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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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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발자 고분군(萬發拔子 古墳群)

 
  • 구분유적
  • 시대청동-철기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095
  • 위치(출토지)通化市 金廠鎭 躍進村
  • 지역통화(通化市)
  • 유형고분>계장식적석총
  • 형태사항79점 기타 
 

출토지

 

통화시 금창진 약진촌 (通化市 金廠鎮 躍進村)

 

연대

 

만발발자 유적지는 고구려 문화와 청동기문화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임. 신석기시대 中晩期, 商周, 春秋戰國, 兩漢, 魏晉, 明에 해당되는 6개 층위관계가 확인되었음. 무덤은 土坑墓, 土坑石槨墓, 土坑石槨石棺墓, 大蓋石墓, 大蓋石積石墓, 積石墓, 階壇積石墓 등 7개 형식이 확인되며, 춘추전국·양한·위·진 시기의 3시기에 해당됨. 출토유물과 고분 형식에 의해 연대를 추정해보면 토갱묘, 토갱석곽묘 토갱석곽석관묘, 대개석묘 등은 춘추전국 시기로 기원전 3세기에 해당, 대개석적석묘와 적석묘는 양한 시기로 기원전 2~1세기에 해당, 계단적석묘는 위진 시기로 기원 4~5세기에 해당됨.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97년 5월~1999년 10월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통화시문물관리위원회판공실, 집안시박물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化市文管會辦公室, 集安市博物館)
王靑, 張健宇, 王志敏, 于麗萍, 孫仁杰, 遲勇, 周榮順, 董峰, 李輝 등이 참여하여 6,015㎡의 발굴면적에서 56기의 서로 다른 시기 고분 확인함

 

구조특징

 

土坑墓, 土坑石槨墓, 土坑石槨石棺墓, 大蓋石墓, 大蓋石積石墓, 積石墓, 階壇積石墓 등이 분포, 이 고분들은 石板墓에서 積石墓 순으로 발전해감.
토갱묘와 토갱석곽묘 두 고분 모두 고구려 이전의 유적으로, 연대는 대체로 춘추전국시기임. 單人仰身曲肢葬墓과 多人合葬墓로 크게 구별됨. 연대는 토갱묘가 토갱석관묘보다 상대적으로 빠름. 토갱석곽석관묘의 연대는 戰國 中晩期에 해당되며 당시 多人·多次 화장이 성행했음. 대개석묘의 연대는 전국 말기~한대 초기에 해당. 대다수 지세가 험준한 산등성마루 위에 분포함. 묘내에서 화장하여 인골은 모두 불탔으나 탄 정도는 높지 않음. 대개석적석묘는 대개석묘와 고구려 초기 적석총 사이의 과도기 묘제로 장제 방식은 대개석묘와 서로 같으나, 割石으로 蓋石을 덮음. 계단적석총은 고구려의 전형적 고분으로 연대는 위·진 시기에 해당됨. 고구려 초기 적석총과 장례형식에서 전승관계가 명확함.

 

역사적 의미

 

