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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 1호분(長川 1號墳)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226
  • 위치(출토지)集安市 黃柏鄕 長川村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벽화고분
  • 형태사항높이: 6m 석실 
 

출토지

 

집안시 황백향 장천촌 (集安市 黃柏鄉 長川村)

 

연대

 

5세기 중엽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2 집안시 전역 문물답사시 발견됨.
1970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8월에 陳相偉, 李文奎, 李雲鐸, 宮永祥, 林至德이 참가하여 장천 1호분을 발굴함.

 

구조특징

 

장천 1호분(JCM001)은 봉토석실벽화묘로 방대형의 분구이며, 둘레는 88.8m임. 연도의 구조를 보면 西向으로 255˚방향이고 입구는, 2重으로 입구를 막고 깨진 돌과 회로 틈을 메웠으며, 천정은 장방형의 거석으로 덮은 평천정이고, 전실로 이어지는 연도의 끝에는 돌로 만든 門檻과 문지방 양 끝에 나무 門框의 흔적이 확인됨. 전실의 구조는 橫長方形의 평면이고, 천정은 3단의 삼각고임과 3단의 평행고임을 번갈아 얹은 평행삼각고임이며, 서벽 중앙은 연도와 연결되었고, 동벽 중앙은 현실(후실)과 연결된 통로가 위치함. 전·후실 연결 통로는 후실과 이어지는 한쪽 끝에는 현문(2조)를 설치하였고, 석문은 청회색의 석회암을 다듬어 석회를 칠한 모습으로 남쪽 문은 훼손되었고, 북쪽 문은 정중앙에 구멍이 뚫림. 후실의 구조는 近正方形의 평면으로 壁帳을 걸기 위한 못자리 구멍이 동벽 8군데, 남·북벽 각 7군데 있는데 일정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천정은 5중의 평행고임이고, 棺臺는 석판으로 다듬어져 백회가 칠해진 상태로 2개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배치됨. 유물은 발굴 당시 이미 도굴된 상태로 紅松의 棺木 잔편만 전하고 있으며, 후실의 남쪽 관대에서 발견되었고, 관목 표면은 삼베로 둘러싸여 검은 옻칠이 칠해진 상태임.
벽화내용을 보면 전실의 남벽은 대부분 박락이 되었는데 홍갈색 선으로 벽면을 상, 하 두단으로 구획하여 화면 분할을 하였고 아랫부분은 거의 흔적도 없으며, 윗부분의 좌측 끝에는 한 채의 가옥이 있어 가옥 안쪽에서 남녀 한 쌍이 가무를 감상하고 있고, 가무 장면이 성대하고 대략 50여명의 인물이 있었으나 인물은 대부분 박락되었으며, 무용 장면의 아랫부분에 음식을 올리는 인물 4명이 확인되었고, 인물 뒤의 녹색 지붕의 가옥 한 채는 중앙의 용마루 위에 원형의 검은색 용마루 장식이 있고, 아랫부분에는 홍갈색의 기둥을 세웠으며, 처마 아랫부분에는 서까래가, 그 우측에는 偏처마가 설치되어 있어 이 건물은 집 앞쪽의 음식을 나르는 인물들을 볼 때 부엌에 해당함. 전실 북벽은 내용상 상하 2부분으로 구분되나 화면 분할한 명확한 경계선이 없음. 윗부분은 교외에서 벌어지는 가무백희 및 伎樂 장면으로 묘주를 둘러싸고 바깥쪽으로 펼쳐진 형상이며, 화면 우측 윗부분에 과일이 열린 큰 나무 1그루가 있고, 이 나무 좌측에 묘주가 앉고, 우측에 손님이 앉아 있음. 묘주 및 주변 장면을 보면 묘주는 하반신 형체만 남은 상태이고 손님은 황색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으며, 묘주 앞에 뿔형(角形)의 큰 잔이 놓여 있는 탁자가 보이고, 묘주 뒤쪽에는 남녀 두 시종이 서 있는데, 남자 시종은 앞쪽에서 두 손으로 일산을 들고 있고, 여자 시종은 뒤쪽에서 손에 흰 수건을 들고 있음. 묘주와 손님은 나무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아 나무 아래 두 명이 펼치는 원숭이 놀이를 감상하고 있고, 묘주의 발 아래에는 1마리 개가 앉아 원숭이 놀이를 감상하고 있으며, 개 뒤에 주인의 말인 듯한 백마가 서 있고, 말 옆에는 말을 모는 동자가 표현되어 있으며, 백마 뒤쪽에는 코가 높고 눈이 움푹 들어간 남자가 다리를 뻗고 앉아 있음. 