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국동대혈(國東大穴)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275
  • 위치(출토지)集安市 太王鄕 上解放村(上羊魚頭)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기타
 

출토지

 

집안시 태왕향 상해방촌(상양어두) (集安市 太王鄉 上解放村(上羊魚頭))

 

연대

 

고구려 초중기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3 집안현 문물관리소의 張忠國이 집안 동부 산간지역에 寫生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무너진 지 오래된 “神隧” 유적을 발견함.
1983집안현문물조사대
(集安縣文物調査隊)
5월에 유적의 전체현황을 조사하고 『집안현문물지』의 “국동대혈”을 발표했으며, 1983년 10월 19일에 집안현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됨.
1983학자 개인의 조사여름에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의 이전복, 집안현 문물관리소의 임지덕 등이 유적의 전체현황을 조사하였고, 『중국 내의 고구려 유적』의 “국동대혈 유적지”를 발표함.

 

구조특징

 

大岩洞은 두 갈래의 골짜기 만나는 곳에서 오솔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다가 동남으로 돌면 만나는 높다랗고 비교적 넓은 동굴로, 높이 10m, 너비 25m, 길이 20m임. 동남쪽이 입구이고, 이곳에서 압록강을 바라볼 수 있으며, 동굴의 입구 앞에는 약 600㎡의 平臺가 있는데, 100여명은 앉을 수 있다고 함. 평대 아래는 낭떠러지이고, 이 평대에 서면 압록강을 오가는 배를 바라볼 수 있음.
通天洞은 大岩洞에서 서측으로 산길을 돌면 위쪽 약 100m 되는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용암 동굴로, 현지 주민들은 통천동이라고 부름. 동굴의 입구 방향은 南偏西 36˚이며, 동북쪽에 이 굴과 통하는 입구가 또 하나 있음. 깊이(길이) 16㎝, 폭 20m, 높이 6m로 약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굴의 바닥은 평탄하고 천정은 아치형을 이루며 동굴 앞에는 300㎡의 開闊地가 있음. 동굴 안의 동남 부분에 한 변의 길이 약 2m의 천연 石臺가 있는데 고구려 시기에 매년 10월 동맹제를 거행할 때 모셨던 隊神의 木隧를 설치했던 神座로 추정하기도 함.

 

역사적 의미

 

『三國志』권30 위서 동이전 고구려에 따르면 “그 도성(나라)의 동쪽에 큰 동굴이 있는데 隊穴이라 부르며, 10월에 도성에서 큰 모임을 개최할 때 (그 동굴에서) 隊神을 맞이하여 도성 동쪽 위로 되돌아와 제의를 거행하는데 神座에 (그 神像인) 木隧를 안치했다(基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國中大會, 迎隧神還于祭之, 置木隧于神座)”고 함. 이러한 기록은 『후한서』동이전 고구려나 《구당서》동이전 고구려 등에 널리 전함. 특히 『翰苑』에 인용된 「魏略」에는 동굴에서 隧神의 神像을 맞이한 다음 ‘도성 동쪽 강 위로 되돌아와 제의를 거행한다’고 나옴. 이로 보아 고구려인들은 매년 10월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거행하며 도성 동쪽의 동굴에 모셔 두었던 수신의 신상을 모셔다가 국내성 동쪽의 압록강 위에서 제의를 진행한 것으로 추정됨. 현재 압록강의 유속은 이 동굴보다 상류방면에서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흐르다가 동굴 부근을 지나면서 완만해져 국내성이 위치한 통구분지를 돌며 유유히 흘러나감. 따라서 대암동이나 통천동은 실제로 고구려 시기에 수신을 맞이하던 국동대혈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됨.

 

자연환경

 

집안현성(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상해방촌(상양어두라고도 함)의 汞洞子溝 골짜기에 위치하고, 고구려 두 번째 도성이었던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17㎞ 거리에 위치함.
汞洞子溝 동남쪽에서는 동·서 두 갈래의 계곡이 압록강을 향하여 흘러 들어가고 이 계곡의 양측에는 여러 산봉우리가 솟아 기이한 봉우리가 돌출해 있고, 어떤 바위는 천연 石佛과 같이 머리를 숙이고 서 있음. 계곡 안쪽으로 100여m 더 들어가면 두 갈래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가파르게 우뚝 솟은 두 개의 高峰이 있는데 “大穴(큰 굴)”은 바로 이곳 산등성이의 중턱에 위치해 있음. 유적에서 홍동자구 골짜기를 따라 남쪽으로 약 400m 정도 내려오면 압록강에 다다르는데, 압록강의 유속이 이 일대부터 아주 완만해져 고구려 두 번째 도성이었던 국내성 일대까지 유유히 흘러나감.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國家文物局 主編, 「集安市-“國東大穴”遺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李殿福, 「高句麗考古的回顧與展望」『遼海文物學刊』 1992-2,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