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간구자 AM3호분(干溝子 AM3號墳)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초기
  • 문서번호S000345
  • 위치(출토지)吉林省 長白縣 十四道溝鎭 干溝子村
  • 지역백산(白山市)
  • 유형고분>적석총
  • 형태사항13점 기타 
 

출토지

 

길림성 장백현 십사도구진 간구자촌 (吉林省 長白縣 十四道溝鎮 干溝子村)

 

연대

 

상한: 戰國中期~末期, 하한: 西漢

상한 - B.C 4세기~B.C 3세기초, 하한 - 기원전후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1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장백현문물보호관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長白縣文物保護管理所, 集安市博物館)
5월-7월 조사에서 1986년 편호와 달리 새로이 편호하는데 1986년 편호된 고분가운데 M15~M19의 5기 가운데 1기만 남아 있고, 1986년도에 편호되지 않은 고분 중 고분 형식을 판별할 수 있는 고분 고려하여 새로이 편호하였으며, 서간구하 북안의 A구 4기와 그 남안의 B구 3기를 발굴함.

 

구조특징

 

외관은 圓丘狀으로 직경 13.5m, 높이 1.4m이고, 주묘단 1기, 부묘단 3기로 조성되어 있음.
주묘단(ZT)은 타원형으로 길이 11m, 너비 9.5m, 높이 1.3m이고, 남반부 둘레돌은 보존이 비교적 양호하며, 높이 0.8m임. 북반부분은 훼손되었는데, 지탱석 대부분이 기울어져 무너지고 있고, 기초부만 잔존함. 주묘단의 돌 무지 위에서 토기(陶罐), 철제 칼(鐵刀)(Ⅱ식), 어망추(網墜) 등이 출토됨. 주묘단의 묘광은 5기로, 묘광 ZK2~ZK5는 ZK1의 사방에 대칭으로 분포함. 묘광(ZK1)은 묘단의 중심에 위치하고, 근장방형으로 길이 2.7m, 너비 1m, 깊이 0.45m, 40°방향임. 묘광의 네 벽은 편형한 냇돌로 축조후 깨진 돌로 0.1m두께로 봉했고, 바닥은 두께 0.06~0.1m의 작은 냇돌을 깔았으며, 두 덩어리의 불에 탄 인골 조각들, 토기(陶罐) 1건이 출토됨. 묘광(ZK2)은 불규칙 타원형으로 길이 1.7m, 너비 0.3~0.6m, 깊이 0.06m이고, 바닥에 깔린 작은 냇돌층 두께는 0.03~0.06m임. 燒骨 조각, 심발형토기 1건(深腹罐 BⅡ식)이 출토함. 묘광(ZK3)은 타원형으로 길이 1.9m, 너비 0.45~0.8m, 깊이 0.2m이고 바닥의 작은 냇돌층은 두께 0.05m이며, 燒骨 덩이, 한쌍의 옥장식(玉飾), 발 2건(淺腹罐 BaⅡ식 및 Ca식)이 출토함. 묘광(ZK4)는 타원형, 길이 0.9m, 너비 0.55m, 깊이 0.3m이고, 바닥에 깔린 작은 냇돌층 두께는 0.05m임. 묘광에는 뼈조각, 동제 고리(銅環) 1건(環 B식), 철제 칼(鐵刀) 잔편 1건(Ⅰ식)이 출토됨. 묘광(ZK5)은 타원형으로 길이 1.8m, 너비 0.6m, 깊이 0.25m이고, 바닥에 깔린 작은 냇돌층 두께는 0.05m임. 묘광에는 碎骨이 있었으나 부장품은 보이지 않음.
부묘단(FT1~FT3)은 총 3기로 모두 주묘단를 둘러싸고 시계반대방향으로 축조되어 있음. FT1은 주묘단의 남쪽에 위치하고, 타원형으로 직경 6m이고, 묘단은 대부분 이미 파괴되었으며, 주묘단 부근에 높이 0.3m의 둘레돌 지탱석 일부분이 남아 있는 상태임. 묘광(FK1)은 타원형으로 길이 2.3m, 너비 0,8m, 깊이 0.2m이고, 바닥에 깔린 작은 냇돌층 두께는 0.4m임. 燒骨, 발 1건(淺腹罐 BaⅢ식)이 출토됨. FT2는 扇形으로 반경 약 4m이고, 가장자리는 비교적 정리되어 있음. 주묘단에서 가까운 곳에 타원형 묘광 FK2가 있는데 길이 2m, 너비 1m, 깊이 0.15m이고, 바닥에는 두께 0.05미터의 작은 강돌이 깔려 있음. 腿骨·頭骨·牙齒 등을 포함한 燒骨, 동제 귀걸이(銅耳飾)(環 A식)와 玉珠 각 한쌍씩 출토됨. FT3은 훼손이 비교적 심하고, 외관은 이미 훼손되었음. 기초만 남아 있으며, 기초부의 직경은 약 6m임. 묘광(FK3)은 부정형으로 한 면만을 쌓아 올려 묘광벽을 축조하였고, 길이 2.7m, 너비 0.6~0.9m, 깊이 0.1m이며, 바닥에는 작은 강돌을 깔음. 인골과 부장품이 없음.

