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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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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NAHF.ku.d_0001_0040_0030_1990ID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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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하 오회분 4호묘(禹山下 五盔墳 4號墓)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498
  • 위치(출토지)集安市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벽화고분
  • 형태사항가로: 30m, 세로: 30m, 높이: 10m 9점 석실 
 

출토지

 

집안시(集安市)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09 1909~1910년 谷井濟一, 栗山俊一에 의해 『조선고적도보』(1915)에 기록.
1950 1950년 8월 李浴에 의해 주변을 봉쇄하고 보호작업.
1950 1950년 겨울 겨울 인민해방군 부대장에 의해 무덤문이 무단으로 열려 임의로 사용되다가 국가 문화부의 개입으로 무덤문 폐쇄.
1962길림성박물관 집안고고공작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集安考古工作隊, 集安縣文物保管所)
1962년 6월 6일~8월 말 王承禮, 李殿福, 方起東, 韓淑華, 劉萱堂, 林至德(이상 조사) 莫東作, 鄭捷, 王紀棟(이상 촬영), 王大維, 李超雄, 曲紹伯, 劉萱堂(이상 모사)에 의해 정리·발굴을 진행하면서 봉토 보호 작업 실시. 여러 점의 금동기, 철제 못, 관목 잔편 등이 출토.
1962길림성박물관집안고고대
(吉林省博物館集安考古隊)
1962년 8월~1963년 8월 王大維, 李超雄, 劉萱堂에 의해 벽화조사 및 모사.
1965길림성박물관
(吉林省博物館)
실측과 무덤 안 벽화의 모사작업.
1966 통구고분군에 대한 조사·실측 때, 우산묘구 2104호묘(JYM2104)라고 편호.
1974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관부문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管部門)
1974년 3월 길림성박물관과 집안현문관부문에 의해 벽화 수리가 검토. 1974년 9월 집안현문관소에 의해 벽화 수리, 화학적 보존처리 작업 시행.
1997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재실측.
2004 2004~2005년 孫仁杰, 遲勇에 의해 묘 주위에서 많은 암키와와 수키와를 수습.

 

구조특징

 

