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ku.d_0001_0040_0030_162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우산하 황니강대묘(禹山下 黃泥崗大墓)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370
  • 위치(출토지)吉林省 集安市 太王鎭 果樹村 9組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계단식적석총
  • 형태사항높이: 1.4m 4점 석실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 9조 (吉林省 集安市 太王鎮 果樹村 9組)

 

연대

 

5세기 중엽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6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管所)
통구고묘군 실측조사 당시에 JYM0030호묘로 편호함.
1980길림성문물고고학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學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1966년 조사 이후에 해당 고분 북측의 작은 길에서 기와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1980년대 고구려 왕릉 중점조사 대상에 포함됨.
‘黃泥崗大墓’로 명명됨.
2003길림성문물고고학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學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해당 고분의 상세한 조사와 함께 주변에 대해 간단히 밑바닥을 훑는 시굴조사(淸淤試掘)를 실시함.
2005집안시박물관
(集安市博物館)
재조사 및 측량을 실시하고 고분 주변의 지대를 넓힘.

 

구조특징

 

고분 편호의 변천을 보면, 『集安高句麗墓葬』(2007)에서는 1966년 조사 당시 JYM0030호묘로 편호하였으나 2005년 재조사 때에 JYM0036호묘로 다시 편호한 것으로 소개됨.
『洞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2002)에서는 JYM0030호묘는 대형계단석실묘, JYM0036호묘는 동실묘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997년 조사 때에 황니강대묘는 JYM0030호묘로 편호되어 있었다고 판단됨.
『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2009)에서는 1966년 조사 때에는 심하게 훼손되어 기록되지 않았으며, 2005년 재조사 때에 우산하고분군에 편입되어JYM0030으로 편호되었다가 정리된 것으로 소개됨.
고분은 대부분의 석재가 없어져서 남·동·서 3면은 제1단 계단의 바닥층 부분의 석재(石條)만, 북변은 한 개의 석재(石條)만이 남아있음. 다량의 석재 전체에 금속 쐐기 흔적이 남아 있음. 계단 내부에는 서·북 대부분은 이미 경작지로 간척되어 고분 안을 메운 돌은 동쪽부분에만 너비 2-4m의 한 줄이 남아 있는데 잔존높이 1.4m임. 일찍 파괴된 주요 원인은 고분에 바로 인접한 土口-靑錫 간의 도로 때문임. 이 도로는 이전 세기 초에 개설되어 1984년에 이르기까지 줄곧 집안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음.
고분은 특대형계단적석석광묘(1997-JYM0030)에서 방형계단석실묘(2007년)로, 다시 계단적석묘(2009년)로 유형이 재보고되었음.
