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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파령관애 성벽(望波嶺關隘 城壁)

 
  • 구분유구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F000138
  • 위치(출토지)集安 望波嶺關隘, 王八脖子嶺關隘(집안 망파령관애, 왕팔발자령관애)
 

유적명

 

망파령관애, 왕팔발자령관애(望波嶺關隘, 王八脖子嶺關隘)
 

구조특징

 

1963년에는 서북쪽 260m만 확인했는데, 기초 너비 10m, 잔존 높이 1.5-2.5m, 방향 350˚임. 1983년에는 동남쪽까지 연장하여 총 750m 확인했고, 잔존 높이 1.5-2.5m, 방향 350˚임. 성벽 북단의 제방은 1963년 조사 당시에 신개하(쌍차하)에 잇닿아 있는 성벽 아래쪽 강변에 돌로 축조한 잔존 길이 13m, 높이 0.5-0.8m인 제방이 남아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댐에 수몰되어 현황을 파악할 수 없음. 1963년 조사 당시에 용두령 동남단 90m 정도는 강돌로 쌓은 다음 진흙을 10-20㎝ 두께로 덧쌓아 보수한 흔적이 있었다고 함. 1983년 조사 당시 망파령에서 이어지는 7개의 산봉우리 사이의 구릉지에도 돌로 성벽을 축조한 흔적을 확인했는데, 잔고 2.5m, 성벽 9단으로 축조함. 이처럼 망파령 산줄기를 따라 동남쪽으로 성벽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 전체 길이를 정확히 조사했는지는 파악할 수 없음.
성벽 축조양상을 보면 용두령-망파령 구릉 서북쪽은 1963년 조사 당시 도로에 의해 절단된 부분인데, 당시 조사에 따르면 도로 북변에 성벽 단면이 드러나 있었는데, 네모 반듯한 큰 강돌로 기초를 다진 다음. 작은 강돌로 아쪽으로 약간씩 물리면서 층층이 쌓아 올렸다고 함. 조금 다듬은 강돌도 있는데 성돌 크기는 대체로 20㎝-35㎝-45m 전호였다고 함. 용두령-망파령 구릉 동남쪽은 1963년 조사 당시에는 성벽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수몰에 따른 수위 변동으로 인해 성벽이 완전히 드러나 있음. 이 부분도 석축성벽인데 서북쪽과 달리 강돌이 아니라 깬돌로 성벽을 축조함. 성벽 양측의 바깥쪽에 비교적 큰 깬돌로 외벽을 쌓아올리면서 성벽 안측도 깬돌로 층층이 쌓아올렸음. 용두령 서북측의 수몰 지구는 1976년 三家甸子 댐 건설로 수몰된 부분인데 역시 수위 변동으로 성벽 윗면의 일부가 드러나 있음. 용두령-망파령 구릉 저지대 서북쪽과 마찬가지로 강돌로 축조했음. 망파령 서북쪽 기슭은 삼가전자댐 건설 이후 망파령 서북 산기슭을 관통하는 도로를 신설하면서 이곳 성벽이 상당 부분 파괴됨. 도로 동남측 산기슭 위에 절단된 석축 성벽이 드러나 있고, 도로 가장자리에는 성벽 축조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돌이 쌓여 있으며 성돌 가운데 강돌도 일부 섞여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용두령-망파령 구릉 저지대의 동남쪽과 마찬가지로 깬돌임. 1983년 조사 당시 성벽 단면을 확인했는데, 먼저 산마루 정상의 동쪽 비탈을 따라 너비 10m 정도의 기초홈을 파고 그 내부를 깬돌로 메워 기초부를 만든 다음, 그 위에 성벽을 축조했다고 함. 외벽은 비교적 가지런했으며, 서벽 윗면은 남측의 산마루와 높이가 비슷하여 너비 1.5-2.5m 평탄한 통로를 이루고 있으며, 병력 이동로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성벽 바깥쪽의 북측 아랫쪽도 많이 허물어져 있는데, 목탄층과 황토를 번갈아가면서 성토 다짐한 흔적이 드러나 있음. 이는 성벽 바깥쪽 산비탈에 성토 다짐을 하여 보축했을 가능성을 시사함. 성벽 구간은 성돌 현황으로 보아 관애 가운데 용두령 구간은 강돌, 망파령 구간은 깬돌을 사용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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