봉토석실벽화묘
오회분 4호묘는 오회분 가운데 한기로, 5기의 무덤 모양이 투구와 닮아서 五盔墳이라고 부름. 1966년 우산하 2104호묘(JYM2104)로 편호. 통구미편호묘라고도 부름.
일찍이 도굴을 당한 상태였음. 동·서·북 세 면의 봉토는 보존이 비교적 양호했고, 봉토 남면은 약간 유실되어 돌로 쌓은 보호석(擋土墻)이 일부 드러남. 묘실 내에는 진흙이 적지 않게 있었고, 관대사이의 틈에는 황색 사토가득 차 있었음.
절두방추형이고, 봉토는 황색 점토임. 무덤칸의 방향은 동으로 30˚기운 남향. 묘도, 연도, 묘실로 구성됨.
묘도 양측에는 擋土墻이 설치됨. 墻의 높이는 3m 임. 큰 석조로 쌓았고, 외벽에는 4~5㎝ 두께의 백회를 발랐으나, 현재는 대부분 박락됨. 擋土墻은 연도의 바깥입구에서부터 양측면으로 0.25~0.3m 평평히 뻗었고, 다시 각각 남쪽으로 꺾여 0.8~1m 정도 뻗쳤음. 묘도 뒤쪽 끝부분(북쪽) 중앙에는 가공하지 않은 직경 2.6m, 높이 1.8m의 커다란 돌이 있는데, 이 돌을 놓아 묘문을 막았음. 묘도 바닥은 평평한 原生土이고, 그 위는 자연석이 쌓여 있음.
연도는 묘도 뒤에 접해 있고, 묘실 남벽에서 동쪽에 치우진 지점에 나 있음. 연도 뒤에 묘문이 있음. 연도 양벽의 돌과 묘실 남벽 양측의 돌은 동일한 돌임. 연도 頂石과 묘실 남벽 상면에 설치된 양방의 돌도 역시 동일한 돌로, 바깥쪽으로 계속 뻗쳐 연도 꼭대기를 덮었음. 연도 頂石 상면에는 가로로 3층의 거대한 돌을 쌓았고, 높이는 1m 정도임. 楣石과 유사하게 묘 꼭대기의 봉토를 차단함. 연도 입구 안쪽 가장자리에는 너비 0.2m의 문틀이 파여 있는데, 문틀은 연도 벽보다 2㎝ 높음. 연도 바닥에는 묘실보다 14㎝ 높게 석판을 깔았고, 바깥쪽으로 묘도와 평행함. 연도 안쪽에는 원래 거대한 돌 4개로 막았음. 가장 아래층 돌 한 개는 아직 연도 안쪽에 놓여 있음. 그 안쪽 끝은 문틀과 서로 접해 있고, 좌우 양측은 연도 양벽과 접해 있는데, 틈에는 작은 礫石과 백회로 채웠음. 돌은 길이 1.55m, 너비 0.94m, 높이 0.72m 임. 이 돌의 바깥 끝 측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0.63m 간격으로 대칭이 되도록 뚫은 두 개의 원형 구멍이 있는데, 구멍은 직경 12m, 깊이 0.2~22m 임. 그 외 커다란 돌 세 개는 묘문 외측에 옮겨 놓았는데, 같은 모습으로 가지런하게 다듬었음. 그 가운데 돌 한 개는 깊이 1.57m, 너비 1.5m, 두께 0.49m로 비교적 크고, 한측면에 두 개의 원형구멍이 서로 대칭하고 있는데, 구멍은 직경 0.12~0.14m, 깊이 0.18~0.2m 임. 연도를 봉하기 위한 돌 가운데 2층 돌임. 나머지 두 개의 돌은 비교적 작은데, 길이 0.83m, 너비 0.77m, 두께 0.41~0.44m임. 이 돌들의 한 측면에도 원형 구멍이 있음. 이 돌들은 제2층석 윗면에 나란히 놓은 제3층 봉석이라고 할 수 있고, 모두 한면 외측은 동그랗게 파여 있는데, 밀폐할 때 윗부분을 미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
묘실은 정교하게 다듬은 커다란 화강암으로 쌓았고, 백회로 틈을 메웠는데, 공법이 정교하고 구조가 엄밀함. 네 벽은 약간 안으로 기울어졌고, 두 층의 거대한 돌로 쌓음. 고임받침석(梁枋)은 네 벽 위에 설치하였는데, 네 벽에서 안쪽으로 12㎝ 들어왔고, 높이는 0.55m 임. 정은 양방 윗면에 있는데, 천정은 2층 말각고임임. 제1중 말각고임은 梁枋의 네 모서리 위에 설치했음. 올려다보면 릉형이고, 높이는 0.56㎝ 임. 제2중 말각고임은 제1중 頂石 네 모서리에 있고, 양방과 평행함. 올려다보면 방형이고, 높이는 0.6m임. 제2중 頂石 윗면에는 정연한 큰 석판 1개를 깔아, 묘꼭대기를 덮었음. 묘실의 높이는 3.64m 임. 묘문의 양측, 남벽의 위쪽 끝에는 좌우 대칭하는 작은 구멍 두 개가 있음. 제1층 말각석의 측면 정가운데와 남벽 양방의 오른쪽 끝(서쪽 끝) 정가운데 역시 각각 작은 구멍 한 개가 뚫려 있음. 구멍은 직경 4~6㎝, 깊이 12㎝ 임.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음. 묘실에는 남북으로 평행한 관대 3개가 설치됨. 그 북쪽 끝은 모두 북벽과 접해 있고, 좌우의 두 관대는 각각 동서 양벽에 닿아 있음. 오직 서쪽 관대와 서벽이 접해진 곳에, 백회를 발라 붙이고, 관대의 일부분을 충당함. 세 관대는 높이 0.16m, 길이 2.45~2.71m, 너비 1.05~1.25m 임. 남벽의 서쪽 끝에는 동서방향으로 돌받침(石座) 한 개가 있는데, 남·서 두벽과 접해 있음. 길이는 1.78m, 너비는 0.87m, 높이 0.2m 임. 부장품을 놓은 臺座로 추정됨. 석실의 바닥에는 평평한 석판을 깔았음.