평면형태는 방형임. 고분의 규모는 1997년(JYM0030)에 길이 32m, 너비 26m, 높이 2m로 보고되었다가 2007년에 남쪽 잔존길이 30m, 동쪽 잔존길이는 27m, 서쪽 잔존길이 25m, 잔존높이 1.4m, 남변 방향 300°로 재보고됨.
계단 내부에는 황토가 낀 큰 산돌 및 소량의 강돌(河卵石)이 섞여 메워졌으며, 계단석 아래에는 기초가 만들어지지 않았음. 현존하는 계단석재 및 그 잔편은 남변의 간격이 가장 길고 석재가 가장 크며, 동변은 수량이 가장 많으며, 서변은 오직 4매만 남아 있으며, 북변은 모두 잔편이고 큰돌이 없음. 2003년 조사에 앞서 서·남 양측의 석재는 부분적으로 노출되었고 동측은 거의 모두 흙 속에 매립된 상태였음. 기초는 보이지 않고 계단 한 층만 보임. 석재의 표면은 정연하고, 정면은 호형으로 가공하였음.
남측에는 9매가 있는데 서에서 동으로 배열되었으며, 축선의 방위각은 130°이며, 정면은 서남이나 남쪽으로 약간 더 치우침. 남변의 석재는 비교적 크고, 재질은 담회색과 담분홍색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오직 서단의 1매만 황색의 英灰巖임. 석재의 규격은 균일하지 않으며, 길이와 너비의 차이도 비교적 크며, 두께 또한 고르지 않고 형태는 일반적으로 장방형로 제작되었고 대다수 6면이 가공을 거쳤으나 각각 부분적인 자연면이 남아 있음. 위치상 보면 양쪽 끝의 큰 돌은 원래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기타 대다수는 이미 옮겨져 밖으로 튀어나옴. 인위적으로 돌을 쪼개고 자재를 구하여 이미 계단을 조성한 축조석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심하게 결실되었으며, 다행히 남은 것 역시 대다수 파손되어 있으며, 온전한 것은 거의 없음.
서측으로부터 첫 번째 돌은 담회색의 화강암으로 길이와 너비가 각기 2m이며, 방형을 띠고 있으며, 북측은 이미 절단되었는데 절단부분은 북면으로 기울어짐. 이 돌의 상반부는 한 층을 거두어가서 현재는 여러 곳에 쐐기 흔적이 남아 있으며 잔존 두께가 0.7m이며, 바깥 측면의 남면이 비교적 심하게 침식당하였으며, 서측면에는 수직평행의 가공 흔적이 남아 있음. 돌 아래에는 생토로 원래 자리는 움직이지 않았을 수 있으며 형태 및 크기를 보면 고분 서남 모서리돌로 추정됨.
서측으로부터 두 번째 돌은 담분홍색의 화강암임. 앞의 돌과의 거리는 3m이며, 크기는 길이 1.3m, 너비 1.2m, 두께 0.6m이며, 기본적으로 온전한 형태임. 해당 돌은 이미 밖으로 뒤집어져 바깥 측면은 아래로 향하며, 윗면과 바닥면은 모두 자연면이며, 윗면의 가장자리 부분에만 가공 흔적이 있으며, 바닥면에는 한부분이 없어지고, 자연면만이 남아 있음.
서쪽으로부터 세 번째 돌은 분홍색으로 길이 2.1m, 너비 0.6-1m, 두께 0.7m이며 앞의 돌과 3.5m의 간격임. 이 돌은 일찍부터 온전한 형태로 양끝은 손상되지 않았으며, 바깥 측면은 자연면으로 자연곡선이 남아 있으며, 頂面은 비교적 평평하게 가공되었으며 바깥 측면에는 너비 9㎝ 정도의 돌출된 능선이 남아 있음.
서쪽으로부터 네 번째 돌은 앞의 돌과 약 1m 떨어져 있으며, 담분홍색의 화강암이며 보존 상태는 양호함. 돌은 길이 3.6m, 너비 1.6m, 두께 0.76m이며 안측에는 큰 면적의 자연면이 남아 있으며, 양끝과 바깥 측면은 끌로 가공을 거쳤으나 끌로 파낸 흔적은 보이지 않음. 상면은 밖에 기댄 한쪽에 너비 10㎝의 돌출된 능선이 하나 있음.
