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우산하 0540호묘(禹山下 0540號墓)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409
  • 위치(출토지)吉林省 集安市 太王鄕 大碑村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계단식적석총
  • 형태사항가로: 35m 이상, 세로: 35m 이상, 높이: 4.8m 62점 광실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대비촌(吉林省 集安市 太王鄉 大碑村)

 

연대

 

5세기 전후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6길림성문물관리위원회,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물관소
(吉林省文物管理委員會,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管所)
통구고분군에 대한 조사 및 실측 시 발견되어 禹山下540號墓라고 편호하고, 간단히 JYM540으로 기록함.
1997길림성문물관리위원회,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관소
(吉林省文物管理委員會,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管所)
변 길이 39m, 높이 9m임을 실측함. 특대형 계단적석석실묘임을 확정함.
2003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9월 15일에서 11월 16일까지 진행됨.
王志剛, 王昭 (이상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郜炳坤(長白縣文物管理所)이 참여함.
집안시 고구려유적에 대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고하는 과정 중, 왕릉으로 추정함. 가장 먼저 묘의 표면과 가장자리를 중점으로 발굴함. 이후 묘도, 이실, 광실을 정리함. 묘의 축조방법, 이실과 광실구조, 葬具葬法 등을 이해함. 동시에 금동기, 동기, 철기, 도기 등 439점의 유물이 출토됨.

 

구조특징

 

