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ku.d_0001_0010_0040_004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무송 대방(황)정자 적석고분군(撫松 大方(荒)頂子 積石古墳群)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50-D1-04
  • 위치(출토지)大方村
  • 지역무송(撫松縣)
  • 유형고분〉적석묘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0년 6월 : 1차· 조사 기관 : 통화지구문물보사대(通化地區文物普査隊)
· 조사 참여자 : 전성죽(戰成竹), 장동재(張棟才) 등
· 제1차 전국문물조사 당시에 조사되어 『撫松縣文物志』에 기재됨.
· 신석기시대와 고구려시대의 古城”으로 소개됨.
1986년 : 2차· 조사 기관 : 무송현문보소(撫松縣文保所)
· 조사 참여자 : 왕문흥(王文興) 등
· 제2차 문물조사 당시 대방정자산 고대유적지에 대해 재조사가 실시되어 『撫松縣文物志』에 기재됨.
· 지표에서는 아직 어떤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음.
· 단, 평탄한 언덕 위에 직경이 서로 다른 돌무지(石堆) 6개와 우물 하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배열되어 있음. 또한 길이 50m, 너비 1m, 높이 0.35m의 석열(石帶)이 하나 있음. 6개의 돌무지는 후대인이 돌을 쌓아 올린 것은 아니며, 원래 성벽(城墻) 옛터에서 사용된 돌무지인지의 여부조차 단언할 수 없음.
· 따라서 해당 유적의 돌무지와 석열은 자연스런 무지가 아니며, 비록 인위적으로 파괴당하였으나 여전히 고대인류의 생활면모를 반영하고 있으며, 돌로 쌓은 석열에서 고대 성벽(城垣)의 흔적을 판별할 수 있어 고구려 시기의 성터 소재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2008년 10월 : 3차· 조사 기관 : 무송현문보소(撫松縣文保所)
· 조사 참여자 : 왕문흥(王文興), 고령박(顧聆博) 등
· 제3차 문물조사 당시 다시 대방정자산 정상 적석무지를 조사함.
· 문보소의 조사 보고서(登記表)를 보면, 조사대는 돌무지 6개를 고구려 적석묘로 판단하고,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M1~M6이라고 편호함.
· 동시에 조사대는 대방정자산 주봉 동북 1.3km의 작은 산 정상에서 대방촌 신석기시대 유적지를 조사함. 여기서 흑요석제 괄삭기(黑曜巖刮削器), 협사흑도 구연편(夾砂黑陶口沿), 굽이 있는 바닥편(高臺底의 基底部) 등의 유물이 출토됨.
· 그러나 1986년 조사에서 발견한 석대를 찾지 못함.
2008년 5월· 조사 기관 : 길림성임업국(吉林省林業局)(?)
· 조사 참여자 : 진경하(陳景河) 등의 장백문화(長白文化) 연구자
· 장백문화 학자들에 의해 조사연구가 시작되었음.
· 陳景河는 답사 후에 고구려 고성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大荒頂子祭壇이 金 여진황족의 望祭가 장백산에서 참배하였다는 제단인지의 문제를 제기함. 그의 적극적 제창 하에 3년 동안 林業局에서 여러 차례 학자를 조직하여 현지조사 및 방문과 논증을 하였음. 임업국조직의 몇 차례의 현지조사는 모두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계절이었기 때문에 적석무지는 나무와 잡초가 덮여 가려져 있었으며, 돌무지의 수량 및 형상이 모두 명확치 않았으며,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나뉘었음
2011년 6월 및 9월· 조사 기관 : 吉林大學邊疆考古中心(吉林省文物局 위탁, 泉陽林業局과 撫松文保所의 지원)
· 조사 참여자 : 謝浩, 馬天夫, 梁娜, 陳影, 馮恩學
· 대방정자산 돌무지(石堆) 유적에 대한 고고조사를 실시함.
· 몇 개의 돌무지를 평면 분포형태가 인공으로 쌓은 유적인지, 제단 또는 기타 유적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구조특징

 

적석무지는 대방정자산 남반부의 산등성이를 따라 북에서 남으로 분포하고 있음. 1980년대 산 정상에 방화 조망탑을 세우고 산길을 만들면서 필요한 석재들을 적석무지에서 채취함에 따라 소실된 것이 많음.
 

역사적 의미

 

1. 유적성격
1) 성터
1987년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가 길이 50m, 너비 1m, 높이 0.35m의 석대를 발견했는데 이를 고대 성벽 흔적으로 파악하고 고구려 성터의 가능성을 제기함.
2) 제단
金 여진황족의 望祭가 이루어진 유적으로 보거나, 唐代에 조영되어 明代까지 이어지며 사용된 제단으로 이해함.
3) 고구려 적석묘
2008년 조사에서 돌무지 6개를 고구려 적석묘로 규정하였고, 2012년 조사에서는 적석무지가 산성의 포대나 제단이 아니라 적석묘군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함.

2. 고분연대
해당 유적은 고구려 적석묘에서 일찍이 보이는 구축방법으로 고구려 건국 전후의 적석묘군일 가능성이 보임.
 

자연환경

 

대방정자산 산정상 등마루 위에 위치함. 지리좌표는 동경 127° 19′, 북위 42° 24′임. 산은 무송현으로부터 동북 10km, 대방촌 서남 2km 지점에 위치하며 동남으로는 장백산 주봉과 75km 떨어져 있음. 松江河 지류인 大浦江 북안에 자리함. 대황정자산은 해발 912m로 주봉 동쪽 山體의 상대고도는 300m이며, 주변 10km내에서 가장 높은 곳임.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 1987, 「大方頂子城址」 『撫松縣文物志』
· 國家文物局 主編, 1992, 『中國文物地圖集』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 陳景河 等, 2008, 「大方頂子古祭壇遺址的考察報告」 『協商新報』2008-12-19
· 張璇如, 2009, 「長白山祭壇探源」 『東北史地』2009-5
· 馮恩學·馬天夫, 2012, 「抚顺大方(荒)頂子積石堆調査報告」 『邊疆考古硏究』11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