서쪽으로부터 다섯 번째 돌은 네 번째 돌의 동쪽 1m 되는 곳에 있으며, 크기는 길이 1.8m, 너비 0.6m, 두께 0.45m임. 상면은 위로 향하며 바깥 측면은 이미 손상됨. 이 돌의 상면과 제4번째 돌의 바닥면은 고도가 서로 같으며, 하부는 흙속에 묻혀 있어 계단의 바닥층 받침석(墊石)일 가능성이 있음.
서쪽으로부터 여섯 번째 돌은 석질은 앞의 돌과 동일하며 모두 담분홍색의 화강암으로 앞의 돌과 0.6m 떨어져 있으며 위치가 옮겨져 삐뚤어진 방향을 향해 있음. 돌은 길이 1.5m, 너비 0.75m, 두께 0.6m이며 바깥 측면은 아래를 향하며 양끝은 훼손되지 않았으며, 頂面과 바닥면은 모두 이미 쪼개어 가져가서 훼손됨.
서쪽으로부터 일곱 번째 돌은 담회색 화강암으로 삐뚤어진 방향을 향해 있으며, 위치는 여섯 번째 돌에 비해 밖으로 튀어 나옴. 석재는 길이 2m, 너비 0.6m, 두께 0.7m이며 頂面은 밖을 향하며 가장자리 부분에는 너비 10㎝의 돌출된 능선이 있음. 놓인 위치로 볼 때 이 돌은 바닥층 축조석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가능성이 있음.
서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돌은 유일한 영회암석으로 길이 3.7m, 너비 1.2m, 두께 0.8m이며, 석재는 가공되어 비교적 양호하며, 긴 변은 모두 비교적 둥글고 부드러운 능선을 가지고 있음. 해당 돌은 가지런히 놓여 있지 않아 밖이 높고 안이 낮은 형상을 띠고 있고 동단은 대체로 서단보다 높으며, 돌 아래에는 강자갈이 섞인 황토가 있음. 이 돌의 동단과 서남 모서리석 간의 거리는 26.7m이나 이 돌은 방형이 아니므로 각석이 아니라고 추정됨. 이 돌 아래의 자갈 섞인 황토는 높이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메운 받침토(墊土層)일 가능성이 있음.
그 외 서쪽에서 두 번째 돌의 남쪽으로 1.3m 지점에는 좌우 양측에 각기 장방형돌이 있는데 1단 계단 석재와 서로 유사함. 두 돌은 대체로 남측의 축선과 평행하게 놓여 있어 옮겨진 계단 축조석으로 추정됨. 두 돌 가운데 서쪽의 돌은 외측면이 안을 향해 있으며, 석재는 길이 1.95m, 너비 및 두께는 각기 0.6m이며, 내측 한모서리에는 비교적 커다란 결실이 있으며, 평면은 사다리형(梯形)을 띠고 있음. 동측의 돌은 길이 1.6m, 너비 0.8m, 두께 0.7m이며, 외측면은 아래로 향하며, 가장자리에 너비 약 10㎝의 융기선이 있음. 이 돌은 회백색으로 풍화기층이며, 석질은 확연히 다른 것들과 다름. 네 번째 돌 외측에는 0.8m 지점에 네 번째 돌과 평행하게 장방형 석재가 놓여 있는데 길이 1.2m, 너비 0.45m, 두께 0.3m의 분홍색 화강암질이며, 그 상면의 가장자리에는 10㎝ 너비의 융기선이 있음. 또한 서쪽에서 세 번 째 돌에서 다섯 번째 돌 사이에는 묘 변과의 3-5m 범위 내에서 7개의 흩어진 석재를 발견하였는데 재질은 화강암과 회암 2종이며, 다수 온전하지 않으며, 조사 중에 전부 정리되지 않아 기술하지 않음.
서측에는 앞서 기술한 대석의 각석 외에 3개 돌 잔편이 있음.
남쪽에서 첫 번째 돌은 담회색 화강암으로 각석과 약 1m 떨어져 있으며 그 외측면은 각석의 서면과 직선을 이루는데 원래 위치인 듯함. 이 돌의 남반 부분은 쪼개져 버렸고 상면 역시 훼손되어 있으며, 북단면과 외측에는 정연하게 가공되어 있으나 가공흔적은 남아 있지 않음. 남은 길이 1.2m, 너비 1.15m, 두께 0.35-0.54m임. 이 돌의 서변과 각석의 외변을 따라 선이 연결되며 방위각은 220°로 측정되며, 남측 변과 90°를 딱 이룸.