우산하 540호묘는 촌락 가운데 있어서 보존정황에 매우 차이가 있음. 묘장 남부와 동북 모서리는 이미 민가가 점거함. 서북모서리는 도로가 통과하고 있음. 동·서·북측에는 생활쓰레기가 쌓여 있음.
묘장은 파괴가 심함. 발굴 전 묘 표면에는 석재가 선명하게 보였음. 묘 위에는 함몰갱 여러 개가 있었음. 묘 꼭대기 네 주변에 광실 네 벽석이 일정수량 있었음. 당시 촌민의 말에 의하면, 묘 표면에는 원래 형체가 거대한 석재가 있었다고 함. 1970년대 전후에 석재를 쪼개서, 다른 용도로 쓰고자 옮겼다고 함. 남아 있는 화강암은 장방형인데, 묘장 서측면에 2개가 남아 있고, 남측면 묘도 입구에 1개가 남아 있는데, 쪼개진 후에 옮겨진 계단석 잔편임.
대형계단적석묘임.
고분 규모는 1997년(2002년 보고서) 조사에서 변 길이 39m, 높이 9m로 보고되었다가 2009년 보고서에서 남북 너비 34.5m, 동서 길이 약 31.5m, 남아 있는 중심 높이 약 5.2m로 재보고됨.
묘장 네변 모두 파손되었고 평면은 불규칙형임. 동남·서남 轉角은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음. 동북·서북 轉角 모두 圓角임. 묘장 주변의 지층을 살펴보면, 表土層 아래는 황갈색 生土인데, 생토의 질은 단단하고, 비교적 많은 깬돌을 포함하고 있음. 묘장은 생토층 위에 직접 축조함. 지하 기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음. 묘장 계단석은 이미 결실됨. 묘 위의 표토층 아래에 내부의 묘장주체가 직접 노출됨. 해부한 정황을 보면, 우산하 540호묘 안에서 주체를 다져 메운 것은 황점토를 작은 강돌과 혼합하여 다져 쌓은 것으로, 비교적 견고함. 쌓여진 흙의 중상부에 비교적 커다란 돌이 일부 있음. 일부 석재는 꼭대기면이
그림. 우산하 540호묘 평·단면도(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2009 「集安禹山540號墓淸理報告」 『北方文物』2009-1)
지표 밖으로 노출되어 있음. 석재 대부분은 표면이 비교적 圓緩한 강돌이고, 일부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산돌이 있음. 이러한 유형의 석재는 큰 것은 1m, 작은 것은 0.4m보다 작지 않은데, 대부분 직경은 0.6~0.8m 임. 현재 남아 있는 석재배열은 비교적 규칙적인데, 대부분 원래 위치에 있고, 일부만이 약간 밖으로 무너졌거나 자리를 벗어남. 평면상을 보면, 이들 대형 석재는 대다수 배열분포하며, 동열의 상호 인접한 석재는 거리가 가깝고, 상호 인접한 각 열의 석재 간에는 비교적 고정된 거리와 비고가 있어 계단석 바닥부 또는 내부의 계단 기초석일 가능성이 있음. 인접한 열의 큰 돌 사이에는 부분적으로 작은 강돌로 층층이 쌓아 메웠는데 묘장의 안정성을 증강하기 위함임.
묘 표면에 계단석은 3개가 남아 있음. 장 네 측면 계단기석 정황은 차이가 있는데, 높이는 거의 같고, 계단기석은 모두 5층으로 나눌 수 있음. 밑에서 위로 1~3층의 층 사이의 거리는 약 2.5m이고, 3~5층의 층 사이의 거리는 2m이며, 층 사이의 높이 차이는 0.5m 정도임. 그 가운데 3·4·5층 계단기석은 묘장 네 측면 모두 남아 있어 신뢰도가 비교적 높음. 1·2층 계단기석은 묘장 서측과 북측에서 발견되는데, 계단기석의 수량은 비교적 적게 남아 있어 추측되는 계단 위치는 확실하게 보이지 않음. 3·4·5층 계단기석의 사이간 거리·높이차이 수치·규율적인 배열을 토대로 추측해 볼 때, 묘장은 현재 남아 있는 규모이고, 최소한 5층 계단이었을 것으로 보임.
그 밖에 서남모서리에서 앞서 추정한 1층 계단 밖에는 생토 위에 무덤 내부를 메운 흙과 동일한 황점토가 섞인 강돌층이 여전히 보이는데, 밀도는 무덤 내부의 분토층에는 미치지 못함. 이 층에는 대부분이 지표에 노출된 석재 하나가 남아 있어 바닥부는 이 층 내부의 대석에 위치함. 이 대석은 기타 계단기석의 규격과 재질이 같은데, 이로 볼 때, 원래 6층 계단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음. 다만 이 층의 위치가 지나치게 고립되고, 그 아래의 황토가 섞인 강돌층 면적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에 그 돌이 위치 이동이 있었는지에 대해 확정할 수 없음. 계단 기석의 수량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지만, 묘장 내부 塡土의 보존 범위와 묘장 서측에 인접한 북측면의 1층 계단기석의 밖에는 이미 묘장 塡土가 없음. 이로써 묘장의 1층 계단이라 할 수 없음.