묘실 네벽, 천정, 관대, 연도 벽에 벽화가 그려짐. 네 벽에는 사신, 梁枋 위에는 蛟龍, 천정에는 伎樂·天人·日月星宿·草木·流雲 등이 그려짐.
연도 좌우의 동벽과 서벽에는 실물크기의 문지기 역사를 묘사. 다만 희미하여 자세히 볼 수 없음.
묘실의 네 모서리에는 각각 怪獸托龍을 頂梁까지 그림. 괴수는 오른쪽 다리는 뒤로 빼고 왼쪽 다리는 약간 구부린 자세로 두 팔로 위에서 내려진 교룡의 머리를 받치고 있음. 괴수는 용뿔에 도깨비 얼굴을 하고 있고,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 흉악한 용모를 하고 있음. 겨드랑이 아래에는 날개가 있고, 몸과 가슴을 드러냈으며, 근육이 나왔음. 하반신에는 짧은 羽桍를 입었음. 왼쪽 다리는 굽혔고, 오른쪽 다리를 뒤로 들어 올렸는데, 맨발임. 두 팔에는 서로 마주하는 두 마리 용이 휘감고 있음. 용의 머리는 위로 향하여 있고, 용의 입은 마주하는 용의 몸을 물고 있으며, 두 꼬리는 아래로 늘어뜨렸고, 복부는 들보에 걸쳤으며, 뒷발은 들보에 올렸음. 한 마리 용의 발은 괴수의 머리 위에 올려 놓았음. 괴수들은 형상은 서로 같으나, 색깔은 청색·자주색·赭色·녹색으로 서로 다름. 묘실 네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음. 동쪽에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그려짐. 네 벽에는 網狀蓮花火焰錦連續도안이 삽입됨. 網紋은 홍색·황색·검정색의 평행한 선으로 그렸고, 통일된 網紋 안에 세 종류의 도안을 섞어 그림. 첫 번째 종류는 측면에서 바라본 황색·자색·녹색의 활짝 핀 연화 11송이를 그렸고, 그 아래에는 花托이 있음. 양측에는 타오르는 작은 화염 기둥을 그렸고, 화염의 윗부분에는 작은 연꽃을 그렸음. 두 번째 종류는 網紋 아랫부분에서 두 송이의 蓮瓣이 좌우로 비스듬히 뻗어 나오고 있는데, 녹색·홍색·다색 3색으로 나뉘어짐. 연판 중간에 각종 인물도상이 그려져 있는데, 백색의 복련좌를 밟고 있음. 세 번째 종류는 網紋 아랫부분에서 좌우로 卷草葉이 뻗어 나오고, 두 잎의 중간에 三瓣 혹은 五瓣의 홍색 연꽃이 피어나고 있음. 묘실 네 벽의 網紋 속바탕에는 인물도상을 그림. 모두 10명인데, 각각 蓮臺 위에 앉아 있거나 혹은 서 있음.
동벽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음. 머리를 들고 입을 벌려 혀를 내밀고 있으며, 남쪽으로 내달리고 있음. 뿔은 황색, 머리는 녹색, 등은 황색, 배는 赭色, 나머지 몸통은 녹색·홍색·茶色 임. 검은 선으로 비스듬히 기울은 方格의 비늘무늬가 그려져 있음. 용의 목은 비교적 가늘고, 홍색·황색·분색 등 세 가지 색으로 그렸음. 목덜미에는 홍색과 녹색 두 색의 結環이 있음. 앞발은 펴고 뒷다리는 박차고 있음. 발가락은 모두 붉은 색임. 용꼬리는 끝부분이 올라가 있고, 앞다리 아래쪽에는 화염이 있음. 동벽에는 한명의 인물도상이 있는데, 오른쪽 위 網紋 속바탕에 그려짐. 머리에 鳥紗籠冠을 썼음. 몸에는 백색내의·綠領緣·花色長袍를 입었고, 흰 띠로 허리를 묶었으며, 검은 신을 신었음. 왼팔은 앞쪽으로 펴서 팔꿈치를 굽히면서, 손에 團扇을 들었고, 오른팔은 뒤로 구부려 오른손을 소매 속에 감추었음.
서벽에는 백호가 그려짐. 백호는 청룡과 마주하고 있음. 머리를 들고 남쪽을 향해 있음. 전체 몸은 흰색이고 묵선으로 단순하게 윤곽을 그림. 백호의 발가락은 청룡과 마찬가지로 세 개임. 앞발 아래쪽에는 화염이 있음. 꼬리는 위로 올라가 있음. 서벽에는 인물도상 세명이 있음. 제1층 網狀紋 속바탕 좌측의 제2조 내에 그려진 인물은 조사농관을 쓰고, 백색 내의와 홍색合袵綠色袍服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홍색 띠를 매었음. 오른손은 앞으로 團扇을 들었고, 왼팔은 약간 굽혔음. 검정색 신발을 신고 蓮臺를 밟고 있음. 제1층 網紋 속바탕 오른쪽 제1조 내에 그려진 인물은 머리를 묶었고, 白領緣赭色袍를 입었으며, 허리에 흰띠를 매었음. 蓮臺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음. 오른손에는 책을 들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가볍게 얹으면서, 책을 읽고 있음. 제2층 網紋 속바탕 왼쪽 제2組 內에 그려진 인물은 머리에 조사농관을 쓰고, 황색圓領緣赭色袍를 입었으며, 횐띠를 허리에 묶었음. 왼손에 團扇을 들고, 오른손을 등뒤로 하였음. 검은 신을 신고, 蓮臺에 서 있음. 이 인물의 흉부는 박락됨.
