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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초 10호분(老虎哨 10號墳)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고구려 후기
  • 문서번호S000059
  • 위치(출토지)集安市 楡林鎭 老虎哨村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봉토석실분
  • 형태사항높이: 0.95m 석실 
 

출토지

 

집안시 유림진 노호초촌 (集安市 榆林鎮 老虎哨村)

 

연대

 

고구려 전반(3세기)~고구려 후기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2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1981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10월 조사에 林至德, 閻毅之, 趙書勤이 참가하였고, 노호초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해 발굴 조사를 실시함.

 

구조특징

 

주변 길이 21.6m이고 방향은 南偏西 13°임. 석실은 격벽으로 구획된 동·서 이실 무덤로 동·서 2실의 4벽 모두 다듬지 않은 돌로 축조했으나, 벽면은 매우 편평하며, 격벽이 연도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격벽 폭은 0.5m, 전체 길이 2.85m임. 석실 평면은 刀形이고 석실 바닥은 작은 냇돌이 여러 층으로 깔려 있으며 두께가 20㎝임. 석실 입구는 할석을 여러 층 쌓아 봉하였고 입구 표시석(迎門石)은 보이지 않으며 평천정임.

 

내부규모 및 특징

 

동실 길이 1.75m, 폭 1m, 높이 0.95m
서실 길이 1.75m, 폭 0.9m, 높이 0.95m

 

역사적 의미

 

고구려 고분의 변천과정 상 석실봉토분은 3세기대 이미 출현하여, 4세기 중엽-5세기 중엽에 크게 발전하고, 6세기 중엽에는 고구려 고분양식의 주류를 형성하므로 봉토분이 중심이 되는 노호초고분군의 연대는 고구려 전반인 3세기부터 고구려 후기까지로 추정됨.
소형 봉토분은 피장자의 신분과 빈부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에 따라 재료 및 규모의 크기에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줌.
입구 표시석(迎門石)은 고구려 후기(6세기)로 비정되는 5회분 4호묘 및 5호묘, 통구 12호분(마조총) 등의 대형 고분에서 전실 앞의 묘도 중앙에 설치되어 “擋門石”이라 칭하는데, 이러한 시설은 고구려 소형 봉토분 중에서 발견된 예는 없으나, 노호초는 소형 고분임에도 발견되는 첫 사례로 고분 구조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아니며, 고구려 후기 葬俗에 의해 출현한 일종의 관념을 표명한 것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유림진 노호초촌 서쪽 200m에 위치하고 노호초 북면의 黑駝山 아래에 남북으로 펼쳐진 길고 좁다란 언덕의 중앙에 분포하며 분포 범위는 대략 3천㎡임. 노호초촌은 집안현에서 서남 50㎞ 거리에 위치하나 현재 수력발전소로 인해 완전 수몰되었고, 노호초의 동·남·서쪽 등 3면을 압록강이 둘러싸고 있으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渭源郡이 위치함.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趙書勤, 「集安縣老虎哨古墓」『文物』 1984-1,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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