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우산하 임강묘(禹山下 臨江墓)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377
  • 위치(출토지)吉林省 集安市 太王鎭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계단식적석총
  • 형태사항가로: 약 71m, 세로: 약 76m, 높이: 약 10m 44점 광실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 태왕진 (吉林省 集安市 太王鎮)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37 池內宏, 黑田源次, 梅原末治, 三上次男이 참여하여 집안의 도성 및 중요한 고분들을 조사함.
1966 통구고분군의 실측조사 때 우산묘구 43호묘로 편호되었고, 간단히 JYM0043으로 기재됨.
1983 1983년 『吉林省志·文物志』를 편찬할 때 조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集安縣文物志』에 기록함.
2003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4~6월에 걸쳐 柳嵐(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吳鐵軍(農安懸文物管理所), 邵春華(吉林省博物館), 聶勇, 王志剛(이상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이 참여하여, 9개의 탐색갱을 넣어 무덤 주위를 조사함. 분구의 부분 단면 조사를 진행하였고, 무덤 동쪽의 제대 유적을 정리하였으며, 무덤 조사 과정 중에 50여기의 金器, 銅器, 鐵器, 陶器, 瓦片 등을 출토함.
1909-1910 關野貞, 谷井濟一, 栗山俊一이 조사함.
2004-2005 장복유, 손인걸, 지용이 조사함.

 

구조특징

 

