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협피구고성(夾皮溝古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313
  • 위치(출토지)臨江市 六道溝鄕 夾皮村
  • 지역임강(林幹市)
  • 유형성곽>평지성
  • 형태사항동서 폭 50m, 남북 길이 100m임. 성곽의 전체 둘레는 약 280m임(『渾江市志』에는 古城의 동서 길이가 88.1m, 남북 너비가 109m로 기재되어 있음). 
 

출토지

 

임강시 육도구향 소재지 남쪽 3㎞ 협피촌(臨江市 六道溝鄉 所在地 南側 3㎞ 夾皮村).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
(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
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개괄적인 현황을 파악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됨.
1960년 4월혼강시문물보사대
(渾江市文物普査隊)
성곽 내부에서 석제 화살촉, 刮削火石, 토기편, 창(三稜槍), 철제 화살촉, ‘長平’자 모양의 동전 등의 유물 채집함. 당시 ‘淸 太祖의 古城’이라고 칭했다고 함.
1984년 5·6월혼강시문물보사대
(渾江市文物普査隊)
5월에 전체 현황을 조사, 6월에 실측과 기록 시행함. 『渾江市文物志』중의 ‘夾皮溝城址’에 발표함. 조사 착수에 앞서 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함.
1987년 5월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
임강댐 수몰 지구 조사차 전체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
20세기 전반 1935년에 간행된 『臨江縣志』에 따르면 당시 臨江縣 동남 130里 거리의 夾皮溝에 ‘高麗城子’라 불리는 古城이 있었다고 함. 당시 성벽은 무너졌으나, 성벽 기단 부근에는 벽돌이나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었으며, 네 성문의 형적 또한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함. 전체 둘레는 약 2方里였다고 함.

 

구조특징

 

평면은 불규칙한 장방형으로 동, 북, 서 3면에 돌로 성벽을 축조했으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성벽을 축조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동, 북, 서 3면에 성벽을 축조했음. 성벽은 북쪽이 높고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지표와 평평하게 되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본래부터 성벽을 쌓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됨. 산돌과 깬돌을 허튼쌓기로 층층이 축조했는데, 북벽 서반부에서는 11층까지 확인할 수 있음. 성곽 외벽의 벽면은 비교적 평평하고 가지런한 편이며, 성벽 안쪽에는 흙으로 메웠기 때문에 성벽의 두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음. 1960년대 조사 당시에 이미 성곽 내부에 성벽과 비슷한 높이로 흙이 쌓여 있는데, 성으로 흙이 유입될 만한 개울이나 계곡이 없으므로 자연적으로 퇴적된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됨. 1980년대 조사 당시 동벽의 북단, 북벽의 동단, 서벽의 남단 등의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함. 지금도 북벽 동단부는 성벽 축조상태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임. 최근 臨江-長白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성곽 남단부를 덮어 남단뿐 아니라 동벽과 서벽의 남단도 도로에 덮혀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됨. 동벽은 압록강으로 나아가는 小路에 의해 성벽이 상하단으로 분리되어 전체적인 축조양상을 명확히 파악할 수는 없음. 북벽 서반부는 퇴적으로 인해 성곽의 축조양상을 파악할 수 없으며, 서벽의 북반부는 성벽 자체가 유실된 것으로 파악됨. 성곽 서북쪽 강변에서는 모래와 자갈 채취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성곽에 대한 훼손이 지속될 것으로 보임.

 

역사적 의미

 

夾皮溝는 큰 산 사이에 있고, 계곡이 깊고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陸路 교통이 불편함. 夾皮溝古城은 압록강 수운과 관련될 것으로 추정됨. 특히 古城이 강가에 위치해 있으며,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동, 북, 서 3면에만 성벽을 축조하고,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성벽을 축조하지 않았음. 그리고 성곽 내부는 흙으로 메워 성벽과 평평하게 하였음. 古城의 북쪽은 바로 강가이며, 증수기 때가 되면 강물이 불어나 성벽 아래까지 넘치고, 심한 경우 수몰되기도 함. 이는 군사적 방어나 거주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임. 따라서 고성은 압록강을 오가던 선박이나 뗏목을 정박하던 선착장[碼頭]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古城의 북쪽은 압록강이고, 서쪽에 夾皮溝 골짜기, 동쪽과 남쪽에는 산들이 연이어져 있음. 夾皮溝는 큰 산 사이의 좁은 협곡으로 산비탈이 계단식 지형에 속하는데,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이 北流하여 古城 서벽 외곽을 지나 압록강에 유입됨. 압록강이 서쪽에서 흘러들어와 古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夾皮村 동쪽에서 방향을 꺾어 북쪽으로 흐르다가 六道溝河 河口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서쪽으로 흘러나가는데, 流向이 古城 부근에서 180° 바뀜. 古城 남쪽에 위치한 夾皮村은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은 모두 험준한 산맥임. 夾皮村 북쪽에 臨江-長白 도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최근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고성의 남단부를 덮어 버렸음. 古城의 남쪽은 점차 낮아지는 산록과 맞닿아 있고, 북쪽은 압록강가임. 古城은 압록강 右岸의 모래사장에 자리잡고 있는데, 북쪽으로 불과 20여m 거리에 압록강이 있으며 성곽은 강 수면보다 2m 정도 높음.

 

유물정보

 

1960년대 : 석제 창, 석제 화살촉, 토기편, 철제 화살촉, 동전 등 출토됨.
1987년 : 니질회색토기(泥質灰陶), 사질갈색토기편(夾砂褐陶片), 석제 칼 편(石刀片) 등 채집함.

 

참고문헌

 

· 羅寶書·邱在官, 『臨江縣志』, 臨江藝文齋印刷所, 1935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夾皮溝城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王禹浪·王宏北, 「中國吉林省渾江市三道溝河臨城八隊高句麗古城址」『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張天鵬, 「文物」『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余昊奎, 「臨江 東馬鹿村古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