塡石) 등이 없음. 그러나 산룡의 4·5호묘는 묘실을 돌로 층층히 쌓았는데 비교적 얕으며, 묘실 안은 돌로 채우고 대석으로 그 상부를 눌렀으나 대석은 일정하게 묘실 전체를 누르지 않았음. 따라서 무가창은 보고서에서 대석개묘와는 다른 유형의 무덤이라고 파악해 ‘적석묘’라 명명하였는데 후에 ‘압석묘(壓石墓)’라고 칭하기도 함.(武家昌, 1994, 「遼東半島石棚初探」, 『北方文物』1994-4) 이 적석묘는 석붕과 유관하여 석붕의 발전과정상 최후 단계로 파악함. 4호묘의 압석(壓石)은 비교적 크며 그 북부에 세 개의 대석이 달라붙어 있는데 기울어져 놓여 있음. 몇 개의 돌이 석붕을 받치는 조건을 구비하지만 세워져 있지 않고 겨우 상징성으로 적석묘 위에 눌려 있는 것임. 이는 당시 석붕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았으며, 대석은 석붕을 표시하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함.
이신전(李新全)의 연구는 다음과 같음. 해당 무덤형식을 적석묘와 대석개묘가 결합하여 나타난 것으로 파악하며, ‘석개석광적석묘(石蓋石壙積石墓)’로 명명함.
화옥빙(華玉冰)의 연구는 다음과 같음. 석붕묘를 묘실이 지표상에 보여지는 여부에 따라 다시 석붕묘와 석개묘로 구분하는데 해당 무덤형식을 석개묘가 아닌 석붕묘로 파악함. 특히 석붕묘 가운데 돌(石塊) 또는 자갈(卵石)으로 층층히 쌓아 묘실을 만들고 그 밖에 돌을 쌓은 형식이라 하여 ‘위체형석붕묘(圍砌型石棚墓)’라고 명명함.
6호 적석석실묘는 그 형상을 보면 고구려 시기 묘장임. 4·5호묘 적석묘는 외형상 비교적 특수하며, 구조상 이미 고구려 시기의 적석묘와 유사함. 6호 적석석실묘는 5호 적석묘의 적석 위를 누르고 있으므로 5호 적석묘가 고구려시기의 적석석실묘보다 이르다고 판단됨. 따라서 4·5호 적석묘의 연대는 전국말기 또는 한대 초기가 비교적 적합함.
산룡묘지에서 발견된 무덤 속에서는 온전한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두 부서지고 불에 탄 뼛조각(骨片)임. 묘실 바닥 및 네 벽은 모두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8호묘 속에서는 인골만이 불에 탄 것이 아니라 토기 역시 모두 불에 타서 변형되었고 석판은 불에 타서 깨짐. 이는 이 묘지의 무덤이 모두 화장이며 게다가 묘실 내에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음.
자연환경
묘지는 요녕성 무순현 구병향 산룡촌 남쪽 500m의 산비탈 아래 위치함. 묘지는 서북으로는 무순시와 30㎞ 떨어져 있으며, 묘지의 동·서는 산을 이루고 있으며 구병하(救兵河)의 지류가 동부의 산 아래로 흐르며, 무순-청하성 도로가 묘지의 서쪽을 통과함.
참고문헌
· 武家昌, 「撫順山龍石棚與積石墓」『遼海文物學刊』 1997-1, 1997
· 李新全, 「遼東地區積石墓的演變」『東北史地』 2009-1, 2008
· 華玉冰, 「中國東北地區石棚硏究」 吉林大學博士學位論文, 2008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上·下), 西安地圖出版社, 2009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산룡 6호묘(山龍 6號墓) 자료번호 : ku.d_0001_0070_0030_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