광실은 4단 계단 위에 축조함. 전체적으로 묘 꼭대기로 돌출됨. 평면은 정방형에 가까운데, 상부는 이미 파괴됨. 정리 전 광실 안에는 대량의 黑土와 깬돌이 쌓여 있었음. 광실 바깥벽 동·서·북측의 남아 있는 높이는 1.5~1.7m이고, 남측의 남아 있는 높이는 1.3m 임. 광실 안팎으로 10여 개의 붕괴된 광실측벽에서 砌石이 나왔는데, 원래 높이는 1.7m보다 낮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됨.
광실 평면은 장방형임. 사용된 돌은 대부분 가공하지 않은 천연화강암으로, 규격은 같지 않은데, 큰 것은 길이 2.6m, 너비 1.5m, 두께 1m이고, 작은 것은 길이 약 0.4m, 높이 0.2m 임. 동·서·북 세 벽은 2층석재로 쌓아 축조하였으며, 남벽은 단층으로 축조하였고, 일부는 비교적 큰 강돌 혹은 작은 돌을 사용하여 평평하지 않을 곳을 보충하였으며, 돌의 틈 사이에는 강돌이 들어간 백회로 채웠는데, 광실 내벽에는 두께 5~10㎝의 백회면을 깔았음. 광실외벽은 자연석면이 노출되어 있음. 현재 보존은 비교적 차이가 있는데, 북벽의 外側 墻石은 밖으로 넘어 쏟아졌고, 안팎 墻石 사이의 틈은 0.5~0.8m에 달하는데, 안팎 墻石 사이는 黑褐土로 채웠음. 측벽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임. 동벽 外側 墻石 보존은 약간 양호한데, 外側 墻石은 비교적 크고, 남부 두 개의 외벽석의 두께는 1.5m이며, 내벽에 사용된 돌은 약간 작고, 광실측벽 두께는 약 2.5m임. 내외벽 砌石은 자연형태로 서로 맞물리고, 견고를 위해서 가지런하게 쌓았으며, 안팎의 장석 사이는 강돌이 들어간 백회로 채웠음.
동벽 내측 장석은 변 길이가 5.2m, 남은 높이는 1.1m 임. 1층의 장석이 남아 있음. 형태가 비교적 큰 3개의 돌로 축조하였는데, 가공을 하지 않아, 매우 정연하지 않고, 가장 작은 돌은 길이가 약 1m, 가장 큰 돌은 길이 2.6m, 너비 1.5m, 두께 1m 정도임. 장석은 간단하게 쌓아올렸는데, 돌 사이의 틈은 비교적 크고, 모두 백회가 들어간 강돌로 채워 평평하게 하였음.
서벽 내측 장석은 변 길이가 5.25m, 남은 높이는 1m 임. 남아 있는 돌은 2층임. 바닥층 墻石은 형태가 비교적 큰 3개의 화강암으로 축조하였고, 북쪽 끝에 남아 있는 한 개의 비교적 작은 틈은 작은 형태의 돌로 채웠음. 위층에는 돌 4개가 남아 있는데, 형태는 모두 정연하지 않고, 돌의 틈 사이는 작을 돌로 채웠음.
북벽 내측 墻石은 길이 5.4m 임. 사용된 석재는 비교적 작고, 남아 있는 최고 높이는 약 1.05m 임. 석재의 높이는 각각 다르고, 쌓음에 있어 규칙성이 없음. 현재 墻石 3층이 남아 있음. 바닥층의 채석형태는 비교적 큰데, 길이는 0.95m~1.3m이고, 높이와 두께는 같지 않음. 위층의 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운 작은 돌임. 작은 돌은 길이 0.4~0.7m 임.
광실 남벽의 길이는 약 5.4m임. 묘도로 인해 동서 두 부분으로 나눠짐. 묘도 동측의 남벽은 길이 약 1.9m, 두께 1.5m임. 현재 2층이 남아 있는데, 남은 높이는 1~1.3m임. 아랫돌은 길이 2.4m, 두께 1.5m, 높이 1m이고, 내외측과 묘도 한측 모두 정연하게 다듬었음. 위층은 서쪽 끝에서 돌 2개가 남아 있고, 돌 사이의 틈은 강돌이 들어간 백회로 메움. 묘도 서측의 남벽길이는 약 1.7m이고, 안측의 남아 있는 높이는 0.9m, 외측의 남아 있는 높이는 0.9~1.5m 임. 외측변은 정연한 큰 돌을 사용하였는데, 돌의 길이는 약 2.6m 임. 돌 아래는 백회와 작은 강돌을 평평하게 깔았음. 내측은 크기가 다른 돌과 비교적 큰 강돌로 쌓았는데, 사용한 돌의 길이는 0.25~1.05m임. 내측 最上의 1층에 석재가 3개 남아 있는데 장방형 강돌을 평평하게 잘라 내측 단변을 쌓았으며, 쌓은 측변의 돌 사이는 작은 강자갈이 들어간 백회로 메웠고, 아울러 백회로 내벽을 평평하게 발랐는데, 현재 표면의 백회는 대부분 박락되었고, 다만 석벽 바닥부에 남아있는 백회에서 백회벽 두께가 0.05~0.1m임을 볼 수 있음.
