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평가고분(四平街古墳)

  • 구분
    유적
  • 시대
    청동-철기시대
  • 위치
  • 유물번호
    S000716
  • 위치(출토지)
    遼寧省 寬甸縣
  • 지역
    단동(丹東市)
  • 유형
    고분>기타
  • 형태사항
    2점  , 기타 
출토지
요녕성 관전현(遼寧省 寬甸縣)
연대
전국 중만기 또는 그 이후.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78 관전현 장전공사 사평가대대 3소대사원(長甸公社 四平街大隊 3小隊社員) 마을 동남 400m 지점의 돌무지 속에서 석관묘 발견.
구조특징
고분은 장대석으로 축조된 석관묘. 석관 내에 한 개체의 인골이 확인. 인골은 이미 부패됨. 묘실의 장축방향은 10°임. 인골 주위에서 동모(銅矛) 2점이 발견되었으나 현재 1점만을 수습했음. 그 외 옥장식(玉飾) 10점이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산실됨.
역사적 의미
고분형식.
적석묘로 파악하는 견해. 박진욱(1987년)은 조가보 고분을 비롯한 압록강 중하류의 석퇴유적을 돌무지무덤이라고 봄. 손영종(1990년)은 고구려 건국연대를 기원전 3세기로 소급해 보면서 압록강 중하류의 석퇴유적을 고구려에 선행한 구려국의 돌각담무덤으로 파악함. 전촌황일(1990)은 압록강 중하류의 석퇴유적을 적석총으로 파악. 지병목(1997)은 압록강 중하류의 석퇴유적을 적석묘로 파악. 강현숙(1999)은 요동지방 고유 묘제를 중국계 묘제인 토광묘와 구별되는 석관묘, 지석묘, 적석묘 등 돌무덤으로 상정하고, 압록강 중하류의 석퇴유적 역시 돌무덤으로 보고 적석묘로 해석.
석관묘로 파악하는 견해. 여호규(2011)는 압록강 중하류의 일대의 석퇴유적 가운데 석관묘로 보고된 유적이 다수라는 점에서 적석묘보다는 석관묘로 파악함. 다만 조가보 고분은 묘광(墓壙)이 석판으로 축조된 것이 아니고 자연 석괴와 자갈로 축조되었다는 점에서 석관묘로 확정하지 않음.
고분연대.
단동지구에서 출토된 청동단검은 세 형식으로 분류됨. 제1형식은 검날 하단의 원호(圓弧)가 비교적 넓고 검날 말단은 원호형(圓弧形)으로 줄어들고, 검끝은 비교적 짧고, 등대(柱脊) 위에는 돌기(脊突)가 있음(사례: 岫巖 西房身遺蹟). 제2형식은 검신이 비교적 길고, 검끝이 길고, 검날 전단부는 비교적 좁거나 수직에 가깝고, 후단부는 명확히 돌출부분이 있으며, 검날 말단은 꺾여 줄어듦(사례: 관전 조가보자 유적 및 봉성 소진가 유적). 제3형식은 검신이 비교적 길고, 검끝이 길고, 검날 하단은 직절(直折)되고, 검날 말단은 꺾여 줄어들고, 등대(柱脊) 위에는 돌기(脊突)가 없음(사례: 東溝 大房身遺蹟).
제1형식의 청동단검 유적에서 비교적 이른 과릉형(瓜稜形)의 석침상기(石枕狀器)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 청동단검 형식과 동일한 다른 지역 청동단검묘에서 아직 철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춘추시기에 해당한다고 추정됨. 제2형식의 청동단검은 엽맥문(葉脈紋)의 쌍뉴동경과 엽맥문(葉脈紋)의 동모과 함께 출토되는데 이 동경과 동모는 길림 집안의 오도령구문 방단적석묘 속에서 발견됨. 집안 출토의 청동단검이 단동지역 제3형식 청동단검과 형식이 동일하므로 단동지역 출토의 제2형식과 제3형식의 청동단검 시대는 대체로 비슷하다고 여겨짐. 단동지구 제2형식과 같은 환인현 대전자 청동단검묘에서 전국시기 명도전과 철도(鐵刀)가 출토되었으며, 집안 청동단검묘에서 도끼날형 철촉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단동지구 출토의 제2형식과 제3형식의 청동단검은 그 연대가 전국 중만기(戰國 中晩期) 또는 그 이후로 추정됨.
관전 사평가 고분은 청동단검이 출토되지 않고 엽맥문(葉脈紋)의 동모가 확인됨. 제2형식의 청동단검이 엽맥문의 동모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고분의 연대는 전국 중만기 또는 그 이후로 추정됨.
자연환경
관전현 장전공사 사평가대대 3소대사원(長甸公社 四平街大隊 3小隊社員) 마을 동남 400m 지점에 위치.
유물정보
동모(銅矛) 2점, 옥장식(玉飾) 10점
참고문헌
· 許玉林·王連春, 「丹東地區出土的靑銅短劍」『考古』 1984-8, 1984
· 박진욱, 「초기 좁은 놋단검문화의 내용과 발전과정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 1987-1, 사회과학출판사, 1987
· 손영종, 「고구려 건국년대에 대한 재검토」『력사과학』 1990-1,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90
· 田村晃一, 「高句麗の積石塚」『東北アシアの考古學』, 六興出版, 1990
· 강인숙, 「고구려에 선행한 고대국가 구려에 대하여」『력사과학』 1991-2,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91
· 池炳穆, 「遼東半島와 鴨綠江 中·下流地域 積石墓의 관계-高句麗 積石墓의 기원에 관한 試論」『史學硏究』 53, 한국사학회, 1997
· 강현숙, 「고구려 적석총의 등장에 대하여」『경기사학』 3, 경기사학회, 1999
· 지병목, 「高句麗 成立期의 考古學的 背景-묘제의 변화과정을 중심으로」『고구려의 국가형성』, 고구려연구재단, 2005
· 여호규, 「高句麗 초기 積石墓의 기원과 築造集團의 계통」『역사문화연구』 39, 2011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평가고분(四平街古墳) 자료번호 : ku.d_0001_005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