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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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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장(陵墻)

 
  • 구분유구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F000209
  • 위치(출토지)集安 太王陵(禹山下JYM0541號墓)(집안 태왕릉(우산하JYM0541호묘))
  • 형태사항서단의 담장 기초 길이 19m, 너비 0.95~1m, 折墻의 길이 3.6m, 너비 0.9m 정도│동단 담장 기초는 길이는 약 10m, 너비 0.9~1m, 折墻 길이 4m, 너비 0.8~0.9m 
 

유적명

 

태왕릉(太王陵)
 

구조특징

 

능원의 담장 유적은 고분 남측 100의 SG15호 탐색 구덩이 안에서 발견, 남측으로 집안에서 조선 만포 철로의 북측 방면을 접함. 담장벽은 산자갈에 황토가 더해져 축조되었고 소량의 장방형 강자갈 밖에 없음. 지금 담장벽은 존재하지 않으며 바닥부의 잔흔만이 보임. 잔흔은 동서 양쪽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ㄱ”자형으로 중간에는 7m 가량의 간격이 있음. 간격은 남쪽으로 양단의 길이가 서로 같은 담장임(그림 20).
서단의 담장 기초는 길이 19m, 너비 0.95~1m이며 단층의 축조 돌만이 남아 있는데 대체로 3줄로 배열된 상태임. 折墻의 길이 3.6m, 너비 0.9m 정도이며, 모퉁이 지점의 돌은 비교적 밀집되어 있음. 동단 담장 기초는 길이는 약 10m, 너비 0.9~1m이며 석재는 1층만 남아 있는데 2줄로 배열되었고, 중심지점은 비교적 많이 결실됨.
折墻 길이 4m, 너비 0.8~0.9m이며, 부분적으로 2층의 축조석이 보이며, 이 담장 서측에는 비교적 많은 담장 돌과 기와가 흩어져 있음. 양 모퉁이의 꺾어진 담 사이는 7.2m 떨어져 있으며 중간에는 작은 강돌이 깔려 있는데 자갈층은 약 5㎝이며, 남쪽으로 철로변 도랑의 단애까지 이어짐. 실측에 의하면 이 담장 양단의 방위각은 모두 80°이며 전체는 東偏北향이며, 묘도방향과는 거의 5° 차이가 나며, 대체로 남측 계단과 동일방향임. 현상분석에 의하면 동서향의 양단 남아있는 담장은 태왕릉 능원의 남측 담장이어야 하며, 그 위치는 묘 남면 제3․4 보호석의 사이와 딱 마주 향하고 있음. 양단 折墻의 간격은 능원 남측의 내외 통로이며, 도로상에는 자갈이 깔려 있으며 능원 내부의 난석과 연결되어 있음. 그 외 양단 남쪽 折墻은 길이가 같고 동측 담장 밖에서는 기와를 발견하여 당시 기와를 받치고 있던 門樓와 門闕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됨.(그림 20)
능원 담장 방향을 따라 SG15의 동서 양단에서 SG16~SG19 등 총 4개의 탐색 구덩이를 파냄. 그 가운데 SG16 구덩이에서 산돌로 쌓은 1단의 담장 기초를 발견. 담장 벽체가 붕괴된 석재의 분포범위는 비교적 SG15에서 큰 것들이 얻어지고, 동쪽으로는 철로변 도랑의 단애까지 흩어져있음. 모퉁이 지점에서 추측해보면, 남문의 동쪽에서는 능원 담장의 총길이가 약 32m가 현존함. 서측 SG17과 SG18 등 두개의 탐색 구덩이 동부에서는 모두 가장자리 부분이 온전한 광범위의 강자갈을 발견하였는데 남문 서단의 담장과 일직선을 띠고 있어 담장은 남문의 서쪽에서 적어도 50m까지 펼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담장 벽과 기초는 모두 이미 존재하지 않음.
태왕릉의 능원 담장은 일찍이 1940년대 발견되었는데 일본학자 藤田亮策은 일찍이 간단한 실측을 하였음. 당시 능원의 평면은 사다리꼴이었음. 이번 남측 능장의 발굴과 동시에 동측 담장의 탐사가 이루어졌는데 동측 담장은 고분 동쪽 150m 정도의 단애변에 위치하며 1950년대 일찍이 부분적으로 담이 남아 있었으나 후대에 마을이 확대될 때 이곳에 도로가 만들어졌음. 이 담장의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 지점을 가리키는 바에 따라 東 담장의 원래 터에서 도로를 따라 EG21~EG25 등 5개의 탐색 구덩이를 넣었으나 자취를 찾을 수 없음.
서․북 양측의 담장은 지형의 변동이 비교적 커서 이미 원래 토층은 없어 탐사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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