 

역사적 의미

 

축조방식은 지면에 커다란 돌을 사용하여 일정 범위의 묘역을 조성한 후 냇돌과 할석을 깔아 평면하게 지면을 고르고 무덤의 기저부를 만든 후, 그 위에 단을 쌓아 몇 기의 무덤이 연접되도록 함. 매장방식은 무덤 밖에서 화장한 후 燒骨을 매장한 2차장하고, 대다수 묘광 내부에 불에 타거나 그을린 흔적이 없음. 불에 탄 인골편은 작은 조각으로 가장 큰 것이 길이 5㎝가 안되며, 대략 1/3의 소골은 회백색이며 나머지는 赭色(자색)과 흑색임. 다만 BM2ZK1에서 목탄편이 출토되었고, 1986년 조사된 간구자 1호분(M1)의 석광 안에는 주검칸이나 葬具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고 불에 태워진 인골과 대량의 목탄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시신을 묘광 안에 놓고 화장했던 것으로 추정됨. 燒骨은 묘광 내 2, 3곳에 무더기로 안치되었으며, 토기는 묘광 양단에 나누어 부장한 점으로 미루어 一代 혹은 한 가정의 合葬 즉 동일가족 數代의 합장묘 유적일 것임. 따라서 신분 혹은 항렬이 비교적 높은 사람이 주묘단의 중심에 매장되고, 다수 속·부묘단은 항렬의 대소 또는 昭穆제도에 따라 附葬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2001년 발굴한 7기 고분의 부장품은 총 283점으로 작은 장식품을 제외하면 평균 각 묘광에 3점이 부장되었으므로 厚葬은 아님. 전체 부장품 중 토기가 총73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나 완형보다는 다수가 파편으로 출토되어 토기의 毁器習俗으로 짐작됨. 출토된 그릇은 모두 민무늬의 夾沙褐陶로 모양이 간단하고 종류가 단조롭고 제작 기술이 거칠어 원시성을 반영하며, 그 외 野猪牙飾, 綠松石管 등의 장식품은 모두 압록강 유역과 두만강 유역의 원시문화에서 일찍이 보여주는 전형적 기물임.
간구자 고분군의 무덤들은 하나의 기단 위에 여러 기의 고분이 배열되어 있는데, 특히 7호분은 1기의 원형석광적석묘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장방형의 작은 돌무덤이 방사상으로 배치되어 무덤 사이의 主次관계를 시사함. 즉 중심무덤의 피장자는 주위의 무덤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이나 반대의 무덤은 중심무덤에 예속된 상태로 추정됨. 반면에 1호분 및 4호분과 같은 단일한 원형석광무덤의 무덤배열 상태에서는 주종 관계가 전혀 보이지 않음. 한 墓區내의 여러 개 무덤은 그 크기와 모양이 같으며 또한 무덤 사이마다 돌로 서로 연결되어 한 무덤구역내의 피장자들 관계가 평등하였다는 것을 시사하며, 이는 혈연관계를 이루고 있는 가족 성원의 무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임.
부장품은 장식품이 많고 생산 공구 및 기타 그릇 류가 비교적 적은데, 이는 길림성 중부지구의 九台關馬山, 公主嶺猴石, 樺甸橫道河子 및 東豊, 遼源 일대 많은 大蓋石墓의 부장 특징과 서로 일치하며, 동북지구 남부에서는 戰國晩期~漢代 보편적으로 유행함. 상한연대는 2기 고분에서 方孔圓錢- 半兩錢과 一化으로 추정할 수 있음. 半兩錢은 秦末半兩 혹은 漢初의 八銖半兩이며, 一化는 ‘一刀’로 해석되며, 周秦 또는 秦初 시기의 화폐임. 赤峰 新窝堡와 鐵嶺 邱家台지역의 퇴장유적에서 이들 화폐가 燕·趙의 刀幣 및 반량전과 같이 출토되어 燕國晩期의 화폐로 확정되었으므로 묘지연대의 상한은 戰國末期, 비교적 이른 것은 戰國 中期에 해당됨. 하한연대는 AM1에서 출토된 鐵钁과 AM3·AM4 주묘단에서 채집된 鐵刀로 추정할 수 있는데, 钁은 漢代유행하는 것과 형태가 유사하며, 철도는 直柄環首로 일찍이 集安의 板岔嶺에서 동일한 것이 발굴된 바 있는데, 고구려 적석묘에서 대량 보이는 環首刀보다 조금 이름. 집안 판차령에서 “一化”圓錢이 “半兩”, “五銖”, “大泉五十”, 등의 한대화폐와 함께 출토되었고, 그 유통 시간은 전국말기~東漢임. 그러나 간구자묘지에서는 “오수” 및 동한화폐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고분의 하한은 대체로 동한이전의 서한시기로 비정됨.
