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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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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안산성(自安山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기타
  • 문서번호S000101
  • 위치(출토지)通化市 江東縣(江東鄕) 自安村(治安村) 夾心屯 北山.
  • 지역통화(通化市)
  • 유형성곽>산성
  • 형태사항서벽 957m, 남벽 347m, 동벽 1,107m, 북벽 362m로서 전체 둘레 2,773m. 18점 
 

출토지

 

통화시 강동현(강동향) 자안촌(속칭 치안촌) 협심둔의 북산. 通化市 중심지에서 4㎞ 거리임(通化市 江東縣(江東鄉) 自安村(治安村) 夾心屯 北山. 通化市 中心地 4㎞ 踞離)

 

연대

 

고구려 - 遼·金代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4년 11월 27일통화시인민정부
(通化市人民政府)
通化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공포.
1983년 봄 및 6월통화시문화국문화지 편집부, 통화시문화관, 통화시문물관리위원회 판공실
(通化市文化局文化志編輯部, 通化市文化館, 通化市文物管理委員會辦公室)
제1차(봄) 및 제2차(6월) 조사와 실측 및 촬영함.
1985년통화시문물조사대
(通化市文物調査隊)
조사와 실측, 촬영을 재차 시행하였으며 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6 『通化市文物志』에 발표함.
1988년과 1989년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의 유남·소춘화, 통화시 문물관리판공실의 양립신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柳嵐·邵春華), 通化市文物管理辦公室(楊立新))
두 차례에 걸쳐 산성을 상세히 조사하고 실측하고, 柳嵐·邵春華, 1991 「吉林通化市漢代自安山城調査與考證」『博物館硏究』1991-3에 발표함.

 

구조특징

 

성벽은 험준한 자연 지세를 잘 이용하여 구축하였음.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한 동쪽과 남쪽 양면은 낭떠러지와 절벽을 천연성벽으로 삼았으며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서·북 양면은 다듬은 돌로 인공성벽을 축조함.
불규칙한 長方形,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음. 성곽 내부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북쪽이 남쪽보다 높음.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507m. 인공으로 축조한 서벽과 남벽은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 성벽 기초만 볼 수 있고, 서벽의 북단과 북벽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함. 현재 성벽 위쪽은 10-20㎝ 두께의 흙으로 덮여 있고, 성벽이 만곡하는 곳에는 바깥쪽에 보조용 성벽을 여러 겹 축조하였음. 성 안쪽에는 잡초와 관목이 무성하여 성 내부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며, 서북쪽은 계단식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음. 현대의 民墓가 군을 이룬 곳도 있는데, 큰 나무 몇 그루로 둘러싸여 있음.

 

역사적 의미

 

자안산성의 서남쪽 30㎞에는 赤柏松古城이 있는데, 玄菟郡 上殷臺縣의 治所로 추정되고 있음. 그밖에 통화지역에서 고구려 두 번째 도성이었던 국내성으로 향하는 老嶺山脈 북사면에는 통화 이도구문관애와 석호관애를 비롯하여 집안 대천초소, 관마장산성 등이 있음. 지정학적으로 蛤蜜河와 渾江이 합류하는 곳이며 자안산성이 위치한 通化市 일대는 渾江 상류의 중심지이고, 輝發河에서 龍崗山脈을 넘어 통구분지로 나아가거나, 富爾江 상류에서 喇咕河를 거쳐 통구분지로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임.
산성의 기능과 성격에 대한 견해는 다양함
먼저 漢代-高句麗-遼金淸代 성곽설이 있음. 漢의 군현 설치와 함께 축조되어 고구려 시기뿐 아니라 遼·金·淸代까지 계속 사용되었다는 견해임[吉林省文物志編委會, 李殿福]. 성내에서 漢代 토기의 특징을 지닌 것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漢郡縣의 설치와 함께 축조되었을 것으로 상정되고, 산성의 축조방식이나 출토된 토기편이 집안 산성자산성·패왕조산성 등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시기에 대규모로 개축되어 고구려 북도상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하였다는 것임. 그리고 고구려 시기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데, 특히 明末 누르하치가 建州女眞을 통일할 무렵, 이곳은 오랫동안 女眞 完顔部의 거주 및 저항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이에 비해 漢代에만 사용되었다는 견해도 있음[柳嵐·邵春華].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漢代의 것이고, 특히 토기 문양은 漢代 토기의 특징을 많이 지녔다고 함. 항아리와 시루의 형태, 소성온도, 태토 등은 內蒙古 哲里木猛 奈曼旗 沙巴營子의 漢城이나 吉林省 永吉縣 大海猛 2期 漢代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하다고 함. 그리고 遼·金代의 布紋 기와편이 출토된 적이 있지만, 그밖에는 遼·金代의 유물이 출토된 것이 없음. 특히 돌로 성벽을 축조하였다는 점은 분명히 고구려 城의 특징이지만, 성 내부에서 漢代 유물만 출토되고 고구려 시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구려인이 축조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임. 더욱이 자안산성 서남쪽 30㎞에는 玄菟郡 上殷臺縣 治所로 추정되는 赤柏松古城이 있는데, 자안산성과 적백송고성은 밀접히 관련된다고 여겨짐. 즉 자안산성은 漢의 玄菟郡과 함께 축조되었다가 玄菟郡이 요동지역으로 쫒겨가면서 폐기되었다는 것임.
마지막으로 渾江 상류의 군사 방어성이면서 지방지배의 거점이라는 견해가 있음. 漢郡縣 治所가 일반적으로 소규모 토성인데 비해 자안산성은 둘레가 2.7㎞에 이르는 대형 石城이며 遼·金代 기와편도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고구려 시기 이래 계속 사용되었다고 판단됨. 더욱이 자안산성이 위치한 通化市 일원은 渾江 상류의 중심지이고, 輝發河에서 龍崗山脈을 넘어 통구분지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富爾江 상류에서 喇咕河를 거쳐 통구분지로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임. 이로 보아 자안산성은 고구려 시기에 석성으로 구축되어 渾江 상류일대의 중심성으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이 높음. 이 일대에 고구려 초기 적석묘가 상당수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영함. 다만 자안산성은 지리적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단순한 군사시설이라기 보다는 지방지배의 거점으로도 기능하였다고 추정됨. 자안산성은 소자하 상류에서 喇咕河를 거쳐 渾江으로 향하던 교통로와 輝發河 유역에서 용강산맥을 넘어 渾江으로 향하던 교통로 등을 공제하던 군사방어시설로서 渾江 右岸의 弧形·軸線방어체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고 추정됨[余昊奎].

 

자연환경

 

산성 서남쪽 아래로 哈蜜河(속칭 哈泥河 혹은 哈民河)가 흐르며, 동쪽의 절벽 아래로는 渾江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哈蜜河와 渾江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산성은 전체적으로 三角洲의 형세를 이룸. 산성의 서쪽과 북쪽으로 산봉우리가 기복을 이루며 연이어지고 있음. 가장 높은 곳은 해발 526m로서 이곳에 서면 통화분지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옴. 산성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내려다보는 형세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천혜의 험준한 지형임.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通化市文物志』, 1986
· 孫進己·馮永謙, 『東北歷史地理』 (二), 黑龍江人民出版社,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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