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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산룡 4호묘(山龍 4號墓)

  • 구분
    유적
  • 시대
    청동-철기시대
  • 위치
  • 유물번호
    S000954
  • 위치(출토지)
    遼寧省 撫順縣 救兵鄕 山龍村
  • 지역
    무순(撫順市)
  • 유형
    고분>적석총
  • 형태사항
    기타 
출토지
요녕성 무순현 구병향 산룡촌(遼寧省 撫順縣 救兵鄕 山龍村)
연대
4, 5호 적석묘 연대 전국말기 또는 한대초기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0 1980년대 초에 문물조사 때에 발견함.
1990 호태(虎台)댐을 중수하는데 석붕묘지(石棚墓地)가 수몰구역 안에 있어 요령성고고연구소는 무순시박물관과 회동하여 해당 묘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함. 이 묘지에서 총 8기가 확인되었는데 석붕 2기(M1·M2), 적석묘(대석개적석묘) 2기(M4·M5), 적석석실묘 1기(M6) 등이 보고됨.
구조특징
묘지는 북에서 남으로 2기의 석붕이 지표에 나란히 서 있으며, 석붕 남쪽의 20m 정도에 3개의 거대석이 지면에 노출되어 있는데 지석은 없고 잡목 속에서 평평히 누워있음. 도로의 서측 역시 대석이 여러 개 있는데 주민에 의하면 일찍이 인골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함. M4는 고분군의 중간 부위에 자리하는데 북쪽에는 8호묘, 남쪽에는 5호묘가 있음. 서부에는 도로 건설할 때 이미 파괴되어 부분적인 적석이 이미 남아 있지 않음. M5는 묘구의 중앙부에서 약간 남쪽에 치우쳐 있는데 북부 적석은 M4와, 동남 적석은 M6과 근접해 있음. 지표에서 이 무덤을 보면 상부의 덮개돌만이 지표 위에 노출되어 있음.
산룡묘지에서 발견된 무덤 속에서는 온전한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두 부서지고 불에 탄 뼛조각(骨片)임. 묘실 바닥 및 네 벽은 모두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8호묘 속에서는 인골만이 불에 탄 것이 아니라 토기 역시 모두 불에 타서 변형되었고 석판은 불에 타서 깨짐. 이는 이 묘지의 무덤이 모두 화장이며 게다가 묘실 내에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음.
산룡 4호묘는 학자에 따라 각각 적석묘·압석묘(壓石墓)(무가창), 대석개적석묘, 위체형(圍砌型) 석붕묘(石棚墓)(화옥빙), 석개형(石蓋石) 광적석묘(壙積石墓)(이신전) 등으로 유형이 나뉨.
덮개돌의 방향은 동측남(東偏南) 20°임. 大塊石 한 매와 장대석 3매가 적석무지를 덮고 있음. 큰 덮개돌은 갈색 침적암으로 불규칙한 장방형이며, 길이 2.4m, 너비 1.9m, 두께 0.19-0.35임. 장대석 모두 큰 덮개돌의 북쪽에 쓰러져 있는데 갈색 침적암임. 기본적으로 동서방향으로 3개의 장대석 한곳에 서로 누르고 있음. 장대석1은 길이 2m, 너비 0.80m, 두께 0.35m이고, 장대석2는 길이 1.90m, 너비 0.30m, 두께 0.15m이고, 장대석3은 길이 1.75m, 너비 0.50m, 두께 0.20m임. 큰 덮개돌의 주위에 대량의 자갈(卵石), 돌(塊石)을 쌓은 적석이 있으며, 대석 아래에도 적석이 있음. 북부의 적석은 최고 너비가 2.4m, 남부는 0.92m, 동부는 0.70m임. 서부는 일찍이 파괴당해 적석이 이미 남아 있지 않음. 적석은 동부·남부에서 비교적 규칙이 있는데 어떤 적석은 세심히 배열되어 있고 적석은 정연히 질서가 있어 두 줄의 정연한 열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가장자리는 더욱 명확함. 큰 덮개돌을 젖히면 하부에는 가지런한 석렬이 하나 있는데 남부는 불명확하고 서부는 이미 남아있지 않음. 이는 묘실로 길이 150㎝, 너비 70㎝, 깊이 50㎝임. 바닥은 황사토이며, 그 위에서 홍갈색 토기편과 목탄 등을 발견함.