손님 및 주변 장면을 보면 손님은 머리에 새깃털을 꽂고, 짧은 콧수염에 合袵短襦와 통바지를 입고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고, 손님 앞에도 그릇이 놓여 있는 작은 탁자가 하나 놓여 있으며, 손님 뒤에는 두 명의 남자 시종이 두 손을 가슴 앞쪽에 모으로 서 있는 모습이고, 손님 아랫부분에도 두 명의 남자가 보이는데, 모두 머리에 절풍을 쓰고, 두 손을 가슴 앞쪽에 앚잡고 있으나 앞의 남자는 두 무릎을 꿇고 있고, 뒤의 남자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서 있음. 묘주의 백마 위쪽에는 가무 장면이 있는데 남자 무용수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여자가 있고, 남자 무용수 윗부분에는 화려한 복장의 1남2녀가 거문고를 들고 연주를 기다리는 모습이며, 화면 좌측 상단 모서리에는 相馬, 씨름. 舞棒, 曲蓋輦 등의 장면이 있음. 아랫부분은 산림 속의 수렵 모습으로 수렵도는 모두 13명의 기사가 포위 사냥하는 장면인데 기사들이 좌우 두 방향으로부터 활시위를 당기며 질주하고, 이 화면의 좌측 끝에 1그루의 큰 나무 굴 안에 곰 1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며, 남자가 손에 매를 들고 매사냥하는 모습임. 동벽은 현실과의 통로에 의해 남북 2면으로 구획되었는데 남·북면에 각 1인의 문지기가 있음. 문지기는 무인상으로 서로 마주 보고 侍立하는 모습이고, 모두 幘冠을 쓰고, 상체는 左袵花襦 및 하체는 통바지를 입고, 허리를 묶고, 콧수염이 난 형태이며, 하나는 두 손을 앞쪽으로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으로 왼손의 손등을 잡은 모습임. 서벽은 중앙연도에 의해 남·북 2면으로 화면이 분할되었고 2벽에 각 1인의 갑주무사가 있으나 대부분 박락되었으며, 위에 연화·화생·화염이 있음. 각 벽의 모서리(기둥)는 기둥 위에 4중의 첨차가 있고 첨차 윗부분은 천장의 첫 번째 고임 네 귀퉁이의 말각고임에 해당함. 천정은 보살·불상 등이 처음 고분벽화의 소재로 사용되었고, 첫 번째 고임돌에는 사신이 그려져 있고, 두 번째 고임돌에는 동면 중앙에는 예불과 부처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정중앙에는 부처가 수미좌 위에 앉아 합장하는 모습임. 수미좌 중간에는 박산향로가 있고, 그 좌우에 백색의 사자가 앉아 있는데 좌측이 수컷, 우측이 암컷임.(김일권은 등에 줄무늬가 있고, 목에 사자 갈기 같은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호랑이로 추정하였고, 이 예불모습을 칠성단 신앙의 모습으로 설명하였음. 『다시보는 고구려사』, 2004, 고구려연구재단) 불상은 살이 풍부하게 쪘고, 머리는 상투를 틀었으며, 콧수염이 있고, 두눈을 지그시 떴으며, 몸에는 백색의 通肩大衣를 착용했음. 불상 뒤 광배는 화염문 장식이고, 불상 우측에는 손에 일산을 들고 공양하고 있는 남녀 1쌍이 있으며, 공양하는 남녀 뒤에는 두 명의 시녀가 손을 가슴 앞으로 하여 흰 수건을 들고 있는 모습임. 시녀 뒤에는 연화생이 표현되어 있으며, 불상 좌측에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남녀 묘주의 모습이 있고, 묘주 뒤에는 1남1녀의 시종이 서 있고, 묘주 위쪽에는 2명의 선인이 날아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선인은 각각 두광이 있고, 長袴를 걸치고, 纓帶를 휘날리고 있는 모습임. 남·북면에는 각각 4개의 보살이 배치되었는데 보살들은 각각 두광이 있으며 天衣를 입고 蓮臺에 가부좌를 한 모습임. 세 번째 고임돌의 측면에는 각 면마다 4-5명의 선인이 날아가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는데 각기 자태가 다르며, 纓帶를 날리며 발을 드러낸 모습임. 네 번째 고임돌의 측면에는 伎樂天人이 장식되어 있고, 각층 말각고임 아랫부분에는 연꽃이 있으며, 천장 막음돌은 동면에는 해의 상징인 삼족오가 있고, 서면에는 달의 상징인 두꺼비와 옥토끼가 있으며, 중앙에는 “北斗七靑”의 4글자가 있고, 북면과 남면에는 별자리가 있음. 연도는 묘문의 정면에는 정면에서 바라본 연꽃이 있고, 양 벽에 각각 1인의 시녀가 있음. 후실은 좌·우벽 및 전·후벽에 정면에서 바라본 연꽃이 있고, 각 모서리와 고임에는 연꽃이 있으며, 棺床은 織綿壁衣와 유사한 編織이 도안되어 있고, 천정 막음돌에는 동면에는 해의 상징인 삼족오가 있고, 남면에는 달의 상징인 두꺼비와 옥토끼가 있으며, 남·북면에는 별자리가 있고, 중앙에는 “北斗七靑”의 4글자가 있음. 현문 정면에는 커다란 연꽃이 있음.