남벽에는 주작이 그려짐. 노란 부리와 붉은 벼슬의 주작은 勝을 쓰고 꼬리를 늘어뜨렸음. 동쪽을 향해 길게 울면서 날개를 펼쳐 날고자 함. 붉은 머리장식을 하고, 몸은 주로 홍색이며, 꼬리에는 녹색 점이 있는 긴 털이 위로 휘날리고 있음. 남벽에는 두 명의 인물도상이 있음. 남벽 윗부분 網紋 속바탕에 있는 인물은 머리를 높이 묶고,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용모는 명확하지 않음. 황색圓領緣과 다색袍服을 입었고, 허리에 흰색 띠를 매었음. 오른팔은 앞으로 폈고, 손은 바깥쪽으로 드러나지 않았음. 통이 큰 소매는 아래로 늘어뜨려졌고, 왼팔은 뒤로 늘어뜨렸음. 다리부분은 명확하지 않은데, 蓮臺에 서 있음. 주작 右翼 網紋 속바탕에 있는 인물은 머리를 묶었고, 두상은 길며, 귀는 뽀족함. 백색우의를 입고 있음. 蓮臺 위에 앉아 있는데, 오른쪽 다리는 책상다리를 하고, 왼쪽다리는 쪼그렸음. 왼팔은 앞으로 뻗었는데, 그릇에 물건을 안에 던져 넣는 모습을 하고 있음. 오른쪽 어깨는 구부려서 무릎 위에 놓았음.
북벽에는 현무가 그려짐. 현무는 거북이와 뱀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짐. 거북이는 몸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머리를 들고, 입을 벌려 혀를 내밀고 있음. 등은 자색이고 껍질은 없음. 뱀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거북이 머리와 마주하고 있음. 몸은 오색을 띠고, 등은 황색, 배는 다색임. 거북이 몸을 휘감고 꼬리는 위쪽으로 올라감. 북벽에는 네 명의 인물도상이 있음. 그 가운데 網紋 윗줄 정중앙에 있는 인물은 머리에 鳥紗籠冠을 썼고, 용모가 뛰어남. 몸에 綠領合袵紅色袍를 입었고, 허리에 띠를 묶었음. 왼손에는 團扇을 들었고, 오른팔은 소매 안에 넣었음. 팔은 약간 구부려서, 가슴 앞에 두었음. 옷의 통이 넓고 띠가 넓음. 발에는 검은 신을 신고 蓮臺를 밟고 있음. 북벽 오른쪽 위쪽 모서리 網紋 속바탕에 있는 사람은 머리에 鳥紗籠冠을 썼음. 紅領綠合袵錄袍를 입었고, 허리에는 홍색 띠를 매었음. 검정색 신발을 신고 蓮臺를 밟고 있음. 왼손에는 團扇을 들고, 오른팔은 약간 굽히고 다섯 손가락을 폈으며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함. 통이 큰 소매가 나부낌.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술은 빨갛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고 있음. 북벽 왼쪽 아래 모서리 網狀紋 속바탕에 있는 인물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풀어 헤쳤음. 紅領緣과 綠色羽衣를 입었고, 맨발로 홍색 蓮臺에 앉아 있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옆을 보고 있음. 왼손은 팔괘도를 가리키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가볍게 올려 놓았음. 복사뼈 부위에 홍색 고리를 차고 있음. 북벽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 網狀紋 속바탕에 있는 인물은 鳥紗籠冠을 썼음. 黃領緣合袵赭色袍를 입었고, 허리에는 녹색 띠를 묶었음. 검은 신은 신고 蓮臺을 밟고 있음. 왼손에 鹿尾를 들고, 오른팔을 아래로 늘어 뜨리고, 손을 소매 속에 넣고, 앞을 보고 있음.
묘실 벽과 천장고임이 닿는 벽 상단부에는 위아래 연속마름모꼴무늬 사이로 용들이 서로 얽혀 이룬 얽힌용무늬를 그렸음. 매 벽에는 두 마리의 용이 끝부분근처에서 휘감고 있는데, 위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고, 입에는 앞의 한 마리 용의 몸을 물면서 서로 이어지고, 앞으로 달리고 있음. 8마리의 용은 휘감아 돌면서 이어지는데, 두 마리의 용이 서로 휘감겨 형성한 연속도안으로 조성됨. 梁枋의 상하 양측 가장자리에는 赭色·남색·백색·황색·녹색 등으로 장식한 릉형의 붉은 珊瑚紋의 연속도안이 있음. 梁枋이 앞으로 나온 네벽의 아랫부분에는 황색·백색·자색으로 이루어진 長格紋 두 줄이 그려짐. 