남쪽에서 두 번째 돌은 오렌지색 화강암으로 묘 내에 치우쳐 위치하며, 세워져 있으며, 원래 겉 표면은 지금 정북쪽을 향해 돌아 있으며, 상면은 서쪽을 향해 있음. 석재는 길이 및 너비가 각기 약 1.2m, 두께 0.9m이며 가공은 비교적 가늘게 되었고 정연하나 가공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외연에는 너비 7-10㎝의 융기선이 하나 있음.
남쪽에서 세 번째 돌은 두 번째 석재의 북쪽 약 6m 지점에 위치하며, 이미 파손됨. 옅은 분홍색 화강암으로 길이 0.8m, 너비 1.1.m, 두께 0.7m임. 이 돌은 이미 밀어 넘어뜨려져 옆으로 90° 돌아 외측면이 아래로 향하고 상면과 바닥이 남북 양측에 노출되었고, 북단에는 쐐기 흔적을 볼 수 있음.
동면에는 대략 20개의 장방형돌이 있으나 다수가 원래 위치가 아님. 형체는 비교적 큰 것 8개가 일렬을 이루고 있는데 대체로 남북으로 직선을 이루나 간격은 균일하지 않음. 그 가운데 남쪽에서 제4·5·6의 장방형돌은 두께가 모두 0.7m 정도이며, 제6·4의 석재에는 상면 외측에 융기선이 남아 있어 모두 1단 계단의 바닥석으로 추정됨. 제4·5·8(6의 오류인 듯) 석재의 외측 가장자리를 잘 맞추어 비교적 가지런하며 그 아래는 모두 생토이므로 위치 이동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됨. 이 연결선의 방향과 서측 가장자리 방향이 서로 일치하고 이 선을 따라 남쪽을 향해 남측면과의 연장선이 서로 만나는데 대체로 현재 남측면의 길이는 약 2m를 넘고 바로 각석이 위치하고 있어야함. 이런 추측에 의하면 이 묘는 원래 한 변 길이가 28.5-29m일 가능성이 있음.
동면의 장방형돌은 모두 화강암으로 색은 옅은 분홍색이 다수이며, 회색인 것은 2개이며, 오렌지색은 3개임. 축선상에 형체가 비교적 큰 8개 중에 위치함.
남쪽에서 첫 번째 돌은 길이 1.8m, 너비 0.5m, 두께 0.8m이며 비교적 온전한 형태임. 그 위치는 비틀어져 있으며 외측면은 밖을 향하고, 겉에는 평행하게 파낸 흔적이 20여개가 있는데 석재 표면을 정연하게 할 때 남겨진 것으로 추정됨.
남쪽에서 두 번째 돌은 방향이 첫 번째 돌과 동일하게 놓여 있음. 길이 2.4m, 너비 0.6m, 두께 0.56m. 석재는 기본적으로 온전한 형태이며, 양단과 외측면 역시 가공할 때 평행하게 파낸 흔적이 남아 있음.
남쪽에서 세 번째 돌은 길이 2m, 너비 0.7m, 두께 0.8-1m. 안이 낮고 밖이 높게 놓여 있으며, 상부는 심하게 쪼개졌으나 양단은 아직 훼손되지 않음.
남쪽에서 네 번째 돌은 양단은 모두 손상되어 남은 길이 1.1m, 너비 0.6m, 두께 0.56m임. 밖으로 약간 기울어졌고, 외측 가장자리에는 너비 10㎝의 융기선이 있음.
남쪽에서 다섯 번째 돌은 길이 1.6m, 너비 1.2m, 두께 0.74m이며 보존이 기본적으로 온전히 보존된 상태임. 상면 외측에는 10㎝의 융기선이 있으며, 안정되게 놓여 있으며, 돌 아래는 황색의 생토로 원래 위치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 내측의 한 모서리는 원래 결여되어 있었으며, 자연 평면을 지니고 있었음.
남쪽에서 여섯 번째 돌은 다섯 번째 돌과 3.5m 거리이며, 석재는 길이 1.2m, 너비 0.6m, 두께 0.7m이며, 기울어진 채 놓여 있는데 북고남저로 인위적으로 비틀어져 옮겨진 것이 확실함. 두께를 보면 이 돌은 1단 계단의 바닥석으로 추정되며, 그 외측의 가장자리에는 너비 10㎝의 융기선이 있는데 다른 바닥석들과 서로 일치함.
남쪽에서 일곱 번째 돌은 장방형 돌로 길이 2.3m, 너비 0.9m이며, 그 북단은 약간 동으로 기울어져 있어 원래 위치에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남단은 이동이 크지 않음. 이 돌의 상면은 이미 쪼개져 두께가 0.6m 남아 있음.