 

내부규모 및 특징

 

연도 길이 1.40m, 폭 1.53m, 높이 1.90m
전실 길이 2.37m, 폭 2.90m, 높이 3.25m, 벽 높이 1.89m
전·후실 연결 통로 길이 1.12m, 폭 1.34m, 높이 1.62m
후실 길이 3.30m, 폭 3.20m, 높이 3.05m, 벽 높이 1.83m

 

역사적 의미

 

고구려 귀족의 무덤으로 연대는 5세기 중엽(전호태는 벽화내용상 5세기 중반으로 추정함.)임. 고분의 구조는 전·후실로 구성된 두 칸 구조로 천정은 평행삼각고임이고, 벽화소재는 묘주의 생활과 함께 사신이나 불교색체 등이 추가됨. 예불도는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 불교수용과 귀족의 불교생활을 반영하였고, 예불도속의 백색 사자는 5세기 말기의 중원석굴예술인 護法獅子의 영향을 받았으며, 보살의 褒衣博帶 차림은 북위 효문제의 太和改制 이후 양식이고, 보살 다리 아래의 覆瓣蓮座와 불상 아래의 須彌座 등은 늦게 유행한 양식임. 전실과 후실에서 모두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현존하는 벽화 밑면에 또 한 층의 벽화가 확인되었고, 두 번째 매장을 한 수, 재차 백회를 칠하고 벽화를 그린 흔적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집안현성 동북 25㎞쯤의 황백향 장천촌 북쪽 제1단과 제2단 대지에 위치하는데, 장천은 동서로 좁고 길게 뻗은 하곡분지로, 계절하인 乾溝河(干溝河)가 북쪽 산골짜기에서 분지 중앙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되는데, 건구하 양안을 따라 100여기의 고구려 고분이 밀집함. 고분군은 북쪽은 높은 산에 기대어 있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자리하며, 고분군이 자리한 장천촌을 집안-청석 간 도로가 동서로 관통함. 장천 분지에는 2개의 계절하가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는데, 서쪽이 건구하이고 동쪽이 後林子溝河임.

 

참고문헌

 

· 陳相偉·方起東, 「集安長川一號壁畵墓」『東北考古與歷史』 1982-1, 1982
· 陳相偉, 「集安長川二號封土墓發掘簡記」『文物考古彙編』 1982-1, 1982
· 陳相偉, 「集安長川二號封土墓發掘紀要」『考古與文物』 1983-1, 1983
· 張雪岩, 「集安兩座高句麗封土墓」『博物館研究』 1988-1, 1988
· 孫進己·孫海, 『高句麗渤海硏究集成』 高句麗 卷(二), 哈爾濱出版社, 1997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사계절출판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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