왕면후는 예와 맥을 분리해보는 입장에서 통화 만발발자 유적지의 3기와 4기의 고분을 고구려에 선행한 맥족의 문화로 설명함. 즉 제3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대석개묘·대석개적석묘·조기방단적석묘는 ‘혼강 및 압록강’과 ‘태자하 및 혼하’ 유역에서 상응하는 시기의 석묘·출토품과 동일한 성질에 속하므로, 고구려가 혼강에 건국되는 서한 중기 이전에, ‘혼강 및 압록강’과 ‘태자하’ 상류를 중심으로한 古 “貊”(高夷) 유적지임. 이는 “高句麗先世文化” 또는 “前高句麗時期의 문화”로 명명. 만발발자 “4기” 및 그 이하의 석개묘와 적석묘 등 주요 葬式·葬俗·遺物을 “고구려조기 유적지”로 부르나, 이는 고구려건국 이전의 “맥”족 유적으로, 그 북쪽의 夫餘文化先世 “濊”족의 특징은 극히 드묾. 즉 만발발자 “3기”의 토갱묘와 토갱석곽(관)묘는 대표적 앙신굴지이고, 화장습속은 드물고, 소량의 삼족기가 비교적 조기 고분형식에서 출토되었음. 이는 춘추전국 이전에 송화강 유역의 古 “濊人”, 즉 “서단산문화”의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길림시를 중심으로 “서단산문화구”, 예컨대 일찍 발견된 猴石山, 長蛇山, 狼頭山, 兩半山 등 청동문화의 무덤은 모두 토갱석관묘를 주요 葬式으로 갖추고 있음. 출토된 도기는 다수가 중원 한문화의 영향을 받은 三足鼎·隔 등으로 만말발자 3기의 문화는 서단산문화이 영향으로 예족과 맥족의 문화가 남북으로 교류한 결과임.
오강원은 만발발자 유적을 통화 지역문화가 기원전 3세기를 기점으로 느슨한 청동기 사회에서 완전한 청동기 사회로 변모하고, 기원전 2~1세기에서 토갱묘·석관묘에서 적석묘로 급격히 변모한다는 점에 주목함. 통화지역에 원고구려문화, 즉 적석묘문화가 출현하는 시점은 요동 동부의 다른 지역보다 1세기 가량 늦은 기원전 2~1세기로, 요동반도의 적석묘 문화가 환인집단을 경유하여 통화지역으로 전해졌고, 통화지역에서는 적석묘 문화의 형성과 함께 방어적 성격이 강한 환호와 구상 유구를 갖춘 대형 취락이 등장한다고 보았음. 기원전 3세기의 사회의 완만한 변화 양상을 볼 때, 통화지역의 토착집단이 주변과의 교섭을 통해 내적으로 변화한 반면 기원전 2~1세기의 급격한 사회변모는 혼강 중류 유역 환인 방면으로부터 들어온 적석묘집단에 의해 지역집단이 통합된 것으로 추정함.

 

자연환경

 

유적지는 통화시 금창진 약진촌과 환통향 강남촌의 경계지점에 있는 작은 구릉 정상부의 평탄면에 위치함. 유적지 서부는 둥근 언덕, 동쪽에는 완만한 산등성마루와 연이어진 구릉과 접하고 있음. 유적지는 통화-집안 도로가 동북지구와 서남 지구를 관통하면서 동서로 양분되어지는데 서부는 원구, 산등성마루에는 생활거주지가 다수 보임. 동부는 고분의 주요 분포지역으로, 대다수 고분은 동부 제1층 아래 생토층을 파괴. 유적지 남측에는 현대 촌락이 자리하고 있으며 약 250m 떨어진 곳에서 金廠河가 유적지 동남부를 지나 혼강으로 유입됨. 북쪽 약 3㎞ 거리에 통화시 위치하고 북동쪽 5㎞ 거리의 혼강 동안에 청동기시대 생활유적인 九仙峰 유적이 위치함.
북서쪽 5㎞ 거리의 혼강 서안에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西山 고분군 위치함. 남쪽 13㎞ 거리에 고구려 시대의 江沿村 고분군 위치하고 남쪽 20㎞ 거리에 고구려 시대의 南頭屯 고분군 위치함. 서남 방향의 환인 고구려 유적지와는 약 100㎞ 떨어져 있음.

 

참고문헌

 

· 國家文物局 主編, 「吉林通化萬發撥子遺址」『1999中國重要考古發現』, 文物出版社, 2001
· 王綿厚, 「通化萬發拔子遺址的考古與民族學觀察」『東北史硏究動態』 2001-3, 2001
· 金旭樂·趙殿坤·董峰, 「吉林通化市萬發撥子遺址二十一號墓的發掘」『考古』 2003-8, 2003
· 오강원, 「萬發撥子를 통하여 본 通化地域 先原史文化의 展開와 初期 高句麗文化의 形成過程」『북방사논총』 1, 동북아역사재단, 2004
· 朱泓·賈瑩·金旭東·趙展坤, 「通化萬發拔子遺址春秋戰國時期叢葬墓顱骨的觀察與測量」『邊疆考古硏究』 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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