광실 바닥은 비교적 큰 돌을 깔았고, 그 위로 백회를 발랐음. 광실 네 주변이 있는 木槨유적에 대해 정리를 아직 하지 않아서, 바닥면의 깔아진 돌의 수는 알 수 없음. 이미 정리된 광실 중심에서는 깔린 바닥석 4개를 볼 수 있는데, 규격은 모두 2m 정도이고, 형태는 정연하지 않지만, 꼭대기 면은 약간 가공한 것으로 보이고, 대체로 평평함. 서로 만나는 곳은 석재 그 자체 표면이 경사가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십자형에 가까운 공간이 생기므로, 빈틈은 백회를 섞어 강돌로 메웠고, 그 위에 다시 백회를 평평하게 발랐음.
광실 안에 채우진 흙은 2층으로 나눌 수 있음. 위층에 채워진 흙은 흑갈색이고, 두께는 0.3m이며, 그 성질은 푸석푸석함. 식물뿌리줄기, 자기편, 철제 못, 동물 뼈 등이 포함되어 있음. 아래층에 채워진 흙은 홍갈색이고, 두께는 0.4m이며, 그 성질은 푸석푸석함. 흙 안에는 많은 홍색 木屑, 木炭碎屑, 백회조각이 포함되어 있었음.
묘도는 4단 계단 위에 축조되었는데, 광실남벽 정중앙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음. 너비는 1.6m, 길이는 5.1m 임. 방향은 남쪽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18°임. 묘도 북쪽 끝과 광실바닥면은 같은 높이이고, 약간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비탈이 드러나는데, 경사도는 약 2°임. 묘도 바닥면에 깔린 큰 돌은 꼭대기면이 비교적 평평하고 정연하며, 깔려진 돌 사이의 빈틈은 백회가 들어간 강돌로 메웠고, 돌 꼭대기면은 백회를 평평하게 발랐음. 묘도측벽에 쌓아진 돌은 광실남벽에 일부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결실되었고, 축조방식은 명확하지 않음. 묘도는 형태가 납작하고 얇은 돌로 막혀 있고, 사이의 틈은 강돌과 백회로 채웠음. 광실 남벽 내측에서 묘도 封石 4층을 볼 수 있는데, 남아 있는 높이는 0.75m 임.
이실은 묘도 양측에 위치함. 평면은 장방형이고, 크기는 서로 같은데, 동서 길이는 1.8m, 남북 너비는 1.1m 임. 북벽을 제외하고, 기타 양측벽 모두 이미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음. 북벽은 광실남벽의 외벽을 이용하였고, 표면에는 비교적 두꺼운 백회층을 발랐는데, 현재는 대부분 박락됨. 이실 地面은 비교적 평평하고 정연한 돌을 깔았고, 강돌이 들어간 백회로 메웠으며, 꼭대기면은 백회를 평평하게 발랐음. 이실 바닥면은 묘도 바닥면과 같은 높이임. 파괴가 심한 서쪽 이실 바닥면에서 이실 바닥에 깔려진 돌과 묘도 바닥면에 깔려진 돌이 함께 共用된 동일한 돌이었음을 볼 수 있음. 이실 지면 위에는 白灰帶가 둘러져 있는데, 白灰帶의 두께는 5~10㎝ 임. 동쪽이실 동북모서리에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남아 있는 높이는 약 5㎝로, 이에 근거하여 이실이 북벽과 묘도 한쪽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양면은 본래 석벽으로 쌓은 것을 알 수 있음. 서쪽 이실 동측묘도 封石 바닥부에 높이 2㎝가 남아 있는데 이실 측벽 백회층의 백회 흔적과 유사함. 이 밖에 묘도 바닥면 위에서 묘도 봉석과 동쪽이실 북벽 아래층 축조석의 서측 면 사이에 목판 한토막이 끼여 있음. 목판은 양자의 사이에 옆으로 세워져 놓여 있는데 높이는 약 20㎝, 두께는 약 3.5㎝ 임. 