천장고임 제1단에는 서로 마주 보며 머리 위로는 해와 달을 떠받든 복희여와형 해신·달신과 수레바퀴를 다루는 제륜인, 쇠마치질을 하는 야철인, 불씨를 지닌 비선, 숫돌을 가는 숫돌의 신, 곡식 이삭을 손에 쥔 牛首人 등 여러 문명신을 묘사. 북쪽 모서리의 두 말각석 위에는 일월신, 人首龍身을 그림. 日神은 남자형상으로 오른쪽에 있는데, 짧은 콧수염에 머리를 풀어 뜨렸고, 두 손은 머리 위로 들어 황색의 둥근 해를 받들고 있음. 해 가운데에는 삼족오가 있음. 黃領緣合袵藍羽黃色衣를 입었고, 남색 깃이 날개처럼 펄럭이며, 허리에 황색 띠를 매었음. 용의 몸은 오색으로, 발은 앞뒤로 힘차게 박차고 있고, 꼬리는 흔들고 있음. 월신은 여자형상으로 왼쪽에 있는데, 횐 얼굴에 붉은 입술을 하고 있고, 긴 머리카락은 휘날리고 있음. 머리 위로 둥근 달을 받들고 있는데, 달 한가운데에는 두꺼비가 있음. 綠領緣合袵紅羽綠衣를 입었고, 허리에 흰 띠를 매었음. 용은 몸이 오색으로, 발은 앞뒤로 힘차게 박차고 있고, 꼬리는 흔들고 있음. 두 신은 서로를 향하여 비상하려 함. 일·월신 중간과 몸 뒤 모두 2~4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자색 나무줄기에 홍·황·녹 3색의 둥근 나뭇잎을 그렸음. 동쪽 모서리 말각석이 이어진 곳에는 牛首人과 비선이 그려져있음. 牛首人은 왼쪽에 있고, 소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있음. 黃領緣合袵粉色寬袖衣를 입었고, 허리에 흰 띠를 묶었으며, 아래에는 粉色羽狀의 짧은 바지를 입었음. 두 팔은 나란히 폈으며, 검은 신을 신고 두 다리를 굽혔다가 펴면서 도약하려 함. 비선은 남자형상으로, 오른쪽에 있음. 짧은 콧수염이 있고,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쳤음. 黃領緣合袵長裙을 입었음. 오른손은 가슴 뒤로 두었는데, 긴 소매는 나부끼고, 왼손은 비스듬히 뒷쪽으로 뻗었으며, 손에는 횃불을 들었음. 머리는 고개를 돌리고 내려다보고 있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발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牛首人과 비선의 중간 및 몸 뒤에는 두~세 그루의 나무가 있음. 남쪽 모서리 말각석 위에는 冶鐵人과 製輪人이 그려짐. 冶鐵人은 왼쪽에 있는데, 머리를 묶었고, 짧은 콧수염이 약간 있음. 黃領緣褐色袍와 圓領白色內衣를 입었고, 허리에 흰색 短裙을 묶었음. 方石 위에 책상다리로 앉았음. 검은 신발을 신었음. 오른손에는 鐵鉗을 들었으며, 붉은 색을 머금은 쇳덩어리를 다듬잇돌 위에 놓고, 왼손으로 쇠망치를 높이 들어 야철하려고 함. 제륜인은 오른쪽에 있음. 머리를 묶었고, 짧은 콧수염을 갖고 있음. 黃領緣合袵褐色羽狀袍服을 입었고, 허리에 흰 띠를 매었음. 검은 신발을 신고, 두 다리는 바퀴 전면에 서서, 왼손으로 수레바퀴를 잡고, 오른손으로 망치를 들어 내리치고 있음. 두 사람의 중간과 몸 뒤에도 큰 나무를 그림. 서쪽 모서리 말각석 그 왼쪽에는 한 사람이 남쪽을 향하고 있음. 黃領緣合袵羽狀褐色袍를 입었고, 허리에 녹색 短裙을 묵었음. 검은 신발을 신고, 왼쪽 다리는 앞쪽 오른쪽 다리 뒤쪽으로 하여 신발 끝으로 땅을 딛고 있음. 나무 그루터기 위에 있는 검은색 숫돌 앞에 멈추어 서서, 두 손으로 물건 하나를 들고 힘차게 가고 있음. 이 사람의 앞과 뒤에도 나무가 그려짐. 그 오른쪽부분에는 용을 타고 있는 선인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머리를 묶었고, 긴 頭相에 두 귀는 뾰족하며, 콧수염이 조금 나 있음. 횐색 내의와 黃領緣對合袵羽狀茶色袍를 입었고, 허리에 횐 띠를 매었음. 오색 용을 타고 머리를 들어 날아오르고 있음. 왼손에는 깃발을 들었음. 네 개의 말각석 가운데부분에는 각각 한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모두 네 마리임. 자태가 서로 같음. 용은 머리를 뒤로 돌리고 몸을 일으켜 굽은 등과 배를 두 번째 고임돌에 걸치고 있음. 용의 몸은 오색이고, 네 발의 윗부분에는 횐색 지느러미가 있음.