내부규모 및 특징
덮개돌 길이 2.4m, 너비 1.9m, 두께 0.19~0.35m
장대석1 길이 2m, 너비 0.80m, 두께 0.35m
장대석2 길이 1.90m, 너비 0.30m, 두께 0.15m
장대석3 길이 1.75m, 너비 0.50m, 두께 0.20m
묘실 길이 150㎝, 너비 70㎝, 깊이 50㎝
역사적 의미
무가창(武家昌)의 연구는 다음과 같음. 산룡묘지의 발굴은 하나의 묘지에서 석붕묘, 적석묘, 적석석실묘 등 세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보기 드문 사례임. 4호 및 5호묘는 구조상 적석묘와 유사하고 대개석묘와는 다름. 대개석묘 상부에는 대개석을 천정돌(頂蓋)로 삼고 하부에는 묘실이 있으며 토광 혹은 돌(石塊)로 층층히 묘갱(墓坑)을 쌓았고 무덤 내부에는 메우는 돌(塡石) 등이 없음. 그러나 산룡의 4·5호묘는 묘실을 돌로 층층히 쌓았는데 비교적 얕으며, 묘실 안은 돌로 채우고 대석으로 그 상부를 눌렀으나 대석은 일정하게 묘실 전체를 누르지 않았음. 따라서 무가창은 보고서에서 대석개묘와는 다른 유형의 무덤이라고 파악해 ‘적석묘’라 명명하였는데 후에 ‘압석묘(壓石墓)’라고 칭하기도 함.(武家昌, 1994, 「遼東半島石棚初探」, 『北方文物』1994-4) 이 적석묘는 석붕과 유관하여 석붕의 발전과정상 최후 단계로 파악함. 4호묘의 압석(壓石)은 비교적 크며 그 북부에 세 개의 대석이 달라붙어 있는데 기울어져 놓여 있음. 몇 개의 돌이 석붕을 받치는 조건을 구비하지만 세워져 있지 않고 겨우 상징성으로 적석묘 위에 눌려 있는 것임. 이는 당시 석붕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았으며, 대석은 석붕을 표시하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함.
이신전(李新全)의 연구는 다음과 같음. 해당 무덤형식을 적석묘와 대석개묘가 결합하여 나타난 것으로 파악하며, ‘석개석광적석묘(石蓋石壙積石墓)’로 명명함.
화옥빙(華玉冰)의 연구는 다음과 같음. 석붕묘를 묘실이 지표상에 보여지는 여부에 따라 다시 석붕묘와 석개묘로 구분하는데 해당 무덤형식을 석개묘가 아닌 석붕묘로 파악함. 특히 석붕묘 가운데 돌(石塊) 또는 자갈(卵石)으로 층층히 쌓아 묘실을 만들고 그 밖에 돌을 쌓은 형식이라 하여 ‘위체형석붕묘(圍砌型石棚墓)’라고 명명함.
6호 적석석실묘는 그 형상을 보면 고구려 시기 묘장임. 4·5호묘 적석묘는 외형상 비교적 특수하며, 구조상 이미 고구려 시기의 적석묘와 유사함. 6호 적석석실묘는 5호 적석묘의 적석 위를 누르고 있으므로 5호 적석묘가 고구려시기의 적석석실묘보다 이르다고 판단됨. 따라서 4·5호 적석묘의 연대는 전국말기 또는 한대 초기가 비교적 적합함.
산룡묘지에서 발견된 무덤 속에서는 온전한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두 부서지고 불에 탄 뼛조각(骨片)임. 묘실 바닥 및 네 벽은 모두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8호묘 속에서는 인골만이 불에 탄 것이 아니라 토기 역시 모두 불에 타서 변형되었고 석판은 불에 타서 깨짐. 이는 이 묘지의 무덤이 모두 화장이며 게다가 묘실 내에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음.
자연환경
묘지는 요녕성 무순현 구병향 산룡촌 남쪽 500m의 산비탈 아래 위치함. 묘지는 서북으로는 무순시와 30㎞ 떨어져 있으며, 묘지의 동·서는 산을 이루고 있으며 구병하(救兵河)의 지류가 동부의 산 아래로 흐르며, 무순-청하성 도로가 묘지의 서쪽을 통과함.
유물정보
토기편(土器片) 1점, 목탄(木炭) 1점
참고문헌
· 武家昌, 「撫順山龍石棚與積石墓」『遼海文物學刊』 1997-1, 1997
· 李新全, 「遼東地區積石墓的演變」『東北史地』 2009-1, 2008
· 華玉冰, 「中國東北地區石棚硏究」 吉林大學博士學位論文, 2008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上·下), 西安地圖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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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룡 4호묘(山龍 4號墓) 자료번호 : ku.d_0001_0070_0030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