동쪽 이실은 묘도 봉석의 한쪽과 마주하는데, 묘도 봉석에 바싹 붙어서 묘도와 동일 너비의 나무흔적이 발견됨. 많이 썩어서 홍색 흔적만이 남아 있는데, 남은 너비는 약 5㎝임. 묘도 봉석과 동쪽 이실 북벽 아래층 축조석 서측면 사이에 끼여 있는 목판과 동일한 목판일 것으로 추정. 이상의 현상을 추측해 볼 때, 묘실은 묘도의 한쪽에 목질의 폐쇄 문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이실 안에는 주로 백회가 표면에 가득 붙어 있는 강돌·돌·백회잔편들이 퇴적되어 있고, 淤積土는 거의 보이지 않음. 또한 썩은 나무와 목탄은 발견되지 않음. 동쪽 이실에서 출토된 부장품은 비교적 많은데, 부장품은 주로 금동제 車馬具이고, 원래 위치를 잃어버렸음. 대다수 유물은 표면에 백회가 붙어 있고, 일부는 심지어 백회에 완전히 싸여 있음.
광실 아래층에는 棕紅色의 썩은 나무와 검정색 炭屑이 쌓여 있음. 묘실바닥에 점차 가까워질 때마다 썩은 나무와 炭屑은 점차 많아지며, 塡土가 광실 바닥에서 약 0.4m에 이르는 지점까지 정리하면 광실 네 벽 아래에서 너비 약 0.5m 정도의 木炭흔적이 발견됨. 그 안에는 소량의 백회잔편이 들어가 있음. 목탄과 광실 네 벽 사이에 한 줄 너비가 5~10㎝의 순수한 백회가 들어가 있는데, 백회의 성질은 푸석푸석하고, 대부분 조각 상태임. 위층의 두께는 0.05~0.2m로 재질은 푸석푸석하고, 목탄 정리 후 바닥부 목탄의 재질은 비교적 단단하고 순정함. 광실서벽 남부를 해부하여 순정한 목탄아래 백회가 섞인 목탄을 발견함. 다만 가장 낮은 층에는 두께 3~5㎝의 순정한 목탄이 있음. 광실 네 벽 가운데부분을 해부해 보았을 때, 두께 0.3~0.35m의 순수한 목탄층이 발견되었는데, 순수한 목탄층의 너비는 0.5m 정도임.
광실바닥부에서 목탄유적을 제외하고, 광실남부 묘도 양측 여러 지점에서 썩은 나무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썩은 나무의 성질은 매우 부드럽고, 원래 형태는 판별하기 어려움. 광실 동남모서리에 비교적 큰 썩은 나무흔적이 있는데, 두 개의 썩은 나무가 모서리에서 서로 교차하여 직각을 형성하고, 이 두 개의 썩은 나무의 결 역시 직각이 서로 교차하는 형상으로 광실내벽 사이와의 거리는 0.2~0.3m이고, 너비는 모두 약 0.5m 정도임. 동측벽의 썩은 나무는 서부가 직접 광실 바닥면 위에 겹겹이 누르며 쌓았는데 길이는 약 0.8m 이며, 동측벽 동부는 광실동벽 아래 목탄층 위에 겹겹이 누르며 쌓았는데 두께는 약 0.05m 임. 남벽의 썩은 나무는 두께는 비교적 두꺼운 0.1m이고, 길이는 약 1m에 가까움. 서쪽 끝에 대한 해부 결과, 썩은 나무가 목탄의 백회층 위를 누르고 있음이 발견됨. 남벽 중앙에 열려진 묘도와 묘도입구 서측에는 각각 한 개의 썩은 나무가 있는데, 광실 바닥면 위에 달라붙어 있으며, 형태는 모두 불규칙함. 서측벽 가운데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진 지점의 木炭帶 바깥에 작은 썩은 나무가 남아 있는데, 길이는 약 30㎝이고, 목문방향은 남북으로 향함.
광실에 쌓여진 흙 안에서 출토된 비교적 많은 꺽쇠는 木槨을 연결하고 고정하기 위한 것이고, 규칙적으로 광실 네 벽 아래에 분포하는 대량의 목탄은 목곽이 불에 태워진 후에 남은 자취임. 광실내벽에는 백회를 발랐고, 그 안에 직접 木槨을 설치하였는데 목곽의 규격은 약 5㎡임. 광실 중, 남부의 바닥면 위에 달라붙은 썩은 나무가 목관의 잔흔일 가능성이 높음. 묘는 일찍이 도굴을 당하였기 때문에, 관못의 원래 위치는 알 수 없고, 나무흔적이 남아 있는데, 광실 안의 관의 수량을 확정하기 어려움.
광실, 이실, 묘장 표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439점의 유물이 출토됨. 그 가운데 광실에서 가장 많은 386점이 출토됨. 동쪽 이실에서는 50점, 묘 위 쌓여진 흙 중에서 3점의 유물이 출토됨. 묘도와 서쪽 이실에서는 단지 소량의 니질회색 도편만이 출토됨. 동쪽 이실에서 출토된 50점 가운데, 철제 鏨子 1점과 동제 방울 2점을 제외하고. 모두 금동제 車馬具임.