2중 頂石 북면에는 기악인 세 명이 있음. 우측에는 거문고를 타는 기악인이 그려졌는데, 머리에 蓮花冠을 쓰고, 용모는 빼어나며, 짧은 콧수염이 조금 있음. 백색내의와 黃領緣合袵赭色長袍를 입었음. 오른쪽 다리는 책상다리를 하고, 왼쪽 다리는 앞으로 뻗었으며, 그 무릎 위에 거문고를 놓았음. 왼손은 거문고를 잡고 오른손은 줄을 타고 있음. 가운데에는 요고를 치는 기악인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음. 짧은 콧수염이 있고, 머리를 묶었는데, 머리를 묶은 끈은 홍황색임. 紅領緣對合袵黃色袍를 입었는데, 얇은 옷은 몸에 붙었고, 어깨에 걸친 비단 휘자락이 휘날리고 있음. 가슴은 내밀고 배는 들이 밀었음. 무릎을 굽혀 공중으로 도약하려고 함. 요고는 허리에 묶었음. 오른손은 높이 들었고, 왼손은 요고를 치려고 함. 좌측에 있는 사람은 머리를 묶었고, 흰색 對袵內衣와 黃領緣合袵赭色袍를 입었음. 오른팔은 굽혀서 몸에 가까이 대었고, 손에 卷軸을 들고 있음. 두 다리는 뒤쪽으로 굽혔다 펴고 있고, 머리를 돌려 뒤를 보고 있음. 세 사람 틈에는 북두성좌와 流雲이 있음.
2중 頂石 동면에는 태양, 용을 탄 기악인, 봉황을 탄 기악인이 있음. 해는 정가운데에 그렸는데, 주색과 검정색으로 원의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 삼족오를 그렸음. 삼족오는 날개를 펼치고 길게 울고 있음. 용을 탄 기악인은 왼쪽에 있는데, 머리를 높이 묶었고, 黃領緣茶色袍를 입었음. 오른손에는 펄럭이는 붉은색 깃발을 들었고, 고개와 몸을 돌려 왼손에 들고 있는 퉁소를 막 불려고 함. 타고 있는 용은 몸이 오색으로, 날아오르려고 하면서, 머리를 높이 들었고, 입을 벌려 혀를 내밀고 있음. 봉황을 탄 기악인은 오른쪽에 있는데, 긴 머리를 묶었고, 두 개의 귀는 뾰족하며, 콧수염이 조금 있음. 圓領緣對袵白色內衣와 黃領緣合袵茶色袍를 입었고, 허리에는 횐 띠를 매었음. 두 손은 피리를 잡고 불고 있음. 기악인의 손목과 발목에는 홍·황 두색의 镯을 차고 있음. 타고 있는 봉황은 주홍색의 높은 볏이 있음. 목은 색깔이 다채롭고, 등은 황색이며, 어깨는 홍색임. 날개는 녹색이고, 묵선으로 깃의 윤곽을 그림. 봉황의 꼬리는 황색바탕에 빨간 깃털로, 뒤로 펼쳐져 있음. 머리는 들고 날개를 펴 비약하려 함.
2중 頂石 남면에는 남두육좌, 공작을 탄 기악인, 피리를 부는 기악인이 그려져 있음. 공작을 탄 기악인은 왼쪽 끝에 그려짐. 머리를 묶었고, 두개의 귀는 뾰족하며, 콧수염이 약간 있음. 백색 내의와 對袵茶色羽服을 입었음. 두 손은 가슴 쪽으로 하면서 물건을 들고 있음. 검은 신발을 신었고, 팔목과 발목에 모두 镯을 차고 있음. 타고 있는 공작은 짙은 녹색으로, 머리에는 勝을 썼고, 꼬리는 늘어뜨리면서, 날개를 펴 비약하려고 함. 머리는 들어 뒤돌아보고 있고, 화려한 깃털이 있는 꼬리는 위로 펼쳐져 있음. 피리를 부는 기악인은 오른쪽 끝에 그려졌는데, 머리를 묶었고, 黃領緣茶色袍를 입었음. 두 다리는 굽혔고, 검은 신발을 신었음. 몸에 두른 비단 자락이 나부끼고 있음.
2중 頂石 서면에는 달·용을 탄 기악인·학을 탄 기악인이 그려짐. 달은 중간에 있는데, 주색으로 윤곽을 그렸고, 횐 바탕에 두꺼비가 그려짐. 달의 위아래로 流雲이 있음. 용을 탄 기악인은 왼쪽에 있는데, 날아오르려고 하는 오색 용의 등에 앉아 있음. 머리를 묶었고, 두 귀는 뾰족함. 횐색 내의와 黃圓領緣茶羽服을 입었고, 허리에 흰 띠를 매었음.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고 있고, 胡角을 불고 있음. 오른쪽 다리는 구부리고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 위에 얹어 앞쪽으로 펴고 있음. 검은 신을 신었고, 팔목과 발목에 황색 镯을 차고 있음. 학을 탄 선인은 오른쪽에 있고, 남쪽을 향하고 있음. 머리에는 백관을 썼고, 횐색 내의와 黃領緣赭色長袍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횐 띠를 묶었음. 오른손은 학의 목을 가볍게 잡았고, 왼손은 학의 등에 두었음. 검은 신을 신었음. 팔목과 발목에 홍·황 두 색의 镯을 차고 있음. 하얀 학은 날개를 펴 비약하고 있음.
제 2重 頂石 네면에는 기악과 星宿 외에 流雲紋이 그려짐.
제 1·2重 頂石 말각석의 아랫부분에는 모두 한 마리의 용이 그려졌는데, 모두 여덟 마리가 있음. 용은 모두 입을 벌려 혀를 내밀고 있음. 몸을 오색이고, 네 발을 뻗었으며, 머리는 들어 돌아보는 동일한 자태를 취하고 있음.
천정 頂石에는 청룡 한 마리가 그려졌는데, 오색으로, 등은 황색이고, 배는 赭色임. 입은 벌려 혀를 내밀고, 머리를 들어 돌리고 있음. 앞발 겨드랑이 아래에는 불꽃이 솟아오르며, 뒷발에는 횐색 지느러미가 달렸고, 발을 구부리며 뒷발 하나를 바깥쪽으로 힘차게 박차고 있음. 바탕에는 流雲과 星宿을 그렸음.

