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좌(旗杆座)
출토지
북문 동측 1,000m, 흑구(黑溝) 입구(山口) 서측 100m의 산정(山頂)에 위치(北門 東側 1,000m, 黑溝 入口 西側 100m 山頂 位置)
유적명
봉황산산성; 옥골성; 오골성(鳳凰山山城; 屋骨城; 烏骨城)
연대
4세기 말~5세기 초
구조특징
양측 성벽은 2개의 거대 암석이 중단한 곳에서 만나며, 두 암석 사이는 겨우 너비 3m, 깊이 4m의 빈틈이 있음. 이 곳에 쐐기형 돌을 사용하여 방형 석대(方形 石臺)를 쌓았는데, 대심(臺心)에 구멍을 남겼음. 구멍은 방형이며, 가장자리 길이(구멍 지름)은 25㎝, 구멍 깊이 70㎝임. 대(臺)의 왼쪽과 오른쪽은 성벽과 연접하였음. 이 라인(線)은 크고 작은 계곡 입구(山口)가 매우 많고 성 바깥 산비탈은 비교적 완만하여 적의 기습을 받기 쉽기 때문에 중점적으로 방어, 수비하는 방어선임.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산성의 북쪽에 옛 전쟁터가 있었다고 함. 지금까지 “舍將屯”이란 지명이 남아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조(唐朝)가 高麗(高句麗)를 정벌(征伐)할 때 이 곳에서 병사와 장군이 전사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