간구자묘지의 연대가 집안, 환인 일대의 고구려 적석총보다 앞서므로, 고구려적석총의 가장 이른 형식인 無階段 圓丘上積石墓와 관련이 있을 것임. 고구려 초기의 적석묘의 발전과정을 보면, 무덤은 석광이 따로 없는 간단한 시설로부터 계단식 기단으로 이루어진 ‘框室(앞에서 박윤무의 1995년 글에 따라 ‘묘실’이라 정리하던 개념인데, 이 글에서 이 부분을 ‘框室’로 표현하고 있어 그대로 따랐음)’ 무덤으로 발전하고, ‘광실’은 장방형으로부터 정방형 형태로 변화·발전함. 묘광 위치에서도 위로부터 아래로 점차 내려옴. 이를 종합해 볼 때 간구자의 원형석광적석묘는 고구려 초기 적석총과 유사함. 첫째, 주검칸이 따로 없이 무덤의 기단 윗면을 자갈과 모래로 수평하게 마련하고 그 위에 주검과 부장품을 놓고 막돌로 덮어 정상부를 마무리 한 것은 이것은 환인 201호 및 19호분과 매우 흡사함. 둘째, 기단의 단수와 묘광 형태에서 차이가 있으나 한 무덤구역에 여러 기의 무덤을 연이어 마련한 점은 환인 23-33호분과 일치함. 셋째, 화장하여 묻는 습관이 환인 23호 및 20호분이나 15호분에서 확인되며, 집안 일대의 일부 적석총은 묘광벽이 불에 녹아 응결된 흔적으로 화장하였을 것으로 짐작됨. 따라서 간구자 무덤은 시기적으로 환인 적석총을 위주로 한 고구려 초기 무덤보다는 이르며 대체로 환인 적석총보다 선행된 고구려 早期의 무덤형식으로 고구려족계의 원시적 매장 특징이 짙게 반영됨. 또한 간구자 고분군은 여대지구 청동기 시대 무덤 및 청동단검고분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음. 우가촌 타두 적석묘와 노철산 고분은 모두 여러 기의 무덤을 서로 가까이하여 ‘벌집형(蜂巢狀)’이며, 우가촌 타두 적석묘의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된 것도 있음. 이것은 간구자 1호분(M1)·2호분(M2)의 특징과 유사함. 강상묘는 하나의 무덤구역에 1기의 중심무덤을 마련하고 그 둘레를 돌면서 여러 기의 무덤을 방사선 형태로 마련하였는데, 이것은 간구자 7호분(M7)과 매우 유사함. 그리고 강상·누상묘 등 적지 않은 청동단검묘는 모두 화장한 무덤이라는 사실에서도 간구자 고분과 일치함.(『조선고고학개요』에서는 ‘노철산 및 장군산 고분→강상·누상묘→고구려 적석묘’라는 계승 발전관계를 설정하고 있고, 왕성생(1981, 「요하 유역 및 부근지역의 短鋌曲刃劍 연구」『요녕성고고박물관학회설립대회』회간)은 강상묘를 비롯한 요동문화유형의 무덤 형식과 매장습속이 환인 고구려 적석무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적석묘는 강상묘의 계승과 발전’이라고 보고 있음) 또한 여대지구 강상과 루상, 우가촌 타두 적석묘 등과 같은 집단묘로서, 家族合葬墓라는 점에서 공통됨. 반면 강상·누상 적석묘는 평지에 축조되었으며, 묘단은 없고, 묘광이 장방 혹은 방사상으로 분포하며, 중심 묘광의 4벽은 판석을 세워 만들었고, 우가촌 타두 적석묘 역시 묘광이 타원형 또는 부정형으로, 보통 평행을 이루는 가로배열로 분포하며 묘단을 만들지 않았음. 따라서 강상·루상과 우가촌 타두는 간구자 적석묘와는 축조 방법에서의 차이가 있음.
우가촌 타두 적석묘의 연대는 3230±90년B.P. 이고, 강상·누상묘는 기원전 1세기 전반기에 해당된 고조선 시기이며, 환인 지역 적석묘는 제15호분에서 環首式 철칼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東漢 시대로, 늦어도 漢·魏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음. 간구자 고분군의 상대적 축조연대는 대체로 전국시기로부터 서한 말기에 해당되므로, 간구자 고분군은 강상·누상묘에서 환인 적석묘로 발전해 나아가는 과정의 과도기 단계로서 고구려 선인들의 토착문화로 추정됨.
연접 방식은 3형식으로 나뉘는데, 제1형식은 속·부묘단이 주묘단을 둘러싸고, 다시 밖으로 접속하지 않으며(AM3, AM4, BM5), 제2형식은 속·부묘단의 밖에 다시 제2속묘단이 외접하고, 제1형식이 주묘단만을 둘러싸지만, 제2형식은 연이어 속묘단이 함께 둘러싸고 하나의 부묘단이 기점이 되어 2개의 방향으로 나누어 펼쳐짐(BM2, BM4). 3형식 : 먼저 주묘단을 두르고 밖으로 다시 속묘단을 쌓고, 빈곳에 1, 2개의 부묘단을 세운 후 연속으로 서남방향에 속묘단을 설치한 후, 양쪽에 연속하여 부묘단을 대칭으로 축조함(AM1, AM2). 제1형식이 제2형식의 미완성형식이라면 비교적 이른 고분은 모두 먼저 주묘단을 쌓고 다시 밖으로 접속하였는데, 부·속묘단이 연접하는 방향은 서남쪽으로 접속하지만, 일정하지 않다가 비교적 늦은 고분에서 서남쪽으로 확장방향이 정형성을 띰. 속묘단은 중심선에 의해 대다수 서남방향으로 연접하며 부묘단은 양쪽으로 分列하는데, 대다수는 비교적 대칭적임. 연접 방식에 따른 배열법의 변천순서는 제1형식→제2형식→제3형식 순으로 변하고, 이런 양상은 고분군의 분포 양상과도 합치됨. A와 B구역을 보면, 산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묘가 이른데 비해, 강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묘는 비교적 늦음. 上→下의 배열과 발전과정은 환인과 집안 일대의 고구려적석총의 배열과 일치함.