 

역사적 의미

 

우산하 540호묘에서 출토된 부장품은 상당히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고, 동물뼈는 심하게 부서져 있어, 명확하게 도굴을 당하였음을 알 수 있음. 광실 안에서 출토된 鐵鑿은 투박하고 두꺼운데, 그 형태가 고구려묘장과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과 완전하게 다름. 이로 보아 부장품이 아니고, 후기에 혼입된 유물로 추정되는데, 혹 도굴자들이 사용한 도굴공구로, 묘도 봉석 혹은 목곽을 열고자 하였을 때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음. 광실 바닥면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묘가 도굴된 연대가 비교적 이른 것으로 추정됨. 광실 내의 사이호 잔편은 광실바닥에서 40㎝ 떨어진 쌓여진 흙에서 출토되었고, 동물뼈 또한 대부분 광실 상층의 쌓여진 흙에서 출토되었는데, 묘 꼭대기가 붕괴된 후, 2차 도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임. 광실 내에서 출토된 동물뼈들은 야생동물이 절대 다수로, 물고기·조개·새·포유동물 등 그 종류가 다양한데, 부장품임. 이 외에 광실 안에는 철촉, 망추 등 漁獵공구가 출토되었음. 이로 미루어 볼 때, 묘주인은 생전에 漁獵을 좋아하였던 것으로 추정.
이전에 정리된 고구려 적석묘 가운데, 묘장 내부에 土石이 섞어진 적석묘는 매우 적게 보임. 우산하 540호묘 내부에 黃黏土와 강돌이 혼합되어 쌓여 있고, 특히 黃黏土가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묘 구조는 아직까지 없음. 이러한 구축방식은 묘장의 견고성을 더하기 위한 것임. 비록 묘장의 地下에 기초를 구축하지 않았고, 계단석 또한 결실 혹은 원래 자리를 이탈하였으나, 묘장은 지금까지 매우 견고성을 유지함. 우산하 540호묘의 정리는 고구려묘장 축조방식과 축조에 대한 진일보한 탐구 및 고구려 적석묘에서 봉토묘의 변화에 있어 중요한 연구 가치를 지님.
우산하 540호묘에 남아 있는 2개의 계단석표면에 가공한 흔적이 없고, 바깥가장자리에 위층 계단석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돌기 또한 보이지 않는데, 그 계단석 형태는 태왕릉과 장군총보다 원시적이고, 천추묘에 보다 가까움. 우산하 540호묘의 묘실은 壙室임. 태왕릉과 장군총의 묘실은 석실이고, 천추묘는 비록 묘실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묘 꼭대기에 蓋石 혹은 門楣로 추정되는 거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석실로 추정됨. 이로 볼 때, 우산하 540호묘의 연대는 천추묘보다 이르다고 추정됨. 광실 안에서 출토된 2점의 사이호의 경우, 기체가 작고 둥글며, 최대직경이 기체 중상부임. 전체적으로 나팔형 주둥이가 비교적 낮은 것을 제외하고 형태는 마선구 1호묘에서 출토된 사이시유도기호와 비슷함. 다만 니질의 회색도기인데, 그 연대는 마선구 1호묘에서 출토된 사이시유도기호보다 늦지 않는다고 추정됨. 마선구 1호묘의 연대가 5세기 전후로 추정되는 바, 우산하 540호묘의 연대도 대체로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됨.
우산하 540호묘는 남아 있는 변길이가 34.5m로, 규모가 비교적 큰데, 통구고분군에서 우산하 540호묘보다 큰 묘장은 불과 10여기에 불과함. 우산하 540호묘의 광실은 변 길이가 5m 정도인데, 그 광실규모는 고구려 적석묘 중에서 많이 볼 수 없음. 이로 볼 때, 우산하 540호묘의 묘주 신분은 비교적 높다고 여겨짐. 출토된 부장품을 보면, 비록 도굴을 당했어도, 아직도 적지 않은 부장품이 출토되고 있음. 그 가운데 동쪽 이실에서 많은 금동 車馬具가 출토되었고, 광실 안에서도 비교적 많은 금동편들이 출토되었으며, 시유도기와 자기들도 출토되었는데, 이를 보아도 묘주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우산하 540호묘 주변지세를 보면 비교적 개활하고, 태왕릉을 제외하고 대형 묘장을 볼 수 없음. 