20세기 초에는 묘가 압록강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임강묘로 불리었으나 1966년 조사에서 우산묘구 43호묘(JYM0043)으로 편호됨.
대형계단적석광실묘로 주변에 깨진 돌이 흩어져 내림. 외형은 圓角方丘형태로 표면에는 두께 약 10㎝의 腐植土가 덮혀 있음. 일찍이 도굴을 당해 방치된 돌이 무덤의 서중부 바깥으로 6여m 쌓여 있음. 기본적으로 가공된 큰 장대석은 없고, 규칙적인 무덤 기초석도 발견되지 않음. 무덤 정상부는 비교적 평평하고, 형태는 대체적으로 길이 20m, 너비 18m의 장방형임. 중간에 있는 큰 구덩이는 길이 17m, 너비 10m, 깊이 2m이고, 기본적으로 묘 정상부 전체에 해당됨. 동남부에는 근대에 건설된 전쟁설비인 엄폐호가 아직 있고, 묘실은 이미 파괴됨.
무덤의 각 변과 계단은 모두 비교적 큰 산자갈로 축조하였고, 석재는 대부분 가공하지 않아 깨진 면을 보유하고 있고, 불규칙적으로 쌓음.
무덤의 범위를 정한 후, 비교적 큰 산돌을 이용하여 단을 축조하고, 단 내부를 약간 작은 깨진 돌로 채워 평평하게 함. 그 위에 안쪽으로 0.4~0.66m 들어가서 2번째 계단을 축조함. 계단의 가장자리의 석재는 일반적으로 길이가 0.5~0.9m, 너비 0.2~0.4m 사이이며, 두께는 0.30.35m이고, 내부를 채운 돌은 길이·너비·두께는 약 0.2m임.
제2단 계단은 2~4층으로 되어 있고, 그 높이는 0.3~0.4m임. 평평한 큰 산돌을 이용해서 둘레를 쌓고 작은 산돌로 안을 채우는 방법으로 축조하였으며, 축조 시 산돌의 자연면을 이용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면이 가지런하도록 함. 계단 외측에 깨진 산돌과 작은 강자갈을 평평하게 깔았고, 그 후에 다시 안쪽으로 일정한 거리만큼 들어가 제 3단 계단을 축조함. 이러한 형태로 차례대로 위쪽으로 분구 위까지 쌓았고, 마지막으로 분구 위에 광실을 축조함.
산의 지세가 같지 않아서 무덤의 4면에 축조된 계단 수는 같지 않음. 동남모서리와 서남모서리는 21~23층으로 판단되고, 지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북면은 30~33층으로 추정됨. 즉 4면의 계단 높이와 너비가 같지 않고, 방향 또한 서로 같지 않으며, 어떤 것은 굽은 정도가 비교적 커서 계단이 갈라지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보임.
서북모서리부분의 계단 폭 차가 비교적 크고, 가운데 부분은 비교적 폭이 좁아서 계단 사이의 거리는 0.25~0.3m인데, 상부의 어떤 것은 간격이 0.6m에 달하기도 함.
33층 계단 중, 상부 8층 계단 축조는 상대적으로 정연하고, 계단은 기본적으로 평행하며, 사이 거리는 0.4~0.6m임. 이웃한 계단의 높이는 약 0.35m이고, 모퉁이는 둥그렇게 굽어져 있음. 가운데 10층 계단은 대부분 만곡이 크고, 그 사이의 거리와 너비는 같지 않으며, 높이 차는 0.5m이고, 안으로 들어간 폭은 균등함. 표면의 축조 또한 평평하고 정연함. 서쪽 면은 갈라짐이 비교적 많고, 계단의 높이는 비교적 크며, 모퉁이는 둔각이 나타남.
구덩이 내외 모두 정연한 장대석 혹은 가공된 큰 판석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묘실은 구조가 간단하고 천정석이 없는 광실로 추측됨.
묘 정상에는 대량의 수키와, 암키와, 소량의 등성마루기와(脊瓦) 잔편이 흩어져 있고, 봉석 위에도 비교적 많은 기와 잔편 등이 발견되는 등 정상부에 상대적으로 집중되어 있음. 전체 수키와잔편은 2000여편이고, 암키와잔편은 3000여편이며, 등성마루기와는 26편임. 모두 니질. 색깔에는 갈색과 회색이 있음.
갈색기와는 수량이 비교적 적고, 火候(불의 세기와 시간)가 비교적 낮음. 형태는 두껍고 무거움. 암키와는 형체가 대부분 두껍고 무거움. 대부분 수직방향으로 승문이 펼쳐져 있음. 승문은 비교적 굵음. 최대잔편의 너비는 36㎝, 두께는 2.5~4㎝이다. 수키와는 6건이 출토됨. 목(頸)과 어깨(肩)가 없음. 내려다보면 梯形으로 만들어졌음. 瓦身은 비교적 높게 융기. 수키와와 등성마루기와에는 문양이 없음.
회색기와는 수량이 가장 많고, 火候가 비교적 높음. 형태는 비교적 가볍고 얇으나 단단함. 기와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1.5~2㎝사이임. 암키와와 수키와가 발견되고 등성마루기와는 아직 발견되지 않음. 암키와에는 모두 굵은 승문이 있음. 대부분 곧은(똑바로 향해 있는) 4~5줄의 凹溝文이 있는데, 배면에 균등하게 분포, 溝의 너비는 1㎝, 깊이 0.3㎝, 溝文 간의 거리는 10~15㎝임. 두 건의 단부(瓦頭)에서는 방격문이 찍혀 있음. 수키와에는 무늬가 없음. 瓦胎의 두께는 같지 않음. 단부(瓦頭)에는 대부분 어깨(肩)가 起하고 舌이 있음(瓦斗多起肩有舌). 瓦尾 중 일부에서는 기울어진 淺槽가 새겨져 있고, 肩과 舌에 따라 A, B, C형으로 나눌 수 있음. A형기와는 瓦肩이 비교적 평평하고 瓦舌의 길이가 같지 않으며 표면에 壓抹된 凹槽가 있음.
B형은 와견이 돌기되어 있고, 와설의 길이가 같지 않으며, 단부(瓦頭) 沿面 일부에서는 抹出된 1道의 凹槽가 있음. C형은 와신의 돌기가 높지 않고, 舌面은 비교적 평평하며, 沿面은 둥글고 미끄러움.
상관유적으로 제대가 있음. 探溝와 제대에서 출토된 유물은 단지, 陶餠, 철촉, 철정, 鐵鋦釘 등 생활용품이 주됨.

 

역사적 의미

 