 

자연환경

 

AM3호분은 AM2의 서북에 위치함.
간구자촌은 吉林省 長白縣 十四道溝鎭 서쪽 0.5㎞ 지점에 위치하고, 고분은 干溝子村의 東·西干溝河 양안의 하곡 충적대지상에 분포함. 동쪽으로 長白縣城과 45㎞ 떨어져 있고, 동·서·북 3면이 高山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름. 압록강과 고분군 사이의 馬架子山을 기준으로 동쪽의 동간구하, 서쪽의 서간구하가 흐르는데, 서간구하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흘러 고분군를 거쳐 압록강으로 흘러 감. 장백과 임강을 잇는 長臨도로가 동남에서 서북으로 뻗어 고분군을 양분하고, 고분군의 서·남 양쪽 산위에는 청동기시대 유적 분포함.
간구자 고분은 여러 차례 조사가 있었으나 1986년과 2001년 조사로 대별되는데, 특히 2001년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계기로 1986년 조사때보다 묘역이 크게 확대되었음. 앞서 고분 분포현황에서 언급하였듯이 2001년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묘역은 크게 A, B, C, D의 4구역으로 이루어졌는데 비해, 1986년 보고서에는 2001년 보고서의 A와 B 지역 일대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므로 2001년 고분의 편호는 1986년 조사를 고려하지 않고 새로 편호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의 개별 고분들을 직접 연결시켜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임. 때문에 개별고분의 상황을 두 시기로 나누어 정리하였음.

 

유물정보

 

심발형토기 1점, 발 3점, 옥구슬 2점, 옥드리개 2점, 고리 2점, 철제칼 2점, 흰색대롱 다수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長白朝鮮族自治縣文物志』, 1986
· 朴潤武, 「長白縣干溝子墓地調査」『博物館研究』 1990-3, 1990
· 吉林省地方志編纂委員會 編, 『吉林省志』 45(民族志), 吉林人民出版社, 1991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朴潤武, 「압록강 유역 干溝子 적성무덤에 대한 조사연구」『中國境內 高句麗遺蹟 硏究』, 예하출판, 1995
· 王洪峰·孫仁傑·遲勇, 「吉林長白縣干溝子墓地發掘簡報」『考古』 2003-8, 2003
· 孫仁杰·遲勇·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