묘 위에 사용된 기와는 등급과 규격이 왕릉에서 출토된 기와와 부합함. 위의 분석을 토대로 유추해 볼 때, 묘주는 고구려 18대왕인 고국양왕으로 추정됨. 다만 광실형태를 보았을 때, 그 연대를 천추묘보다 약간 이르다고 할 수 있으므로, 만약 묘가 왕릉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묘주인은 제17대왕인 소수림왕으로 볼 가능성도 일부 있음. 이 외에 묘장 동북 양측면에 쌓여진 흙에서 매우 작은 포문 기와편이 2개가 발견되면서, 묘 위에서 기와를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려운데, 이러한 점은 기타 고구려 왕릉과 같지 않은 것임.
고구려 적석석광묘 혹은 광실묘에서는 모두 火葬이 있었는데, 이러한 묘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熔石과 燒骨이 출토됨. 우산하 540호묘 정리과정에서 비록 목탄과 燒骨이 출토되었지만, 火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 그 이유는 첫 번째, 묘장 광실과 쌓여진 흙 중에서 대량의 목탄이 발견되었지만, 같은 모양으로 비교적 많은 썩은 나무가 발견되었음. 이로 볼 때, 광실 내에 木槨燃燒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므로, 광실 안의 많은 목탄을 근거로 묘장에 화장이 있었다고 설명할 수 없음. 목곽을 건조하는데 대량의 목재가 사용되었는데, 후천적인 자연현상으로 연소하였을 가능성과 도굴자가 불을 내었을 가능성이 있음. 두 번째는 광실 중에서 출토된 많은 동물뼈 가운데, 불에 탄 흔적은 1/4만 보이고 있음. 세 번째, 광실과 이실에서 출토된 사이도기호 편 가운데 적은 부분의 외표면에만 불에 탄 흔적이 있는데, 복원을 해보니, 호 외표면에 불에 탄 흔적이 연접되지 않음. 이로 볼 때 도기표면에 불에 탄 흔적은 기물이 파괴된 후에 형성된 것임. 더욱이 동일기물의 도편이 이실·광실·묘도에서 발견되었는데, 명확하게 도굴자의 도굴과 흐트러트림에 의한 것임. 그러므로 목곽이 불태워진 것은 묘의 도굴 후에 일어났던 일일 가능성이 높음. 목곽연소는 불충분하고, 불에 탄 뼈의 비율도 낮으며, 호 외표면에 불에 탄 흔적이 연접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산하 540호묘에서는 火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음. 즉 5세기 전후한 시기, 고구려적석묘의 葬俗葬法에 중대변화가 있었음. 장속의 이러한 변화는 고구려 적석묘 가운데 광실에서 묘실로 변화하는 모습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우산하 고분군 동남부에 위치. 집안시 동쪽 4㎞ 太王鄕 大碑村에 위치하여, 태왕릉과 동일한 언덕 위에 위치. 자연지세는 태왕릉보다 낮음.
중심지리좌표는 동경 126˚ 12’ 709”, 북위 41˚ 08’ 686”, 해발 253m임.
촌락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음. 묘 동쪽으로 通集도로를 넘어서 임강묘가 있음. 북쪽으로 장군총이 보임. 서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지점에 태왕릉이 있음. 동쪽으로 150m 떨어진 지점에 광개토태왕릉비가 있음.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각저묘와 무용묘가 있음.

 

유물정보

 

철제 鏨 1점, 목흔 1점, 금동기 110점, 철기 37점, 동기 1점, 자기1점, 도기 285점, 시유도기 1점, 수키와 잔편 2점

 

참고문헌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張福有·孫仁杰·遲勇, 「高句麗王陵通考要報」『東北史地』 2007-4, 2007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王志剛·宋明雷·郝海波·馬洪·王昭·趙欣·林世香·蘇作威, 「集安禹山540號墓清理報告」『北方文物』 2009-1, 2009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