임강묘의 규모는 길이와 너비가 모두 70여m의 비교적 큰 고분으로 강과 인접한 산 정상에 홀로 자리 잡고 있고, 탁월한 풍모가 드러남. 묘위에는 기와를 사용하였고, 제대가 있음. 제사에는 금기와 車具가 있는데, 그 신분 지위에 대한 존경이 보이므로, 임강묘는 고구려 왕릉임.
임강묘의 축조연대 문제를 보면, 임강묘의 계단은 낮고, 구조는 단출하며, 석재는 모두 산돌로 기본적으로 가공된 장대석이나 괴석은 보이지 않고, 비교적 원시적인 계단의 특징을 보여줌. 고구려 초기의 階墻積石墓에서 이러한 축조방법이 비교적 많이 채용됨. 계장의 축조로 무덤을 더욱 높게 쌓을 수 있는데 임강묘도 이와 같은 것으로 생각됨. 계단을 축조한 주요 목적은 자갈을 충분한 높이로 쌓기 위한 것임. 자갈은 신축성, 임의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弧曲, 分支, 合幷 모두 가능하므로, 높이 쌓고,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의 돌도 될 수 있으면 평평하게 배열해야 함. 때문에 외관은 한층 한층 위로 향한 계단 모양이 됨. 임강묘는 계장에서 계단으로 발전하는 과도기의 모습을 보여줌. 따라서 고구려 계단적석무덤 중 연대가 비교적 이름. 기와와 등성마루기와는 모두 묘 정상에서 보이는데, 무덤의 경사를 따라 쌓아 놓은 수키와와 암키와들은 원래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므로 기와는 봉석 뒷면에 깔려졌던 것으로 추정됨. 등성마루기와는 맨 꼭대기에 쌓여 있는데, 상징성 묘상건물에 속함. 황갈색기와와 등성마루기와는 임강묘의 최초 건축에 사용된 와당이라고 할 수 있음. 회색와당의 소성온도는 높고, 수량은 많은데, 보통 전자의 제조시점보다 늦고, 사용부분 또한 다름. 묘에서 출토된 승문기와는 고구려기와의 초기 형태로 후대에 일반적으로 유행했던 高肩·花沿기와와 같지 않음. 묘의 승문암키와와 수키와는 대부분 세로로 향한 溝文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은 기타 왕릉에서 보이는 것과 다름. 회백색의 단지와 가는 모래 혼입된 회색 陶甁은 모두 초기 유물에 속하는 것임. 묘 동쪽에 있는 제단은 사각형이며 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거의 같은 크기임. 그것은 고구려 왕릉에서 확인되는 주 특징 중 하나임. 제단에서 출토된 청동제 수레바퀴 비녀장식(車轄), 金圈, 가락바퀴, 도기 뚜껑, 短頸단지, 두 귀 달린 단지(雙耳罐), 마노구슬, 石管, 동제 팔찌, 금동제 장식편, 마구 등은 응당 제사에 쓰이는 물품임. 이상의 분석 결과 임강묘는 고구려 초기 왕릉이고, 연대의 하한은 3세기 말을 넘지 않음. 장복유, 손인걸, 지용 등은 龍山을 고구려 10대왕인 산상왕이 묻힌 ‘山上’으로 추정하면서 임강묘의 피장자를 산상왕으로 추정함.

 

자연환경

 

집안시 동쪽 끝에 위치함. 중심지리좌표는 126˚ 13’ 4.65”, 북위 41˚ 8’ 39.4”임. 용산 서남쪽 기슭의 작은 산 위에 위치하는데, 거의 산정상부 전체를 독차지하고 있음. 무덤이 위치한 곳은 청동기시대 유적지로, 일찍이 砂陶片과 磨製石器가 발견되었고, 2003년에 묘 동쪽에서 주거지를 조사했음.
묘 서측 산비탈 중부에 고구려시기의 소형적석묘가 여러 기 있음. 서쪽으로 약 4㎞ 떨어진 지점에 市가 있고, 광개토왕비와 460m 떨어져 있고, 태왕릉은 900m 떨어져 있음. 남쪽으로 약 800m 거리에 압록강이 흐르고, 북측의 산 아래는 太王鎭 果樹村 九組임. 동쪽으로는 구릉이 계속되고, 남쪽은 斷崖이며, 산기슭 아래로는 집안에서 靑石에 이르는 도로와 조선 만포시와 통하는 中朝철로가 있음.

 

유물정보

 

金圈 1점, 금동제 鏤花片장식 1점, 청동제 수레바퀴 비녀장 1점, 청동제 대롱모양 장식(管) 1점, 청동제 팔찌(鐲) 1점, 철촉 1점, 철제 꺾쇠 1점, 철제 못 1점, 철제 칼 1점, 철제 錐 1점, 철제 허리띠고리 7점, 철제 재갈 1점, 철제 편자 1점, 철제 꺽쇠 1점, 瑪瑙구슬 38매, 호 1점, 단지 1점, 병 1점, 배부른 단지(陶罐) 2점, 토기 뚜껑 1점, 가락바퀴 1점, 수키와 2000여편, 암키와 3000여편, 등성마루기와 26편,

 

참고문헌

 

· 傅佳欣,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2004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張福有·孫仁杰·遲勇, 「高句麗王陵通考要報」『東北史地』 2007-4, 2007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