남쪽에서 여덟 번째 돌은 길이 1.15m, 너비 0.8m, 두께 0.68m이며, 양단은 아직 훼손되지 않았으며, 외측면은 위로 비틀어졌으며 상면은 약간 묘 내를 향해 돌아 있음. 지금은 위를 향한 외측면은 정연하며, 가공 흔적이 평행하게 남아있음. 상면과 서로 만나는 측변은 이미 쪼개졌기 때문에 상면 가장자리에 돌출된 능선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 석재의 두께를 추측해보면 이 돌은 제1단 계단의 바닥부 석재가 확실함.
그 외 동측면 네 번째 돌과 다섯 번째 돌 사이의 동변에는 흩어져 있는 계단 잔돌 6개가 남아 있음. 편북의 3개는 비교적 큰데 그 가운데 두 개는 상면 외연의 융기선이 보이며 두께가 하나는 0.3m, 다른 하나는 0.4m로 두 개의 규격은 분명함. 여섯 번째 돌 외측의 오렌지색 장방형돌은 길이 0.6m, 너비 0.3m, 두께 0.3m이며, 상면에는 7㎝ 너비의 융기선이 있으며, 다섯 번째 돌과의 사이에 편동에 위치한 두 돌 가운데 하나는 파내어 만든 융기선이 있는데 그 융기선은 너비 10㎝, 두께 0.38m로 두 개의 두께는 비슷하나 융기선 너비는 차이가 있음. 일곱 번째 장방형 돌의 북단 외측에는 길이 1.2m, 너비 0.5m, 두께 0.46m의 정연한 석재가 하나 붙어 있는데 분홍색 화강암으로 상층 또는 2단 계단의 축조석으로 추정됨. 동측 여덟 번째 돌의 북면의 외측에는 두 개의 분홍색 석재가 나란히 비스듬한 방향으로 놓여 있음. 내측에 치우친 것은 길이 2.8m, 너비 0.7m, 두께 0.3m이며, 외측에 치우친 것은 길이 0.5m, 두께 0.6m임. 외측면이 묘 내를 향해 뒤집혀져 상면은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양단에는 너비 약 8㎝의 융기선이 보임.
황니강대묘 안팎에 남아있는 석재를 종합해보면, 석재의 가공방면에서는 가장자리 융기선의 유무로 나눌 수 있음. 상면 외측변에 융기선이 있는 것은 장군총과 태왕릉의 축조법에 비춰보면 계단 바닥층으로 추정됨. 그 작용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상층석의 외장력을 방지하는데 유효하며 둘째, 들여쌓아 정연하고 외곽이 더욱 장관을 이룸. 상면에 융기선이 없는 보통의 석재는 모두 계단의 상부에 축조되었는데 이는 계단 상면을 정연하게 유지하는 것 이외에도 불필요한 작업이 감소될 수 있음.
이미 심각하게 파괴된 것을 제외하면 황니강대묘에는 융기선이 있는 석재의 이미 알려진 두께가 약 0.3-0.9m이며, 융기선이 없는 것은 역시 0.3-0.8m의 각종 차이가 있음. 전자는 대략 0.3, 0.4, 0.6, 0.7, 0.7 이상 등의 5종 규격, 후자는 0.3, 0.5, 0.6, 0.7, 0.7 이상 등의 5종 규격으로 나눌 수 있음. 만일 이것과 장군총 1단 계단 축조석이 4층이고 위로 점차 감소하여 3층인 방법과 동일하다면, 이 묘는 적어도 4단 계단, 또는 5단 계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한변 길이는 대체로 29m 이상으로 생각됨.
묘실구조는 증명되지 않았음.
고분 주위의 잔돌(碎石)과 진흙 속에서 니질의 기와편들이 발견되었으며, 북측의 작은 길에서는 회도 기와편이 채집됨. 기와는 수키와와 암키와 두 종류이고 색은 회색과 홍갈색 두 가지 색이며, 모두 잔편이고 大片은 드물게 보임. 그중 회색인 것은 대다수 수키와 잔편이고 안에 布文이 있으며, 표면은 문질러 광을 냈음. 홍갈색 기와는 가는 모래질로 전부 암키와이며 표면에는 가는 승문이 새겨져 있으며 두께는 1.5㎝ 정도임.