 

내부규모 및 특징

 

1964․1984년 보고서 주변길이 160m, 높이 8m, 묘방향 150°.
1997년 보고서 변길이 30m, 높이 10m.
묘도는 남쪽에 있고, 길이 6m, 너비 8m.
연도는 길이 1.88m, 너비 1.75m, 높이 1.75m.
묘실은 횡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4.2m, 남북 너비 3.68m, 네 벽 높이 1.92m.

 

역사적 의미

 

오회분 4호묘는 구조가 웅장하고, 사용한 석재들은 매우 크고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말각을 쌓은 것도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 이는 고구려석조기술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보여줌.
오회분 4호묘의 형태, 벽화내용과 기법은 기본적으로 오회분 5호묘와 같음. 다만 오회분 5호묘에 그려진 벽화기교는 오회분 4호묘보다 높음. 벽화기교방면의 이러한 차이는 화가의 기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고, 오회묘 4호묘가 5호묘보다 축조연대가 이르다고 볼 수 있음.
예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오회분 4호묘는 고구려벽화예술의 전형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여줌. 오회분 4호묘의 벽화는 구도가 엄밀하고, 형상은 생동감이 있으며, 선은 힘이 솟구쳐 있는 등, 각저묘·무용묘·통구 12호묘·삼실묘 등 집안의 이른 시기의 벽화묘보다 발달된 모습을 보임. 이른 시기의 벽화묘는 벽화가 비교적 서투르고, 주제가 중점적으로 드러나며, 배경에 밥 먹는 家具, 생활용기, 가옥, 城池 등을 표현하지 않고, 유치한 표현이 남아 있음. 오회분 4호묘 네 벽에 그려진 주제는 사신도이나, 사신도 아래에 網狀火焰錦蓮花가 연속된 도안이 펼쳐져 있어, 벽면을 매우 풍성하게 해주고, 풍격은 비록 통일되었으나, 변화가 있음.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모두 매우 생동적임. 더불어, 덧대어 주는 도안은 벽면에 웅장하고 화려한 생동력을 더해 줌.
인물형상은 비례관계가 확실하고, 선의 움직임은 유창하며, 굵기에 변화를 주고 있는데, 인물의 얼굴·팔·가슴의 살을 묘사할 때, 부드럽고 가는 선으로 살의 느낌과 옷 주름의 奔放하면서 遁絶하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려면, 선을 쓸 때 극히 강구하여야 함.
색채의 운용과 관련하여 設色은 생동적이고, 짙고 엄숙한 빛깔과 광택으로, 사람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줌. 사용된 색깔은 홍색, 황색, 백색, 검정색, 녹색, 자색 등임. 비록 돌 위에 직접 그렸으나,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 색채는 새것과 같고, 매우 견고하며, 박락이 쉽게 되지 않았음.
오회분 4호묘는 고구려벽화예술의 높은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무덤임. 오회분 4호묘에 나오는 인물도상과 기악천인은 고구려의 사회문화사 연구에 있어 많은 자료를 제공함. 복식 중에 보이는 袍服·笼冠·墨履·黑靴·巾幘, 악기 중에 보이는 腰鼓·胡角·竽萧·長笛, 用具 중에 보이는 团扇·書卷·旌幡·麈尾·금동장식 모두 매우 소중한 자료임.
고구려 후기는 대부분 봉토묘임. 하지만 봉토묘 가운데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같은 거대한 봉토묘는 그 수가 많지 않음. 묘실 건축규모와 벽화 등은 웅장하고 화려함. 축조에 사용된 석재의 거대함과 정밀하게 가공한 점, 봉토가 언덕과 같이 크고 높은 점 등을 볼 때, 왕족의 묘로 추정됨. 한편 오회분 4호묘와 오회분 3호묘 묘단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 무덤의 피장자 간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음. 오회분은 동서로 일직선으로 배열되었고, 크기는 서로 비슷한데, 국가왕족의 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음.
길림성문물공작대(1984년)에서, 통구지역 고구려고분의 분포는 매장시기의 선후관계와 연관시킬수 있는데, 대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매장한 것으로 추정됨. 고구려의 무덤은 초기에는 적석묘가 대부분이고, 후기에는 봉토묘로 변화함. 적석묘는 우산 북면 산기슭에 많이 있고, 봉토묘는 통구분지 중부에 많이 있음. 오회분은 묘군의 최남단에 위치하는데, 북쪽으로 약 30m 떨어진 지점에 사신묘가 있고, 다시 북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지점에 통구12호묘가 있으며, 삼실묘가 4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음. 오회분 4호묘는 사신묘, 통구12호묘, 삼실묘보다 늦게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음. 오회분 4호묘의 구조는 엄밀하고 형태는 정연하며, 축조에 사용된 돌은 크고 정교함. 이 같은 특징은 고구려석조건축예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구려 후기의 묘장형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음. 오회분 4호묘의 말각고임 천정구조는 사신묘와 오회분 5호묘의 천정구조와 같음. 이러한 천정구조는 중원 북위시대의 石窟에서도 보이는 등 매우 보편적이었음. 벽화의 내용과 기법을 보면, 사신도 위주이고, 다듬은 돌 위에 직접 그렸으며, 색은 아름답고, 구도는 엄밀하며, 필법은 세련됨. 오회분 4호묘는 白堊土 벽에 그린 통구 12호묘와 사신묘 등 이른 시기의 벽화보다 진보한 점이 많음. 벽화에 보여지는 풍격은 남북조시기의 하남 鄧縣 彩色畵像磚墓에 그려진 풍격과 매우 유사한데, 오회분 4호묘의 천정 북면 제2중 정석 측면에 그려진 요고를 치는 기악천인의 자세·몸매·옷은 같은 모양이고, 심지어는 流雲도 같음. 거문고를 타는 기악천인이 쓴 연화관은 晋대이후에 시작됨. 통구고분군의 매장규율과 오회분 4호묘의 구조, 벽화의 내용·풍격·기법을 볼 때, 축조시기는 오회분 5호묘와 동일시기이고, 사신묘보다는 늦다고 추정됨. 북조시기에 해당하는 5세기 말~6세기초로 추정.
魏存成(1994년)은 고분구조가 방형의 단실로, 중원북조후기와 구조와 같음. 사신이 주체가 되는 등 벽화주제의 변화가 등장. 직접 돌에 벽화를 그림. 네벽 사신 아래 그려진 忍冬網紋은 寧夏 高原 북위 漆棺과 연원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 신의 몸단장은 남조와 유사. 고구려말기 불교, 유교, 도교가 혼합된 상황을 반영. 6세기~7세기 초로 추정.
方起東·劉萱堂(2002년)은 집안에서 발견된 벽화묘의 연대 및 분기와 관련하여, 4기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4기로 파악. 제4기는 구조가 방형단실인데, 중원북조후기의 묘제와 같음. 묘실은 가지런하게 다듬은 대형 석조로 축조함. 묘실 꼭대기부분은 매우 簡潔한 큰 跨度의 말각고임식임. 묘방향은 서향임. 벽화는 백회 위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다듬은 석벽 위에 직접 그렸음. 내용은 사신이 주체가 되어 네벽을 차지하고, 네 모서리와 천정에는 괴수, 盤龍, 일월신, 기악신선, 일월성진 등으로 가득 채웠음. 그 가운데 그려진 인물은 대부분 높은 관을 쓰고, 큰 신발을 신었으며, 소매가 큰 옷과 넓은 띠를 갖추고 있는데, 남조대 인물의 풍조가 나타남. 이 기에 해당하는 묘장에는 사신묘, 오회분 4호묘와 5호묘가 있음. 그 축조연대는 6세기~7세기 초로 추정됨.
孫仁杰·違勇 (2007년)은 오회분 4호묘는 묘실이 지하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7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

