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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초 고분군(老虎哨 古墳群)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고구려 후기
  • 문서번호S000054
  • 위치(출토지)集安市 楡林鎭 老虎哨村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
  • 형태사항3점 기타 
 

출토지

 

집안시 유림진 노호초촌 (集安市 榆林鎮 老虎哨村)

 

연대

 

고구려 전반(3세기)~고구려 후기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2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4월 조사
1981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10월 조사에 林至德, 閻毅之, 趙書勤이 참가하였고, 노호초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해 발굴 조사를 실시함.

 

구조특징

 

고분은 총 17기 중 5기는 훼손이 심각하여, 봉토분 12기만을 발굴함.
고분의 매장부의 수에 따라 동분이혈(同墳異穴)의 이실 무덤과 단실무덤으로 구분하고, 석실 평면은 치우친 연도(刀形)과 중앙연도(鏟形)로 구분하며, 천정은 조정한 것과 평천정으로 구분함.
고분(석실분)의 유형에 따른 분포상황을 보면 횡구식 봉토석실분은 2기(M1, M4)로 석실 4벽에는 모두 불규칙한 석괴를 축조하였고, 벽 높이는 1-1.5m이며, 상부에는 간단한 抹角 조정 후 천정은 1-2개의 板狀大石으로 덮음. 묘도 입구에는 대부분 입구 표시석(迎門石)이 있고 頂部에는 大石板으로 덮었고, 분구의 형태는 丘狀임. 횡혈식 봉토석실분은 10기가 있는데, 단실무덤은 鏟形 1기(M8), 刀形 6기(M2, M3, M5, M6, M9, M11)로 총 7기가 있고, 동분이혈 이실무덤은 총 3기(M7, M10, M12)로 편재연도의 刀形 평면이고 동쪽 석실이 서쪽 석실보다 약간 큼. 수축 방법은 석실묘와 유사하나 석실 상부에 抹角이 없고 커다란 판석으로 頂部을 덮음.
석실과 연도의 바닥은 낮은 편으로 높은 것은 70-90㎝이고, 다수가 迎門石을 가지고 있음.

 

역사적 의미

 

고구려 고분의 변천과정 상 석실봉토분은 3세기대 이미 출현하여, 4세기 중엽-5세기 중엽에 크게 발전하고, 6세기 중엽에는 고구려 고분양식의 주류를 형성하므로 봉토분이 중심이 되는 노호초고분군의 연대는 고구려 전반인 3세기부터 고구려 후기까지로 추정됨.
소형 봉토분은 피장자의 신분과 빈부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에 따라 재료 및 규모의 크기에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줌.
입구 표시석(迎門石)은 고구려 후기(6세기)로 비정되는 5회분 4호묘 및 5호묘, 통구 12호분(마조총) 등의 대형 고분에서 전실 앞의 묘도 중앙에 설치되어 “擋門石”이라 칭하는데, 이러한 시설은 고구려 소형 봉토분 중에서 발견된 예는 없으나, 노호초는 소형 고분임에도 발견되는 첫 사례로 고분 구조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아니며, 고구려 후기 葬俗에 의해 출현한 일종의 관념을 표명한 것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유림진 노호초촌 서쪽 200m에 위치하고 노호초 북면의 黑駝山 아래에 남북으로 펼쳐진 길고 좁다란 언덕의 중앙에 분포하며 분포 범위는 대략 3천㎡임. 노호초촌은 집안현에서 서남 50㎞ 거리에 위치하나 현재 수력발전소로 인해 완전 수몰되었고, 노호초의 동·남·서쪽 등 3면을 압록강이 둘러싸고 있으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渭源郡이 위치함.

 

유물정보

 

석제 칼(石刀片) 1점, 석제 화살촉(石鏃) 3점, 토기편(陶片) 12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철제 손칼(鐵削) 1점, 은제 반지(銀指環)1점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趙書勤, 「集安縣老虎哨古墓」『文物』 1984-1,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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