 

역사적 의미

 

황니강대묘는 독자적으로 산 하나를 차지하고 있어 시야가 탁 트였고, 규모는 비교적 크며, 묘상에 기와가 사용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고구려 왕릉의 매장방식과 유사함. 황니강대묘는 장군총과 태왕릉 사이의 직선상에 위치하고, 두 능과의 거리가 멀지 않음. 따라서 묘주의 신분 지위가 특수하여 보통의 관리로 볼 수 없으며, 해당 고분이 대부분 왕릉의 규격을 사용하므로 적어도 왕족 고분으로 추정됨.
황니강 대묘는 한 변 길이가 30m에 가깝고, 계단은 적어도 4단에 이르고, 하층 계단석은 보편적으로 일정한 폭을 지닌 융기선이 만들어져 형식, 축조방식, 규모 등 모두 장군총의 축조방식과 유사한 점들이 있음. 그러나 사용된 석재가 비교적 조잡하고, 전부 같은 색의 화강암이 아니고 간혹 회암도 사용됨. 석재 규격은 획일적으로 정연하지 않으며, 가공 상태도 정교하고 짜임새가 있지는 않음. 그 밖에 이 고분의 주변에는 묘역의 鋪石이 보이지 않고, 호분석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부속의 배총과 제대, 기타 유적현상이 없어 왕릉규격으로 보기에 충분하지 않음.
주목되는 점은 고분의 계단석 위의 표면 외연에 융기선이 제작되었는데 동일한 가공형식이 왕릉 중 천추묘, 태왕릉, 장군총 등 연대가 가장 늦은 소수의 몇 기에서만 보임. 즉 적석묘의 최고발전단계에 위치함. 각 계단석의 바닥층 장방형돌 전부는 융기 기법을 채용하였으며, 장군총에서 드물게 보임. 이런 추측에 따르면 황니강대묘 연대는 장군총과 유사하거나 전후 약간 차이가 있어 대략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황니강은 장군총과 광개토왕릉비 사이에 남북으로 비교적 길게 펼쳐진 작은 언덕으로, 그 남변의 가장 높은 곳에 고구려 대형 고분인 황니강대묘가 자리하고 있음. 고분의 주위는 탁 트였고 지형이 높고 시원함.
중심지리좌표는 동경 126˚11’18”, 북위 41˚8’38”, 해발 214m임.
黄泥岗은 集安市城 동쪽 果樹村 남쪽의 낮은 언덕으로 太王鎭 果樹村 9組에 속함. 黄泥岗은 북으로는 龍山과 접하며, 남으로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장군총이 자리한 용산 기슭과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서면은 평활한 통구평지임. 고분 동북으로는 장군총과 약 1.2㎞ 떨어져 있으며, 서남으로는 광개토왕릉비와 500m가 채 안되는 거리이며, 동남으로 600m에는 임강묘가 있으며, 이 밖에 부근에는 다른 고분과 유적이 없음.

 

유물정보

 

板瓦片 2점 등

 

참고문헌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黃泥崗大墓調査報告」『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科學出版社, 2009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