 

자연환경

 

통구평원 우산묘구 중부 남단에 위치. 집안 車站 북측에 위치한 오회분 가운데 1기 임. 중심지리좌표는 동경 126° 11′855″, 북위 41° 08′224″, 묘정상해발고도는 225m.
동쪽으로 약 44m 떨어진 지점에 오회분 5호묘가 있음. 서쪽으로 약 3m 떨어진 지점에 오회분 3호묘가 있음. 북쪽에는 약 30m 떨어진 지점에 사신묘가 있고, 다시 북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지점에 통구12호묘가 있음. 서북쪽에는 약 47m 떨어진 지점에 방단적석묘가 있음.

 

유물정보

 

金銅製 圓銅具 1점 외 金銅製 5점
鐵製 釘 3매
起臥 片 2점
棺木 잔편

 

참고문헌

 

· 池內宏, 『通溝』 上: 滿洲國通化省輯安縣高句麗遺蹟, 日滿文化協會, 1938
· 吉林省博物館, 「吉林集安五盔墳四號和五號墓清理略記」『考古』 1964-2, 1964
· 조선일보사, 『아! 고구려: 우리의 옛땅 그 현장 이야기』, 조선일보사출판국, 1994
· 李殿福, 「吉林集安五盔墳四號墓」『考古學報』 1984-1, 1984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4
· 한국방송공사, 『고구려 특별대전』, 한국방송공사, 1994
· 魏存成, 『高句麗考古』, 吉林大學出版社, 1994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사계절출판사, 2000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方起東·劉萱堂, 「集安下解放第31號高句麗壁畵墓」『北方文物』 2002-3, 2002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 吳廣孝, 『集安高句麗壁畵』, 山東畵報出版社, 2006
· 孫仁杰·違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張福有·孫仁傑·遲勇, 『高句麗王陵通考』, 香港亞洲出版社, 2007
· 耿鐵華, 『高句麗古墓壁畵硏究』, 吉林大學出版社, 2008
· 전호태, 「고구려 집안권 벽화고분의 현황과 과제」『蔚山史學』 14, 蔚山大學校史學會,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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