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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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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령구문고분(五道嶺溝門古墳)

 
  • 구분유적
  • 시대청동-철기시대~고구려 초기
  • 문서번호S000002
  • 위치(출토지)集安縣 麻線鄕 五道嶺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고분>적석총
  • 형태사항가로: 14m, 세로: 14m, 높이: 0.8m 13점 석광 
 

출토지

 

집안현 마선향 오도령 (集安縣 麻線鄉 五道嶺)

 

연대

 

전국 말기(B.C 3C)~서한 초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78집안현박물관
(集安縣博物館)
4월 24일 集安縣 太平公社 太平大隊 五道嶺溝門 도로 보수 중, 五道嶺 狍圈子溝門 맞은 편 지표에서 3m 높이의 남쪽 산비탈에서 돌을 옮기던 중에 1m 정도의 깊이의 대석 사이에서 청동기를 발견했으나 발견 당시 교란된 돌무지로 고분 및 청동기 외에 어떤 유물이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하고, 당시 인부들이 출토된 유물 11건을(실제 나열된 사례는 13건) 집안현 박물관에 보고하였음.
4월 24일 집안현 박물관에서 제1차로 현장조사 및 유물 회수를 하고 발견 경위의 내용을 기록하였지만 고분은 발견하지 못함.
1978집안현박물관
(集安縣博物館)
5월 31일부터 6월3일까지 제2차 조사가 이루어졌고, 劉景文, 閻毅之, 林至德, 趙素勤, 張雪岩이 참여하였으며, 청동단검의 출토지점에서 적석총(방단계제적석총)을 조사하였음.
1979장설암
(張雪岩)
10월 길림성 고고학대회에서 고분을 소개하였는데 유물 출토 관련 내용은 제1차 조사 기록 참조하였고, 고분 형식은 제2차 조사의 기록과 도면을 참조하였으며, 발표내용은 1981년 『考古』에 수록함.
1983장설암
(張雪岩)
공개적으로 원시적 계장적석묘로 수정하였고, 고분 방향은 南偏西 32°로, 평면이 정방형, 한변 길이 14m, 각 계단은 1.3-1.85m 들여쌓기를 했고, 殘高 약 80㎝라고 보고했음.

 

구조특징

 

평면은 정방형이고, 방향은 南偏西 32°이며, 조사 당시 각 계단은 1.3-1.85m 들여쌓기를 함. 표면은 이미 고분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산비탈 아래로 흐르는 자갈이 그 위를 덮은 것으로 보아 일명 창류석이라고 함. 산의 경사도는 25°로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은데, 북면(윗면)은 산을 따라 돌을 축조했으며 무계단이고, 남면(아래면)은 파괴가 심각한데 묘의 정상부 자갈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3층 계단이 일정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으며, 각 층의 계단은 몇 개의 돌만 잔존하며, 계단은 명확치 않음. 고분의 북변 5m, 동변 21m 되는 지점에서 유물 출토되었으며, 현재 고분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음.

 

역사적 의미

 

고분의 형식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는데, 첫째가 창류석으로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산비탈 아래로 흐르는 자갈이 그 위를 덮은 것인데, 고분 흔적이 보이지 않은 것에 기인했고, 둘째가 계장적석총으로 산비탈의 각도가 25°이고,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으며, 북면은 무계단이나, 남면은 명확치 않지만 묘의 정상부 자갈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3층의 계단 흔적이 남아있는 것에 기인했으며, 셋째가 장설암의 견해로 발굴조사 참여시에는 이 고분의 형식을 방단계제적석묘로 보았으나, 이후 “창류석”로 변경하였다가 다시 계장식 적석총으로 분류하면서 계장이 발전하며 계단을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음.
중국 동북 요동반도의 길림·장춘일대에서 출토된 청동검은 대부분 曲刃短劍으로 하한연대는 戰國 中晩期로 보고 있는데 오도령구문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단검의 根部와 刃部는 구부러짐이 없고, 劍身이 세밀하고 길며, 刃部는 비교적 平直한 형태로, 곡인단검보다 늦은 형태로 상한 연대는 대략 전국 晩期(B.C. 3C) 혹은 그 이후로 보며, 오도령구문 무덤의 상한 연대는 전국시대 말기로 볼 수 있고, 고분의 하한 연대는 고분에서 출토된 銅矛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데 오도령구문 청동모는 근래 단동지역, 통화, 혼강, 임강 등지에서 출토되는 청동기와 유사하며, 특히 통화 적백송고송은 漢代 현토군의 속현인 上殷台縣의 치소로 비정되므로 오도령구문 고분의 하한 연대는 漢 武帝가 4군을 설치한 이후로 추정됨.

 

자연환경

 

집안현 마선향 오도령 산비탈 아래 위치하고 고분이 위치한 산비탈 아래로 집안과 환인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감. 이 고분은 집안시 태평향 소속이었으나 태평향이 없어지며 현재 마선향 소속으로 변경됨.

 

유물정보

 

청동단검(靑銅短劍) 1점, 동제 도끼(銅斧) 1점, 동제 거울(銅鏡) 1점, 칼집끝장식(劍鏢) 1점, 동제 창(銅矛) 3점, 부채모양도끼(鉞形銅斧) 4점, 도끼날 철제화살촉 2점

 

참고문헌

 

· 張雪巖, 「集安發現靑銅短劍墓」『考古』 1981-5, 1981
·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張雪岩, 「集安靑銅短劍墓及相關問題」『高句麗硏究論集』 上, 延邊大 出版部, 1993
· 張雪岩, 「集安靑銅短劍墓及相關問題」『박물관연구』 1995-1(再收錄), 1995
· 耿鐵華, 「高句麗紇升骨城新考」『高句麗考古硏究』, 吉林文史出版社,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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